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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Jun 01. 2023

맥시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이제 나는 착한 척, 괜찮은 척, 양보할 수 있는 척 그만하고

올해 1~3월의 내 모습과 지금 내 모습을 비교하면 도저히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괴리감이 든다. 물론 1년 전과도 2년 전과도.. 아무튼 지금 모습은 스스로에게 매우 새롭다. 스스로가 느끼기에 요즘이 제일 정말 나로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넌 스스로를 전사로 여기니까."



분명 어디선가 봤던 어디선가 들었던 말인데 출처가 도저히 기억도 안 나고 검색해도 안 나온다. 어떤 영화의 대사였던 것 같다. 요즘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언젠지도 모를 그 어느 시점부터 나는, 외부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전투력을 완전히 잃었었다. 오랫동안 되찾지 못했고, 오랫동안 찾아헤매다 최근에 다시 되찾았다. 힘들면 의지하고 싶고, 털어놓고 싶고, 뭐라도 도와줬으면 싶은 연약한 마음이 20대 내내 나를 외롭게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에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오기가 든다.


최근에 정말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 '구미호뎐 1938'에서 반은 여우, 반은 인간인 '이랑'이 구미호인 자신의 이복형(이연)이 친구를 구하러 저주받은 자들의 시간에 들어 가 있는 동안, 형이 자신의 세계와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실끈을 붙잡고 혼령들과 싸우는 장면이 있다. 이랑은 한쪽 손에 도끼를 잡고 싸우지만, 나머지 한쪽 손이 끈을 잡고 있어 자유롭지 못한 탓에, 혼령들이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칼에 일방적으로 베이기만 한다. 그런 이랑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20대 내내 도전하거나 부딪혀 왔던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외로운 싸움 끝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고생, 아무도 알지 못했던 고통들이 전부 생각났다.



<사진 출처> tvn드라마 '구미호뎐 1938' 공식홈페이지



더 이상 나에게는 지난 꿈들도, 지난 사랑도, 지난 인연들도 전부 내 후회가 아니다. 가 20대 전반을 통틀어 가장 후회되는 게 있다면 남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나 자신을 먼저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왜 그랬냐 하면은 늘 나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그게 남의 인정이 됐든, 연인의 사랑이 됐든, 누군가의 관심이 됐든, 뭐가 됐든 그랬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진창에 빠지고 또 빠지고 개똥밭을 몇 번이나 구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보다 중요한 건 없구나. 


내가 강하면, 내가 나를 잘 챙기고 돌볼 수 있다면, 모든 강한 힘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구나.



회사에 막 들어갔을 때는 저축을 해야 하니까, 중간에 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데이트비용을 따로 빼둬야 하니까, 연애를 하다 결혼이 하고 싶어졌을 때는 결혼자금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러다 헤어지고 연기를 배웠을 때는 학원비를 모아야 하니까.. 등등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단 한 번도 내가 버는 돈을 온전히 나에게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근 몇 개월 동안 월급 대부분을 나에게 다 털면서, 쇼핑중독으로 살면서, 솔직히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요즘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건, 사회생활을 할 때 대부분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동하는 것. 선을 넘으면 넘었다고 어떻게든 알려주고 뒤끝 안 두는 것. 남 눈치 보느라, 두꺼운 가면 뒤에 꽁꽁 숨어 사느라 굽어 있어 기를  폈던 진짜 나를 되찾아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강할 수 있던 나를, 이렇게 강했던 나를, 이렇게 강한 나를 그동안 어디다 버려두고 한참을 헤맸을까.



내가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해서 그게 남의 인정으로도 이어지는 것, 그럴 때 마음껏 누리는 것, 나에게 돈을 쓰는 것, 남보다 나의 가족들을 먼저 챙기는 것, 대학 휴학 때 배웠던 포토샵, 일러스트가 두고두고 유용한 것처럼 내가 살면서 도전하고 배웠던 것들을 언제가 됐든 꼭 다 쓰고 죽으리라고 믿는 것 등



이제 나는 착한 척, 괜찮은 척, 양보할 수 있는 척 그만하고


내 행복에 맥시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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