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31
2024년은 그동안 머릿속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일들을 많이 실행한 해였다.
고양이를 만나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5km 러닝도 다 뛰어보고, 수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한 해였으니, 그 마무리를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템플스테이를 가게 되었다.
템플스테이는 몇해 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오랜 벗에게 함께 가자고 연락을 했고, 친구는 단숨에 승낙했다. "그래. 가자."
그리하여 영천에 당도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산 속 맑은 공기, 고즈넉한 절, 매우 낮은 인구 포화도. 이 모든 것이 나를 들뜨게 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계속 났다. 뛰어다니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절에서는 경건해야하는데 이렇게나 신이나서 큰일이네. 어릴 적 누구에게도 제지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나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에...)
화장실이 없는 방으로 배정받았다. 둘이 이용하기에 꽤나 컸고, 따땃한 온돌바닥이 우리를 맞이해줬다. 얼마만의 온돌방이야. 한발 들어서자마자 온몸이 노곤해졌다.
그렇게 잠시 누워있다보니 어느새 저녁 공양시간. 공양간에 도착하니 우리같은 일반인과 스님들이 여러 테이블에 띄엄띄엄 앉아 계셨다.
'아, 마주보면 안되나보구나.'
친구랑 나는 눈짓을 주고받으며 일자로 앉았다. 우리는 한술 더 떠 나란히 앉는게 아니라 사이에 한 좌석을 비워놓고 띄어 앉았다.
이 음식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수많은 인연들이 있음을 상기하며, 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합장을 올리고 식사를 했다. 벽에는 '묵언'이 적혀져 있었다.
말없이,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밥술을 떴다. 그러자 금세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그 순간에 집중이 되었다. 참 희한한 일이지.
앞에 놓인 음식을 꼭꼭 씹으며 아무도 없는 정면을 바라보니 내 자신이 정돈되는 것 같았다.
동시에, 잊어버렸던 기억이 살아났다.
예전의 나는 말수가 없었고, 조용했으며, 차분했다. 밥은 꼭꼭 씹어 천천히 삼켰으며, 조금만 먹었다.
요즘의 나는 어떤가? 말수가 꽤 늘었고, 활발해졌으며, 기본적으로 차분하나 가끔씩 마음이 요동칠 때가 있다. 밥은 시간이 없어 몇분만에 먹기도 하고, 대충 때우기도 하고, 도파민 충전을 위해 먹기 일쑤이다.
뭔가 망쳐진 느낌이 들었다.
예전의 내가 떠오르며 예전에 내가 좇았던 가치들, 그리고 나의 모습들이 멀어졌단 걸 깨달았다.
그걸 다시 찾고 싶어졌다.
저녁공양을 끝내고 저녁 예불에도 참여했다.
우리는 스님을 따라 부처님께 올리는 일곱번의 절인 칠정례(七頂禮)와 그 유명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을 귀로, 눈으로(해석본을 받았다) 따라가며 절을 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이상하게 그 뜻을 듣고있자니 마음이 후련해지고 개운해졌다.
이것이 옳다 그르다 분별하여 공연히 골치를 썩히고, 때때로 보이지 않는 무엇과 기싸움을 하며 알게 모르게 나 자신과 다른 이를 아프게 한 것 같아 뉘우치는 마음이 들었다.
예불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깜깜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별이 환하게 빛났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 느낌이 좋아서 우리는 다음날 새벽에도 예불하러 나갔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났는데,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마음만은 빛났다.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상쾌했다. 기뻤다. 이 깜깜함 속에 우리가 예불을 드리러 간단 생각에 마치 수양자가 된 것 같았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맨 구석에 일찍이 자리잡고 해석본을 읽고 있다 목탁 소리가 시작되자 따라서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잠깐 돌아봤을 땐 스님들이 아주 많이 와계셔서 놀랐고, 왠지 그 존재만으로도 압도되는 듯했다.
그렇게 아침예불을 드리고 오전 6시에 아침 공양을 했다. 구수한 누룽지가 나왔고, 시금치 무침이 너무 고소하여 맛있게 먹은 이후로 지금까지도 매끼마다 시금치를 먹고있다.
이제 반 정도를 소개했는데 실은 아직 동행 한분을 소개하지 않았다.
연말 템플스테이 신청자는 아주 많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나와 친구, 그리고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 총 셋이 다였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낯선 이와 대화를 잘 나누지 않는 나와는 달리 친구는 스스럼없이 어르신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어느새 동네 어르신처럼 대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이후로 우리 셋은 시간맞춰 만나서 공양도 같이하고 예불도 같이 드리고 함께 암자에도 오르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르신은 교육계에 오래 계시다 퇴직하시고 지금은 여러 활동들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에게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시고, 기회가 될 때마다 지도를 해주시려고 했다. 감사한 인연이다.
우리는 어르신 차를 얻어타고 암자 한 군데에 가기로 했는데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다 스님과 어떤 학생을 발견했다.
"스님을 태워 드릴까나?"
나였으면 주변에 누가 있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어르신의 레이더에 그들이 포착되었고, 내 귀에 어르신의 망설임이 들어왔고 나는 공식적으로 오지랖을 부릴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명분이 생긴 나는 "제가 여쭤볼게요" 하며 차에서 내렸다.
"스님, 태워드릴까요?"
그러자 예상치 못하게 스님은 환히 웃으시며 "좋지요" 하셨다.
예상치 못한 미소를 만나면 얼마나 당혹스럽게도 설레고 신이 나는가.
스님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 하셨다. 스님은 우리에게 고맙다며 군고구마를 안겨주시고 절로 들어가셨다.
"스님. 그런데 혹시 큰스님이신가요?"
스님은 그렇다고 했고, 어르신은 기뻐하셨다. 나는 잘 몰랐지만 큰 스님을 뵙는게 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친구와 절에 와서 함께하는 어른도 만나고, 큰스님도 뵙고, 젊음에 빛나는 학생도 만나게 되었다.
그 학생은 친히 암자까지 우리를 데려다주겠다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학생을 따라 두세시간 정도 산에 오르고 암자에 조금 머무르다 바람도 쐬고 어르신이 챙겨오신 간식도 먹고 사진도 찍고 내려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다시 저녁이 찾아왔고, 우리는 일찍이 잠에 들었고, 또 다시 아침이 밝아 절을 떠나 각자의 삶으로 돌아왔다. 어떤 오로라를 가지고서.
참 신기한 일이다. 혼자 하는 게 익숙하고, 그걸 선호하는 내가 이렇게 함께하는 것의 소중함, 그리고 필요성을 느끼게 되다니.
12월 중순부터 생각해왔던, 2025년 나의 다짐이 확실해졌다. 굳건해졌다.
올해는 나를 많이 내려놓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며 베풀고 수긍하고, 또 나누어야겠다.
처음 방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지지며 소중한 친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시간, 절에는 무슨 음식이 나올까 궁금해하던 순수한 마음, 큰 사고가 있어 자신은 좀 더 빌고 가겠다는 어르신의 마음, 그 새벽에 어둠을 헤치고 예불하러 가던 길, 발 시린 마루에서 어르신과 스님을 따라 절을 올리던 예불시간, 모르는 이를 도와주려는 마음들, 이 모든 것들이 생생히 떠오르며 여운이 길게 남는다.
그 중에서도 새벽녘 함께 방을 나서 극락보전으로 향하는 친구와의 그 길은 잊을 수 없을 듯 하다.
-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공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상행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상행식도 없으며,
안이비설신의도 없도, 색성향미촉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