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고양이의 고충
그림이는 많이 컸다. 몸도 많이 컸고, 의젓해졌다. 성공적인 성묘 진행중이다. 지금의 가을이보다도 훨씬 더 발랄하게 뛰어다니던 아기 고양이는 이제 자신보다 어린 고양이를 차분하게 지켜보는 시간이 더 많다.
예전에는 나를 따라다니며 야옹야옹 재잘거리던 아기 고양이는 내 등, 어깨, 다리, 팔 어디든 기대어 참을 청하거나 그루밍하는 걸 좋아했지만 이제는 내가 잡거나 닿으려고 하면 3초 뒤에 스르르 몸을 일으켜 우리 사이에 30cm 거리를 만든다.
청소년기의 자녀를 둔 엄마의 마음이 이런것일까? 닿고 싶은데 닿을 수 없어... 얘기좀 하자 우리…
서운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해 아기 그림이의 사진과 영상을 종종 찾아본다. 너무 작고, 아기 고양이고, 귀엽다. 그래, 몸집도 커지고 성숙해지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섭섭한 마음을 혼자 달랜다.
하루는 퇴근하고 집안일을 하다 침실로 잠시 들어왔는데 그 짧은 사이 그림이가 따라 들어왔다.
가을이의 소변실수 때문에 최근 얼마간 침실을 닫아 놓았었는데 가을이는 창가를 바라보는 데 한창이었기 때문에 그림이랑 시간을 조금 보낼 요량으로 잠시 침실에서 그림이랑 둘이 있었다.
가을이랑 둘이 있을 땐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그림이가 예전 아기시절 때처럼 사냥감을 열심히 쫓기 시작했다. 꽤나 즐겁게 놀고, 내가 침대에 누우니 이불 안으로 쏘옥 들어왔다.
'그럼 이것도 되려나?'
그림이가 몸을 늘어뜨려 옆으로 누워있길래 그 위로 내 머리를 살짝 기대어봤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다! 도망가지 않는다!
예전의 그림이로 돌아왔다!
아, 혹시...
어쩌면 이렇게 어리광부리고 내 사랑을 듬뿍 받는 모습을 가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게 자신의 약한 부분일 수도 있으니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지만 내 본능은 그렇게 말한다.
이 집안의 첫째로서(?) 6개월 언니로서(?) 좀 더 큰 고양이로서(?) 지켜야하는 권위 같은 게 있나보다.
이렇게 나와 단 둘만 있으니 옛날처럼 잘 놀고, 내게 잘 안기고, 긴장을 풀고 있어서 좋았다. 종종 이런 시간을 좀 만들어줘야하나 싶다.
괜찮냐는 질문에 괜찮다는 대답만으로 정말 괜찮구나, 다행이다 하는(하고 싶은) 순간들이 우리 일상엔 꽤나 많다.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면 괜찮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정말 괜찮은지 궁금하다면, 괜찮았으면 한다면 그 존재가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특히 우리네 고양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