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아빠가 돌아가신 후, 홀로 된 엄마는 자식들에게 기대어 노년을 보내고 싶지 않다며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다음 목표는 사회복지사라는데, 이건 학교 졸업장을 먼저 취득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최근 결심한 책 쓰기. 하고 싶음 마음은 있는데,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엄마와 틈틈이 이야기를 나누며 옛날 기억을 꺼내고 있는 중이다.
"엄마 그땐 어땠어?" 라는 나의 질문 몇 마디에 어디서도 한 적 없는 내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신나고,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나는 그 모습에 마음이 뭉클하다. 주인공으로 살아본 적 없다는 당신 인생 이야기. 그저 들어드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하시다니... 이런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속에서 발견한 게 있다. 그건 바로 ‘아... 엄마의 말과 삶의 태도가 내게 새겨졌구나.’라는 것이다.
학창 시절, 우리 가정의 경제는 늘 불안정했다. 농사를 짓다 도시로 나온 가장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한계가 있었기에, 아빠의 급여로 5 식구가 살기는 늘 빠듯했다. 어려운 형편을 아는 이웃과 친척들은 아들딸들을 상고나 여상에 보내서 일찌감치 돈을 벌게 하라며, 충고를 가장한 간섭을 늘어놓았다. 나는 못 배웠어도 자식들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엄마에게 “분수도 모르고, 허영심에 가득 차 잘못된 판단을 한다”며 뒷말을 만들었고, 그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엄마는 프로참견러 ‘동네 언니들’이 쏟아내는 말들에 자주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수록 오기가 발동했다고.
‘내가 알아서 할게요. 남의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말고 당신 인생이나 잘 사세요. 나는 딸라빚을 내서라도 내 새끼들은 대학졸업 시키고야 말 테니.’라며 이를 악물었고, 그들과 적절히 거리를 두며 묵묵히 엄마의 갈길을 갔다. 막내딸이 학사모를 쓰던 날, 엄마는 펑펑 우셨다. 인생의 목표 하나를 무사히 이루어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으리라.
그 시절, 모두가 손가락질할 때 한 아주머니만 엄마에게 이렇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한다. “나중에는 인숙이 니가 제일 나을 거야. 우리야 먹고살만해서 애들 공부시키고 싶어도 지들이 안 한대서 못 시키는데, 솔직히 나는 부럽다. 지금 힘들어도 참으면 좋은 날 올 거야.”그리고 그 아주머니의 예언대로, 지금 엄마는 초등학교 동창회에서도 친목계에서도 “니가 제일 낫다. 부럽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아마도 이 아주머니의 한마디가 엄마를 버티게 한 말이었겠구나 싶었다. 나중에 이 분을 다시 만나면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리라. 그리고 다시 한번 결심했다. ‘다른 사람이 불가능해 보이는 무언가를 한다 할 때, 무조건 응원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은 게 있다. 약간 소름이 돋기도 했다. 엄마처럼 궁상맞게 살지 않겠다던 나였지만, 결국 ‘나의 실행력과 불필요한 소리를 차단하며 멘탈을 관리하는 것은 엄마로부터 배운 것이었구나!’ 현재 처한 여러 일들 중 '죽고사는 문제 아니면 그냥 좀 둬도 된다는 ‘선택과 집중’ 스킬도 엄마로부터 배운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되짚어보니 흥미로운 건, 엄마의 교육열은 높았음에도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엄마로부터 “공부해라”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는 거다. 오히려 내 뇌리에 박힌 말은 "일찍 자라"는 말과 “공부보다 사람이 먼저 돼라.”였다. 지금도 손자 손녀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레퍼토리엔 “늬 엄마는 할머니가 한 번도 공부하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불을 끄라고 해도 사각사각 연필로 뭐를 끊임없이 써서 할머니가 일찍 자라고 혼냈었지.”이다. 사실 뭐 하느라 새벽에 스탠드를 켜고 있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분명 낮에 못한 숙제 같은 거였을 거다. 근데 엄마는 늘 그것조차도 딸이 중요한 일을 하는 거라고 믿고 수면 부족을 걱정하셨다.
그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더욱 또렷해지는건, 당시엔 인지하지 못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엄청난 걸 받았었구나 라는 거다. ‘내 딸은 나보다 낫다’는 존중. ‘우리 딸이 하는 건 뭐든 옳은 거다’라는 지지. ‘쟤가 하는 일에는 이유가 있어’라는 믿음.
부모님이 내게 주신 무한 믿음과 지지.
(자습서 값을 올려서 말하던 거짓말을 했던 때도 알면서도 속아주셨음을 알았다.
그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셨다고...)
옳고 그름을 가려서 할 말과 안 할 말, 만날 사람과 멀리할 사람을 구분해낸 지혜.
누가 뭐라 하던 나는 나의 길을 간다는 굳은 심지.
그리고 ‘사람은 사람 구실을 해야 사람’이라는 가르침까지.
끼니걱정을 해야할 만큼 어려웠던 시절. 그 시절을 추억하는게 괴롭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풍성하게 느껴지는건 그것들을 온몸으로 받았던 정서적 충족감 때문이었구나. 난 이것을 마흔 중반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그게 엄마로 부터 내게 새겨진 유산이었음을. 이제야 엄마의 주변에 고민을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고, 문제가 생기면 송사를 가려 달라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왔던 이유를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