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없이 못산다. 언제, 어디를 가든지 가방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주머니가 많은 가방을 좋아한다. 특별히 심장 부근에 걸칠수 있는 슬링백 매니아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주머니에 먹이라도 주듯, 자 넌 지갑, 넌 가글, 넌 에어팟, 넌 펜, 넌 충전기, 넌 칫솔치약, 넌 간식, 차곡차곡 물품들을 채우면 쉽게 충만해진다. 어디에 던져놔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겨울엔 내복과 살이 하나가 되듯, 여름엔 슬링백과 하나가 된다. 반바지 주머니에 핸드폰 하나라도 넣어서 툭 튀어나오면 생김새가 징글징글하게 되기도 하고, 나름의 패션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보통의 하루였다. 늘 하던대로 아이와 함께 공원에 갔다. 아이의 단짝 친구가 쉬가 마렵다면서 일찍 돌아가버리는 바람에 나의 존재감을 발휘해야했다.
나무그늘 아래 앉아서 보려고 책을 넣어와서 그런지 메고 이리저리 아이를 따라다니기엔 가방이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벤치에 잠시 내려놨다. 그렇게 약 4시에서 5시까지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와서 아이를 씻기고, 나도 씻고, 밥을 차리고, 밥을 먹이고, 정리를 하고, 글쓰기 수업을 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아까 사놓고 가방에 넣어둔 목캔디를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두리번 거렸는데, 아무리 찾아도 가방을 찾을 수 없었다.
아까 그 벤치에 놓고 온 것이 확실했다. 현재 시간 20시 13분, 맙소사, 무려 3시간이나 지났다니. 작년부터 사고 싶었지만 미루고 미루다 끝내 사버린 제일 아끼는 가방이다. 귀중품이라 할 수 있는건 에어팟 프로 하나였고, 책 한권과, 다이어리, 그리고 앞서 말한 잡다한 생필품들 뿐이었다.
5분거리. 뛰쳐나와 달렸다. 제발 거기 그대로 있어줘를 외치며.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속에는 어떤 세계가 붕괴되려고 하는 위협을 인지할 수 있었다.
공원에 도착했다.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속도와 목적에 맞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벤치에는 가방이 그대로 있었다. 이제 왔냐 라고 말하는 듯 했다.
당장에 끌어안는 것을 멈추고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달려오면서 나는 아직 믿고 싶었던거였다. 자기 가방이 아닌데 그걸 절대 가져갈리 없는 세계를 말이다. 가방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그 세계가 붕괴 되는 것이 무서웠던거였다.
가방 옆에 잠시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인류애가 마구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와 아직 이렇게 살만한 세상이구나, 이게 뭐라고 그 순간 만큼은 쉽게 단정지어버리고 싶었다.
가방을 소중히 끌어안고 돌아오며 올 때는 보지 못했던 불빛들이 보였다. 만월은 아니었지만, 충분한 달빛이 나의 세계를 비춰주고 있었다. 다시 한번 꿈을 꾸고 싶었다.
자전거를 아무데나 세워놓고 묶지 않아도, 어느 누구도 내 자전거가 아니니까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는 세상이 오는 꿈. 과연 그런 세상이 오긴 할까. 심장에 촥 앵긴 가방을 보며 딱 1cm만 믿어보고 싶어졌던 고마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