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해계획을 12월 마지막주에 세운다. 몇해 전엔 1월 1일에 세웠다. 그 다음해엔 12월 31일에 세웠다. 그러다 이게 하루만에 세울 일은 아닌 것 같아 조금씩 당기다보니 12월 중순까지 왔다.
계획을 세우면 1월 1일부터 시작하는게 아니라 그 즉시 12월부터 시작한다. 계획이란 게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는 일이라 며칠간 시험삼아 해보고 조금씩 고칠 요량으로 그렇게 한다.
사람 마음이 그렇다. 1월 1일부터 새로이 마음을 단장하고 딱 시작했는데 살짝만 삐끗해도 마치 소개팅을 위해 완벽하게 세팅을 마쳤는데 하필 진흙이 튄 것처럼, 굳게 믿고 있었던 마음이 어찌할 바 없이 접힐 때가 있다. 한번 접힌 마음은 풀썩 무릎이 바닥에 닿으며 이제 나는 끝났어 외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 12월말에서 새해까지의 기간에는 그럴 일이 없다.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내 계획에서 어떤 점이 과한 욕심이고 무리라는 걸 발견하는 시간이라 계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 자체가 잘하는 짓이다. 아직 1월 1일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틀려도 내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늘 못해도 내일 다시 하고, 그러다보면 마음근력이 생겨 본게임(?)이 시작되는 새해에 보이지 않는 조력자로 힘을 보탠다. 게다가 며칠 일찍 시작했다는 묘한 쾌감도 있다.
최근 어떤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보통은 1년 정도 준비하는 시험인데, 시기적으로 잘 맞지 않아 내게는 4개월이 주어졌다. 봐야할 책도 많고 들어야 할 강의는 300개가 넘었다. 남은 날짜로 단순히 나누니 인강만 평일에 5개, 주말에 7개를 들어야했다. 뭐,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모처럼 나의 과감함이 존재를 드러냈다.
처음 2주간은 그런대로 할만했다. 뭔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고, 암기 자체가 오랜만이라 학구열이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런데 3주차에 과연 일이 생겼다. 하루에 목표한 공부량을 처음으로 채우지 못하게 된 것이다. 평일과 주말에 세세하게 세운 계획이 어긋나야 할 이유는 많았다. 누군가의 식사 제안, 늦잠, 초저녁부터 쏟아지는 졸음, 하루하루를 이렇게 재미없이 살아야 하나 하는 물음... 등등
듣지 못한 강의는 하나 둘 마음 속에 쿠웅 내려앉았고 저마다의 무게를 쌓아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는 없었다. 사실 이 인강들 모두를 꼭 들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자신감이었던 것 같다. 근거가 있기도, 없기도 했다.
결국 하루 인강 5개, 주말 7개의 목표를 수정 하였다. 하루를 그렇게 인강에 쫓겨 살고싶지 않았다. 조금 쉬기도, 즐기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점심시간에는 멍도 좀 때리고 퇴근하고는 고양이랑도 좀 놀아주고 주말에는 좋아하는 카페에서 글도 쓰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계획을 수정했다.
다음 타자는 브런치. 일주일에 두번 연재하는 브런치도 이어갈 계획이다. 일년동안 두가지 주제의 글이 쌓이면 값지지 않을까. 값진 글을 쓰는 사람에 한발짝 다가가 있지 않을까.
그 외에 몇가지 목표들이 좀 더 있긴 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목표들은 나의 신년계획이 아니다.
나의 신년계획은 따로 있다. 아주 본질적인...
다음주 정도면 공개할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