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신이라는 것을 해봤다. 위내시경, 대장내시경을 받기 전 해 본 사람은 안다. 하루 전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하는지.
부부는 일심동체, 그렇고 말고. 하지만 내시경을 같이 하는 것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하긴 화장실 릴레이 계주를 했던 것마저 추억이 되겠지.
전신마취를 하는 날에는 상상에 날개가 달려 나를 이리저리 데려간다. 그래서 언제나 이 날은 평소보다 긴장도가 높다. 그래도 오늘은 새삼 의학의 발달에 대해서 감탄하는 쪽으로 마음이 고정되어서 간신히 무념무상한 상태가 되긴 했다.
내시경을 하기 전에 여러 검사를 거쳐 마지막으로 혈액 검사를 하는 순간이 되었다. 이것도 수면마취만큼이나 긴장된다.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뾰족하고 싸늘한 것이 있다면 주사 바늘이 아닐까 싶다.
그게 내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은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기에는 좀 큰 담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은 그걸 좀 직면하고 싶었다. 평소에는 고개를 돌리고 "다 됐습니다" 소리가 떨어지면 결과물만 확인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따끔하세요." 그래, 고작 따끔이긴 한데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무시무시했다. 쑥 들어가지 않는다, 소리상으로는 쓱인데 그게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면 혈관이 다 찢어질 듯해서 날카로워 침도 삼킬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돈다. 들어갈 때뿐만 아니라, 뺄 때의 쓱을 한 번 더 이렇게 견뎌야 끝이 나는 것이다.
계속 라인을 잡고 있으면 불편하니까 ‘해파리 필터’라는 것을 꼽아놓는다 했다. 그리고 피를 한 번 쭉 뺀다. 피는 참 진하다. 따뜻하다. 어라, 왜 이리 어지럽지. 어제 금식인데 무리할 일정을 소화하고, 잠도 몇 시간 못 잔 상태로 피를 빼니까 순간 빈혈 증상이 온 걸까.
괜찮아지겠지. 이상하다, "조금 어지럽네요"라는 말은 내뱉는 순간, 시공간이 일그러지고 호흡이 흐트러진다. 아내가 "괜찮아???"라고 소리를 지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숨을 못 쉬겠다. '뭐지 이런 감각은,' 이라고 당황하는 찰나에 의식이 날아가버렸다.
어떻게 눈을 떴는지 모르겠다. 꿈이었나, 내가 잠시 졸았나, 어떤 것도 인식이 되지 않는데 의사 선생님 포함 총 3명이 달라붙어 있었다. 한쪽에서는 바이탈을 체크하고, 한쪽에서는 맥박 상태를 재고, 뒤에서는 내가 쓰러지지 않게 붙잡고 있었다.
목소리가 들리냐고 했는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목 윗부분 전체가 싸늘해졌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내는 계속해서 괜찮냐고 물었고, 내 입술이 시퍼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랬구나, 어떻게든 뭐라고 입술을 떼보려고 했는데 움직일 수 없었다. 또다시 호흡이 흐트러지고, 시공간이 일그러졌다.
그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이게 의료사고인가. 그러면 나 건강검진 받다가 죽는 건가. 아,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이라도 좋지, 나는 이토록 공복 상태로 죽다니 너무 억울한데, 흑백요리사 완결까지는 보고 죽고 싶었는데 젠장, "아, 너무 아파요,"를 어눌하게 내뱉고 또다시 의식이 날아갔다.
다시 눈을 떠보니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의사 선생님이 계속해서 의식이 날아가지 않게 붙잡고 계셔야 한다고 했다. 아니 그거 어떻게 잡는 건데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입은 여전히 언어를 발하기에는 오작동 상태였다.
"아, 아... 파요. 숨이... 잘... 어지럽고... 푸... 우... 갑자기 이렇게... 우... 아...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
핑핑 돌던 세상이 천천히 중심을 찾는 듯했고, 어지러움은 소멸되기 시작했고, 목 위로 다시 뜨거운 것들이 온수매트 돌듯 제자리를 찾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문장을 똑바로 말할 수 있었다. "이제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침대에 누워서 안정을 찾고 나니 의사 선생님은 ‘미주 신경성 실신’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다. (이것은 ‘극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긴장으로 인해 혈관이 확장되고 심장 박동이 느려져 혈압이 낮아지는 현상이 갑자기 나타나는데, 급격히 낮아진 혈압 때문에 뇌로 가는 혈류량이 감소하여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 것을 미주 신경성 실신이라고 한다 _ 네이버 백과사전) 아내는 내가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고 했다. 두 손을 꼭 잡았다. "살았다면서."
긴장이 더 가속되긴 했지만, 그래도 수면마취를 잘하고 내시경 검사도 잘 끝냈다. 몸은 건강하고 씩씩하다고 했다. 다만, 몸인지 정신인지가 충격이 심했는지 오는 길과 집에 와서는 꽤 앓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의식을 잘 잡아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정말 잘 잡은 거라고 하셨다. 문득 나는 내가 그렇게 살고 싶었던 사람인가를 되묻게 되었다. 늘 삶에 대한 의지가 결여되어 있지는 않나 싶은 게 나라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확실히 살고 싶은 마음이 지배적인 시절인 게 맞구나 싶었다.
죽다 살아났다고 해도 무리는 아닌 하루였다. 그러니, 죽다 살아난 것처럼, 잘 살아야겠지. 삶과 죽음이 참 종이 한 장 스럽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