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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Jan 25. 2024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

설렘과 두려움


요즘에는 통 바빠서 글을 쓰지 못했다. 하나 깨달은 것이 글을 쓰려면 어느 정도 ‘감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흥을 돋우는 음악에 내리쬐는 햇살, 그 앞에 놓인 시원한 라떼 한 잔의 고소한 커피 향이 코를 찌를 때 비로소 나는 생각에 잠기고 글을 써 내려가게 되는 편이다.


일단 최근에는 카페에 혼자 갈 만한 시간도 없었거니와 글을 쓸 만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을 만큼 바쁘게 일상이 흘러갔다고 핑계를 대본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무작정 유튜브 뮤직을 틀었다.

’오늘은 꼭 글을 써 내려가야지 ‘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


사람은 ‘새로운 것을 하는 것’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는다. 설레면서도 두려운 감정.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두렵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에 번거로움을 느낀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못했던 것을 곧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한다. 물론 두 가지 중 어느 한 감정이 더 우세하기 마련이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수학학원에서 시그마(Σ)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배우는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묘하게 들떴던 기억이 난다.

‘나도 선배들이 그리던 저 시그마(Σ) 모양이 무슨 뜻인지 알고 쓸 수 있게 되는 건가? 완전 멋지다!‘

미분과 적분 기호를 배울 때도 그랬고, 기하와 벡터를 처음 배울 때도 그랬다. 월반하는 기분, 선배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느낌? 게임으로 치면 장비나 스킬 하나를 더 장착할 때 느끼는 자신감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의 나를 떠올려 보면, 모르는 것을 알게 될 때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뿌듯했으며, 호기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벅차곤 했다.

미지의 영역이었던 부분을 ’알게 된다‘라는 사실에서 나의 세상이 넓어진다고 생각했던 걸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비단 학창 시절 책 속의 몇 가지 수학공식뿐만이 아니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는 것, 비행기표를 처음 끊거나 막힌 화장실 변기를 뚫는 일 같은 사소한 일상의 사건들은 모두 처음 겪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처음 하는 일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하기 싫을 수도 있고, 또는 반대로 그것의 신선함에 흥미로울 수도 있다.


요즘의 나는 어땠을까?


요즘의 나는 흥미진진하고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과 더 가깝게 살고 있다.

매일 가던 카페에서 아이스라떼를 마시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퇴근하자마자 꾸덕한 녹차그릭요거트를 사러 간다.


3년 전 인턴 시절 수술방에서 정형외과 수술 스크럽을 서던 때였다.

3년 차 전공의 선생님이 수술 준비를 하며 지루한 공기를 깨기 위해 노래를 틀으며 말했다.

“선생님, 34살부터는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대요. 그런데 내가 요즘에 진짜 듣던 노래만 들어.”

27살이던 그때, 나는 속으로 ‘풉’ 하고 웃었었는데, 문득 익숙한 노래만 찾고 있는 지금의 나를 발견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익숙한 것이 편하고, 길들여져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단 익숙하고 잘하는 것만 하려는 것은 찾는 것은 편해서만이 아니다. ’몰라‘라는 말이 자존심 상해서일 때도, 새롭게 알아보는 것이 귀찮기 때문일 때도 많다.


그리고 요즘의 나는 모르는 것을 맞닥뜨릴 때면 두려움을 먼저 느낀다.




병원에서는 새로운 상황들을 맞닥뜨리며 배우는 것이 많다. 열이 나요, 몸을 떨어요, 심박수가 빨라요. 수많은 증상들을 보고 왜 그런지 찾아내고, 원인이 있다면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인데, 거의 항상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오히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병아리 시절에는 “나 열심히 배우고 할 거예요!”라며 의욕 만땅이었는데,

1년쯤 지나니 조금만 일이 삐끗하는 부분이 생기면 더 크게 자책하고는 했다.

“아직도 모르는 게 이렇게나 많고, 아직도 이런 자질구레한 실수들을 한다니!”

그렇게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머뭇거리며 배움의 의지를 잃게 되며 일 권태기가 찾아왔었다.



그럼 나는 1년 동안 과연 전혀 성장하지 않았을까?


1년 차 첫 달에는 항생제 처방을 내는 것조차도, 내가 사람 몸에 항생제를 들어가게 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혈액검사 처방을 낼 때도, 내가 사람을 찔러서 피를 뽑아도 되는 건가 싶었다.

벤틸레이터를 처음 만져볼 때도, 도파민 같은 혈압상승제를 처음 달아볼 때도 손이 떨리고 내가 해도 되는 게 맞나 싶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생경하고 두려운 순간들이 많았다. 그리고 두려운 만큼 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분명, 익숙하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해내는 일들이 많이 있다.




오늘 좁은 폐동맥판막을 넓히는 시술을 하고 신생아중환자실로 올라온 아기를 혼자 받아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분명 벤틸레이터는 이렇게 조정하고, 카테터는 이렇게 뽑으라고 배웠는데, 이게 맞겠지?‘

 분명 맞는데, 처음 혼자 해본다는 게 두려웠다. 그 당시 마음속은 똥줄 그 자체였지만 어찌저찌 잘 정리를 하고 난 뒤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려워하지 말 것. 모른다고 부끄러워하지 말 것. 결국 너도 다 하게 될 것이니까.

그리고 배웠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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