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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유 Oct 06. 2024

나를 찾아 떠난 곳 - 동물원?!

우리 이제 만나

나를 너무 찾고싶어 급 휴가를 냈다.


개천절이 시작되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연달아 쉬게 되었다. 토요일은 친구와 성수에 가기로 했고, 목요일과 금요일이 비는데 뭐하지?


평소에 보내던 일상과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어 계속고민했다. 한남에서 종일 시간을 보낼까, 아니면 매일 생각만했던 여수같은 곳을 당일치기로 다녀올까, 친구네 고양이를 보러갈까, 아님 근처 새로운 카페를 찾아볼까?


도저히 마음에 드는 답이 떠오르지 않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뭐하지? 뭘하면 이 소중한 시간을 까아득 알차게 쓸 수 있을까?”로 시작하긴 했지만 서로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면서 한시간을 깔깔댔다. (친구가 미드저니로 내 캐릭터를 만드느라 전화를 못 끊을뻔 했다.)


안닮았다. 고양이는 닮음
이 또한 1도 안닮았지만 친구가 나+아이언맨 조합으로 창의성을 발휘하여 칭찬해주었다.


그래 일단 자고 일어나보자. 나는 언젠가 P가 되고 말테니까!(엄청난 J이다, 이 자체가 J라고들 했다.)


P들은 보통 이런댔어. 일어나서 그때 하고싶은걸 하자.

‘그때도 하고 싶은게 없으면? 그러면 아까운 시간만 버리는 거 아냐?‘ 하는 속마음이 움찔댔지만 일단 자자, 잠을 청했다.




같은 질문을, 어떤 멋진 동생에게 보냈었는데 답이 와 있었다. 우선 언니의 질문이 너무 귀엽다, 하고 시작하는 동생의 말에 조금 부풀었다가 이내 몽글해졌다.


이 친구는 알게된지 비교적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보낸 시간에 따르면 누구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고, 기꺼이 행동에 옮기는 친구였다. 지금은 승무원이 돼 외국에 나가있다.


“언니, 요즘 생각으론 나 오롯이 혼자만 존재해서는 나를 알기보다 다른 사람을 마주하면서 그로써 나를 발견하더라고. 내가 더 확고해지든 아니면 새롭게 생각해보거나 해서 차이를 알게돼 나를 정의하는 순간들… 언니의 발견을 응원해”


동생의 말이 마음에 쏙 들어왔다. 그래 세상을 만나러 다시 나가보는 거야.

힌트




어제 잠들기 전 귀여운 수달 영상과 동물들의 안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동물원을 발견했었는데 마침 집 근처라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에어팟을 한번 두고 나가보자.


버스를 탔다. 환승해서 한시간 걸리네, 그런데 괜찮아 드라이브 한다 생각하지 뭐. 원래였으면 현관문을 나가면서 동시에 에어팟으로 귀를 막았을텐데 귀가 열리니 시원한 공기가, 그리고 사람들이 들려왔다.


승객 대부분은 나이 든 어르신들이었다. 마른 몸에 일상 등산복과 모자를 걸치신 분들이었다. 한분이 통화를아주 크게 하셨는데 시끄럽다기보다 그 내용이 궁금했다.


큰 목소리는 저절로 귀에 흘러들어왔지만 억센 말투때문인지 쓰는 단어가 조금 다른건지 귀에 잡히는 내용은없었다. 그래도 수술, 가족, 괜찮다, 하는 작은 단어들은 따뜻한 맥락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동물원으로 향하는 버스




동물원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 사생대회가 있었다. 내가 그린 풍경은 한적한 오르막길에 사람들이 드문드문있는 그런 조용하고 쓸쓸한 동물원이었는데 아니었다.


길목마다 돗자리에서 집에서 싸온 김밥, 도시락, 라면을 먹는 가족단위의 무리들이 많았다. 테이블 위로는 펜, 색연필, 크레파스로 그린 동물원 친구들의 그림이 있었다.


노력하는 어른들과 멋진 작품들


사막여우, 스라소니 같은 동물들은 야행성이라 점심때 주로 잔다. 그런데 손주 보여주려고 일어나라고 큰 소리로 깨우는 사람과 겨울도 아닌데 왜 잠만 자냐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저들은 야행성이라 지금이 자는 시간이에요, 하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내 오만 같아서 말았다.


그 와중에 스라소니를 보고 야옹이라고 부르는 어린친구들도 있었고 귀엽다고 만지고 싶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엄마의 주의주는 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사막여우와 스라소니


보고싶었던 사막여우와 수달이 일어나려면 한참 기다려야할 것 같아 미리 봐둔 카페를 향해 택시를 불렀다.

"오늘은 이런 외진 곳만 걸리네유" 하는 택시기사님의 말씀에 "아유 죄송해유 오늘 저같은 사람이 많나봐유"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가는 길에 작은 절이 보였다. "저런 데는 일반인에게 열려있을까요?" 묻는 내게, "저런 데를 좋아하시나봐?“하는 기사님.


"네, 제가 오늘은 좀 쉬고 싶어서 이런 조용한 델 찾아왔어요. 비도 오는데 기사님 덕분에 감사히 잘 왔습니다. 기사님도 다음에 여기 한번 와보세요~" 하고 기분좋은 오지랖을 부리자 기사님이 "알겠어요" 하고 웃으셔 왠지 뿌듯했다.

 

외진 곳이라 콜을 잡기에 좋지 않아 조금 죄송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기사님도 잠깐이나마 경치를 즐기셨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좋은 경치라도 그냥 지나치면 그냥 하나의 풍경이지만

어떤 계기로 아 이곳이 좋은 곳이구나를 인지하고 느끼면 그 시간은 굉장히 크게 달라진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서도 순간 순간을 눈에 담곤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잘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바로 미움 때문에.


미움의 대상에 온 신경을 뺏겼었다. 미움이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이구나. 미워한다면서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보다 더 생각하고 있었구나.


대상을 미워하는 자아를 나의 배경자아가 포착한다. 미워하는 마음을 꼭 붙잡고 있지 말고 슬며시 놓아봐야지. 대신 이제 서늘해진 이 공기를 내 속에 머금어볼까.


고양이가 내 품안에서 웅크리고 있을 때 나와 고양이 사이 공간이 포근함으로 가득 차듯이 서늘한 공기도 그사이에서 훈훈해지겠지.


반달가슴곰의 '느헝', 너의 무던함을 갖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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