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썼던 시를 한 데 모아 브런치북에 지원했다. 시를 쓰고 주변 사람들한테 살짝살짝 보여주는 일 말고 이걸 정리해서 어디에 지원하는 이런 행동을 해 본 건 처음이다. 6년 전에 쓴 시부터 최근에 적은 시까지 해서 총 29편을 묶어 지원했다.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내 시가 낡아진 건지,세상살이에 지친 내가낡아진 건지,첫 지원임에도 어떤 기대나 감흥은 크게 없었다. 그래도 의미 있게 추려진 시들이 내 나이만큼 생겼고, 그걸 한 군데 모아서 볼 수 있게 된 건 마음에 든다.
나는 여기에 시도 쓰고 수필도 썼다. 시와 다르게 수필은 쓰고 나면 어떤 부분에서 너무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올리고 나면 항상 내릴까 말까 고민이 든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나라는 사람을 과대평가하거나 또는 평가절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글에 적힌 생각이나 감정이 곧 나라는 오해를 줄 수 있는 점이 좀 그렇다. 어제는 했던 생각을 오늘은 하지 않을 수 있고, 오늘 느꼈던 감정을 내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게 사람이고,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일 뿐이기 때문이다.
문득 그동안 쓴 수필을 전부 다 내릴 생각을 하고 브런치스토리에 들어왔다가, 내가 적은 글들로부터그러지 않는 게 어떠니하고 묘하게 설득(?)당하고, 되려 새로운 글을 이렇게 적고 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적은 글들이 생생하지 않고, 정말 누구세요?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설다. 하지만 그때의 내 생각이, 내 감정이,그것들로 적은 글들이그때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어떤 설득이나 위로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떤 시기에, 내가 어떤 선택을 왜 했었는지 잊고 살다 보면스스로가 되게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지난 글 속에서 그때의 나를 다시 돌아보면, 내가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했었구나, 기특하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현재의 나에게 가장큰 위로이자 좋은 자극이 된다.
사실 나는 올해 2월부터 지금까지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정말 입력(독서)이 없으니 출력(글)도 없었다. 글은 각 잡고 쓸 때보다 저절로 써질 때 좋은 글이 되는데, 올해는 하고 싶은 말보다는 하고 싶지 않은 말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글을 쓰지 못했다. 올해는 유독 밤에 잘 때 악몽을 정말정말 많이 꿨는데 어쩌면 글을 쓰지 않았던 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나처럼 생각 많은 애가 딱히 누구와 깊게 이야기하지도,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그저 일만 하면서 한해를 보내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런데도 올해는 진짜 그냥 죽어라 일만 했던 그리고 여전히 그러고 있는 중인 좀 특이한 해인 것 같다. 그냥 살다 보면 이런 해도 있는 거겠지 반체념하면서 어서 이 시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