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의 아홉 가지 인생』도나 프레이타스, 문학동네
아무런 생각 없이 게걸스럽게 이야기 한 편을 먹어치우고 싶었다. 문학 서가 앞에서 발견한 책이 바로 『로즈의 아홉 가지 인생』이다. 아홉 가지 인생이라니 환생이라도 하는 것일까, 제목만 들었을 때에는 환상 문학인가 싶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 책은 자녀 출산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던 로즈 나폴리타노가 지속적으로 자녀를 낳으라는 압박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달라진 그녀의 아홉 가지 인생을 교차해서 서술한다.
로즈 인생 3, 일생의 사랑 ‘에디’의 탄생으로 책은 시작된다. 로즈는 아이를 낳으라는 남편 루크, 시부모, 수많은 주변인들의 압박과 투쟁했다. 그러나 아이는 태어났다. 이전이라면 결코 상상할 수 없었겠지만 로즈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딸에게로 굴러떨어졌다.
소설의 장면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년 전 로즈와 루크의 갈등을 보여준다. 로즈는 임신 전 비타민을 먹기로 약속했지만 루크가 처음과 그대로인 약통을 발견한 것이다.
로즈는 십 대부터 결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 루크와 만나면서도 수 차례, 아니 수백 수천 차례 그 사실을 밝혔고 루크는 그때마다 동의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몇 년이 지나자 루크는 생각을 바꾼다. 시부모는 로즈를 만날 때마다 자녀 계획에 대해 묻고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설파한다.
계속되는 요구에 지친 로즈가 산전 비타민을 먹으며 노력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로즈의 내면은 아직도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런 중에 남편이 꽉 찬 약통을 들이민 것이다. 격렬한 갈등을 마주한 로즈의 반응에 따라 달라진 그녀의 인생을 아홉 갈래로 보여준다.
누구나 한 번쯤 무언가를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 어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한 선택이 분기점이 되어 달라지는 인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가 생각났다. 자녀를 낳거나 낳지 않거나, 그리고 그 이후에 또다시 발생하는 선택의 분기점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들.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아 별거를 하다 남편과 결별, 남편이 생각을 바꾸기로 했으나 조금씩 소원해지다 남편 외도로 결별, 자녀를 낳았으나 남편이 외도, 자녀 출산 도중 사망, 임신 초기부터 본인이 외도하다 남편과 결별, 로즈가 마음을 접고 임신 시도를 하다 자녀 ‘생산’만을 위한 관계에 지쳐 결별, 갈등 상황에서 본인이 집을 나와 결별하는 인생 등등.
아쉬운 것은 루크와의 관계는 아홉 가지 인생 모두에서 결별(혹은 사별)로 끝난다는 사실이다. 운명의 붉은 실이라도 연결되어 있는 마냥 로즈는 토마스와, 루크는 셰릴과 이어지고 에디는 친딸이든 양녀로든 로즈의 아홉 가지 인생 모두에 함께한다. 작가는 사람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을까, 로즈와 루크가 진정한 운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했을까.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결별이라고 다 파국은 아니었다. 이혼 후 우정을 유지한 인생도 있었으니. 어쨌거나 로즈와 루크 두 사람이 서로에게 바람피우지 않고 올곧은 헌신을 보이는 인생은 보여주지 않는다. 언제가 되었든 결국 두 사람이 갈라설 것이라는 사실은 루크가 로즈의 요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로즈가 질색하던 자기 방식대로 프로포즈했을 때부터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세상에 나와 찰떡같이 잘 맞는 사람이 존재할까? 아무리 잘 맞는 영혼의 반쪽이라 할지라도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잘 맞았던 부분도 점차 어긋나게 될 것이다. 뭐, 내가 결혼을 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한쪽으로 조금 기울었을 수도 있다.
모든 선택의 분기점에 따른 로즈의 인생과 그에 따른 루크의 선택(가령, 갱생이라던가)까지 고려해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이야기까지 보여주려면 아홉 가지가 아니라 구천구백구십구 가지로도 한참 부족했겠다. 게다가 작가의 초점은 임신 전부터 출산 후까지 여성에게 지워지는 엄청난 부담을 보여주려 했으니 소위 말해 로즈와 루크의 해피 엔딩은 송곳만큼의 지면도 차지할 수 없었을 테다.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부모님, 그중에서도 어머니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로즈의 어머니는 정말 보통의 어머니다. 딸의 인생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어느 정도는 통제하려고 하면서도 딸의 선택을 불안 섞인 마음으로 존중하며 딸의 행복을 바란다. 사랑과 미안함과 감사함과 답답함이 온통 섞인 관계. 로즈의 어머니는 출산을 단호히 거부하는 로즈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시대의 젊은 딸들에게는 이전과 다른 선택지가 열려있다. 로즈 또한 왜 엄마는 외할머니처럼 일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일을 하냐고 묻는 딸에게 ‘요즘은 엄마도 일과 자녀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시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엄마 세대는 어떨까. 전통적인 엄마의 역할을 감당했는데, 나의 자녀는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국적을 막론하고 5060 세대는 여러모로 과도기를 정통으로 맞은 세대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극심한 복통 증상을 보인다. 어거지로 병원으로 가 진료를 보았는데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여기서부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실, 엄마가 아프다. 수술을 겨우 사흘 앞두고 계신 중에 이런 이야기를 읽게 되다니. 작중에서 로즈의 아버지도 어머니의 곁을 지키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빠와 겹쳐져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아빠는 엄마 옆에서 어떤 마음이실까? 투병 중인 로즈의 어머니와 남은 가족의 마음에 극심히 공감되어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자꾸 눈물이 나왔다.
투병과 이후의 상실까지, 언젠가 마주할 현실을 미리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위로를 받았다. 나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먼저 겪은 사람들이 있구나. 상실 이후에도 상처는, 고통은 회복이 되는구나, 삶은 계속되는구나.
책을 덮은 뒤, 나의 지나간 선택들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미래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내 인생을 만든 분기점은 무엇이었을까? 굵직하게는 대학 입학을 선택했을 때, 신앙적인 결단,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일 등이 있겠다. 하지만 작게는 매일 마주했던 결정들 또한 오늘을 만들었으리라.
그리고 앞으로 있을 가장 큰 결정은 내게도 역시 자녀 출산 여부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평생을 바꿀 결정이 되겠지. 책을 통해 자녀를 출산하지 않았을 때의 마음들과 출산했을 때의 마음 모두 엿볼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인물들의 마음이 아니라 동일한 인물의 마음이라 더욱 와닿았다. 나는, 우리 부부는 어떨까? 정말로, 앞으로 못해도 50년간 둘만으로 괜찮을까? 자녀를 처음 양육하는 10~20년 동안 정말 미친 듯이 힘들 텐데 그건 견뎌낼 수 있을까? 그리고, 지구가 그때까지 멀쩡할까.
같은 고민을 하는 인물이었기에 그녀의 삶과 내면을 관조하며 나의 아홉 가지 인생 또한 가늠해 볼 수 있었다.
2023. 5. 27. 읽고 2023. 6. 3.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