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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지 못한 기억

by 고은유


필요한 게 많던 스무살, 역 앞 가죽 가게를 종종 드나들곤 했다. 그 가게엔 구두와 가방이 주로 있었는데 수제라 품질이 꽤 좋았고, 그에 비해 가격은 합리적이었다. 특히, 사장언니가 흥정을 잘 받아줘서 사는 재미가 있었다.


그 날은 약속시간 전 시간이 조금 남아 구경을 갔더랬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물건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작정 둘러보고 있던 차였다.


추운 겨울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나 하나였다. 덕분에 나는 사장 언니의 집중마크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내게 이것저것을 권해주었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꽤나 흘러갔고, 나는 나올 타이밍을 잡지 못해 가게에 붙잡혀있었다.



결국, 나는 단 한번도 내 눈길을 끌지 못했던, 어떤 소가죽으로 만든 까만 원기둥 모양의 토트백을 들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봐도 가죽의 질은 좋았으나, 어딘가 만들다 만 듯한 디자인의 가방이었다. 몇만원 수준이었지만 당시의 내겐 작은 돈이 아니었다.


처음엔 살 생각이 없어 정중히 거절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장사 첫시간에 와서 이렇게 안사가면 오늘 하루 장사가 망한다’느니, ‘이 정도 품질이면 거저 주는거’라느니 하는 연장자의 말에 나는 쉽사리 거부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그 가방은 한 두번 들었나? 이왕 산거 잘 써보려고도 했으나 너무나 내 취향이 아니었고, 또 거절을 하지 못해 피같은 용돈을 날렸다는 사실이 죄스러워 조용히 내 기억에서 잊혀졌던 것 같다.


그날의 경험으로 나는,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최대한 빨리 시선을 거두고 상대방에게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으려고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제 가게에서의 거절에는 어려움이 크게 없다. 가게 밖에서가 문제지.


거절의 앞뒤로는 기대, 불만족, 불안감, 걱정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얽혀 있다. 거절의 어려움에는 상대방이 받을 불만족과 상처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 안을 파고 들면 실은 피하고 싶은 내 감정들이 하나씩 나온다.


상점 밖에서의 거절에 대해서는 다시 남길 기회가 있을 듯 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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