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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다움 Mar 13. 2022

금전 부탁 거절 1

 " 500만 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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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전 부탁 거절 1 - " 500만 빌려줘."     


나의 역량으로 부족하지만,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한 부탁으로 곤란했던 경험이 있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저의 대처가 참 아쉽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이웃) 친구를 잃었습니다.     


십수 년 전, 아이들도 동갑이라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도 자주 가지며 가족보다 가깝게 지냈었던 이웃이 있었어요. 그렇게 알고 지낸 지 5-6년 정도 흐른 어느 날.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던 한 언니가 어느 날 제게 말했어요.      


“자기야, 나 1,000만 원이 급하게 필요한데 3개월만 빌려줄 수 있어? 내가 매월 이자는 10만 원씩 넣어줄게. 이번에 신제품 만드는 자재값이 부족해서 여기저기 빌렸는데, 1000만 원 정도가 더 필요한데 융통할 데가 없네. 당장 내일이 납입 마감일인데 어떡하지?”      

지금 시즌에 필요한 물건 자재를 선점하지 못하면 이번 시즌은 날리는 거라며, 방법이 없겠냐며 곤란한 사정을 털어놓습니다. 나는 돈 부탁 앞에 난감했고 또 갈등도 되었다. 당시 나에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통장에 넣어둔 여유자금 500만 원 정도가 있었는데, 없다고 딱 잡아떼지를 못했지요. 하지만, 필요하다는 1,000만 원을 만들어 주기엔 애매해서 잠시 고민을 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언니 사정이 어려운가 보네. 근데 내가 1000만 원은 없고, 지금 500 정도밖에 안되는데, 어떡하지?”

“그래??? 그럼 그거라도 빌려줄래? 나머지는 내가 또 구해봐야지 뭐. 다행이다. 고맙다. 통장 번호 보낼게. 지금 바로 보내줄 수 있어?”

“응..? 어... 지금 보낼 수 있어.”      


그렇게 얼떨결에 500만 원을 빌려주게 되었는데, 성인이 되고 개인 간 돈거래로 가장 큰 금액이었다. 속으로 ‘아... 이건 아닌데...’ 그냥 없다고 할걸... 싶었지만, 이미 카톡에는 통장 번호가 도착했고, 나는 그렇게 500만 원을 송금했다.     


“진짜 고마워. 자기 덕분에 내가 한숨 돌렸다. 이자는 다음 달 10일에 보내줄게. 통장 번호도 미리 적어줘.” 

그리고 약속대로 다음 달 10일, 내 통장에는 그 언니의 이름으로 10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약속한 이자는 제날짜에 잘 도착했다. 정확히 3개월 뒤, 원금을 돌려주기로 약속 한 날. 그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야, 미안한데, 내가 추가로 자금이 필요해서 그러는데 그 500만 원, 내가 두어 달만 더 쓰면 안 될까? 어차피 통장에 두기보다 이자라도 받으면 좋잖아.” 한편이 찝찝한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그 돈이 급히 필요하지도 않았기에 그러라고 했어요. 그렇게 두 번의 연장 요청이 이어지자 내 마음은 점점 불편해졌습니다. 하지만, 부탁을 거절하면 그 언니가 어려움에 빠질 것 같고, 관계가 어색해질 것 같은 마음에 거절도 하지 못했지요.     

그런데 이후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의 끝마다 돈을 조금 더 구할 수 없겠냐는 말을 들으니 그 언니와의 통화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500만 원이 마치 볼모로 잡혀있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냥 줄 거면 모르지만 지인과 돈거래하지 말라는 말, 그러다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다는 말이 완전히 이해되었어요.      


세 번째 상환을 약속한 날. 언니는 예상대로 돈을 더 빌려 쓰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그간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며 준비한 말을 톡으로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언니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직접 전화로 말할 용기가 안 났기 때문입니다.     

“언니, 사업상 어려운 건 알겠고 오죽하면 나에게 계속 부탁을 할까 싶어. 근데 나도 갑자기 돈을 써야 할 데가 생겼어. 애들 아빠가 사업을 준비한다면서 이래 저래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미안한데 더는 돈을 못 빌려 줄 거 같아. 사정이 딱한 거 알겠는데, 내 상황도 좀 바뀌었어... 더 이상 도움이 못되어서 미안해요. 그리고 언니, 나는 언니랑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자꾸 말 끝에 돈 이야기를 꺼내니까 언니랑 대화 하기가 너무 불편해. 난 그냥 전처럼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몇 달 전부터 준비한 이 몇 문장을 용기 내어 보냈고, 그렇게 내 통장을 떠난 500만 원은 거의 1년 만에 되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내가 얻은 것? 이자 몇 십만 원. 

잃은 것? 편하게 고민을 나누고 대화하던 이웃.     


허탈했던 건, 당장 그 돈이 없으면 일이 어떻게 될 것 같던 그 언니는 내가 그 부탁을 거절하고도 별 탈없이 일이 진행되었다. 그건 참 다행이었지만, 그 상황을 지켜보는 내 기분은 좀 묘했다. 아... 난 호구였던 것인가. 거절 못하는 나를 투명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인가? 물론 그런 의도로 나를 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지를 준 건 나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나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제,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하던 그 언니와는 이제 연락을 하지 않는다.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결정적인 계기가 그 사건인 것은 확실하다. 그때 만일 내가 처음부터 안된다고 정확한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면 관계를 지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지금도 종종 큰 아쉬움과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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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sh77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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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이 어려운 당신에게

<당신의 거절은 안녕하신가요 / 김선희>

https://www.nadio.co.kr/series/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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