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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하다 Aug 10. 2024

수박 명상

수박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 1

 수박 먹는 날이면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수박은 살 안 찌니까 많이 먹거라." 나와 동생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수박으로 향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집에 수박이 있는 귀한 날이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고, 식사 후에 먹고, 간식으로 먹고, 자기 전에도 수박을 먹었다. 밥 먹는 배 따로, 커피와 간식 먹는 배가 따로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에게는 수박배가 따로 있었다. 수박 반통은 가뿐하게 먹을 수 있었다. 나만큼 수박을 잘 먹는 동생 덕분에 우리는 경쟁하듯 수박을 먹었다. 서로 눈치를 주며 이번 수박은 꼭 아껴 먹자고 약속해도 2~3일이면 수박 한 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우리 집에서 수박 먹는 사람은 나랑 동생 딱 둘 뿐이었는데 말이다. 집에 나 모르는 수박 귀신이 있었나.


 "어른이 되면 수박을 아주 많이 사 먹어야지."라고 다짐하며 자랐다. 직장에서 자리를 잡은 이후로 매년 7~10통의 수박을 사 먹는 어른이 되었다. 내가 번 돈으로 사 온 수박인데 눈치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보다 수박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언제 먹어도 수박은 항상 맛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티비를 보면서 먹다보면 어느새 한 두 번 씹고 꿀떡 삼키고 있었다. "수박 맛있다!"는 느낌은 금방 사라졌다. 그러다 우연히 음식 명상을 하는 온라인 번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날 마침 수박이 냉장고에 있었고, 수박을 앞에 두고 명상을 했다.


 1단계. 수박 바라보기

 눈앞에 놓인 수박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 본다. 작은 씨앗은 힘차게 싹을 틔우고, 꽃이 피면 나비와 벌이 수분을 해서 작은 수박이 열린다. 햇빛과 바람과 적당한 비는 농부와 함께 수박을 큼직하게 키우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내 앞에 있는 수박이 보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존재적 감사가 느껴진다.


 2단계. 향기 맡기

 아직 수박을 먹기에 이르다. 코 가까이로 수박을 가져간다. 달콤하고 시원한 향을 맡아본다. 


 3단계. 수박 한 조각을 입 안에 넣기

 한 입 크기로 자른 수박을 입에 넣는다. 아직 씹지 말고, 혀에 닿는 수박을 느껴본다. 수박이 차가운가? 적당히 시원한가? 혹은 미지근한가? 혀에 닿은 느낌은 어떤가? 수박을 충분히 느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4단계. 수박 천천히 씹어보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느린 속도로 수박을 씹어본다. '사아아아악-' 입 안에서 펼쳐지는 달콤한 소리를 음미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수박을 씹는다. 두세 번 씹고 삼키는 것이 아니다. 최소 열 번 이상 입 안의 이와 잇몸의 힘으로 수박을 뭉개서 삼키기 좋은 상태로 만든다. 수박을 주스로 만든다는 생각 하며 정성스럽게 임한다. 수박의 달콤함도 계속 음미한다. 수박은 물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식도로 넘어갈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삼키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5단계. 천천히 삼키기

 수박을 식도로 천천히 넘겨서 내려준다는 생각을 하며 삼킨다. 식도로 넘어가는 느낌을 느낀다. 이제 자연의 성취가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수박 명상은 수박 한 조각을 더 정성스럽게 먹을 수 있게 도와준다. 수박이 너무 좋아서 수박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달려드는 일이 다반사지만, 수박을 더 맛있게 먹고 싶은 날이면 몇 조각만 꺼내서 명상하듯 먹는다. 수박을 먹는 시간이 나에게 더 다정하기 위한 연습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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