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보니 4살 우리 집 꼬마이다. 내가 살짝 눈을 치켜들며 "지윤아 하면 안 되지~ 엄마라고 해야지!"라고 말하니 씩 웃으면서 "지윤아 하면 안 되지~ 엄마라고 해야지~"라고 따라 말하며 방으로 쏙 들어간다.
우리 집 4살 꼬마는 (애)정이 많다.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와 헤어지는 날이면 아쉬움에 정말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린다. 다음날까지 헤어짐의 아쉬움이 남는지 "할머니 보고 싶어. 할아버지 보고 싶어." 말하는데 그 서러움이 쉽게 가지 않아 보여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자기 전 엄마와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 시간에는 "엄마 사랑해~ "라고 말하며 나를 꼭 안아주고 밥 먹을 때 눈이 마주치면 밥 먹는 내 얼굴을 잡고 동그란 얼굴로 "엄마 오물오물해봐"라고 말을 한다.
아이의 눈을 보고 내가 웃으면 눈이 보이지 않게 따라서 씩 웃고, 누워서 배가 아프다고 하면 얼른 달려와 배를 만져주며 "괜찮아? 서진이 손은 약손 해줄게, 안 아프지?"라고 말하는 애교도 많고 정도 많은 아들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성별을 안 순간부터 "아들이에요."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딸이 있어야 엄마가 좋다, 다음에는 딸을 낳아야겠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했다. 나도 딸이기에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엄마에게 딸이 없으면 외로울까? 딸이 있다면 외롭지 않을까?
나는 결혼해 30년을 같이 산 엄마와 멀리 떨어져 지금은 명절이나 생일과 같은 이벤트가 있어야 얼굴을 보고 있다. 같이 살 때도 엄마에게 그다지 살갑지 않고 애교도 없었으며 종종 인정머리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딸이었다. 그렇다고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아니다. 몸은 떨어져 있어 말로 하나하나 표현하진 못해도 각자의 삶 속에서 지난 시간의 사랑과 정으로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
살가운 딸, 무뚝뚝한 아들... 아이의 성별에 따라 아이의 성격이나 기질을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가 필요하고 누가 있어야 한다는 건 그저 엄마의 기준과 생각이며 그것과 상관없이 아이는가진 성격과 기질대로 자랄 것이다.
꼭 딸이 있어야 하나요? 아직은 잘 모르겠다.
물론 아직은 엄마품 안의 아들이기에 하는 말일 수 도 있겠다. 하지만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거실에 내려놓으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수건은 내가 갤 거야" 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수건을 접는 모습을 볼 때, 청소기를 미는 엄마 옆에서 장난감 청소기를 야무지게 미는 모습을 보며 나는 행복하다.
딸이든 아들이든 나와 함께 하는 이 어여쁜 아이와의 소소한 일상이 나는 재밌다. 투닥투닥하기도 하지만 매일을 서로 사랑하며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들이어서 몸은 더 힘들 수도 있지만 마음은 똑같이 행복하다. 꼭 딸이 없어도 괜찮다. 어쩌면 나의 위안일지도 모르겠지만 딸이 태워준다고들 말하는 비행기는 나중에 남편과 내 돈 주고 타기로 하고 지금은 우리 집 예쁜 꼬마와 함께 하는 행복을 마음껏 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