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꽂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지롭다 Jan 21. 2024

자본주의 시대의 사랑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사랑의 기술이라는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잘 사랑할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실용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랑에 대한 기존의 사고방식에 대해 정리하고 비판한 뒤 저자가 생각하는 건강한 사랑을 위한 제언에 가깝다.


조금 더 S스러운 마인드로 제목을 다시 짓는다면, <자본주의 시대의 사랑>이라 지을 것 같다.


우선, 이 책의 정수는 머리말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려고 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랑’의 문제를 어떻게 줄까 보다는 어떻게 받을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현 사회의 기간이 되는 자본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모든 것을 경제 시장처럼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준다’는 행위는 나의 자산을 감소시킨다. 따라서 사랑마저도 나와 비슷한 가치를 지닌, 혹은 더 높은 가치를 지닌 사람을 택해 등가 교환해야 ‘손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본주의로 인한 인간 소외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언급한다.

현대인은 사실상 올더스 레너드 헉슬리 Aldous Leonard Huxley가 《멋진 신세계》 에서 그려놓은 상像에 가깝다. 곧 잘 먹고 잘 입고 성적으로도 만족하지만 자아가 없고 가장 피상적인 접촉을 제외하고는 동료들과 어떠한 접촉도 없는.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소비의 주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비슷하게 일을 하고, 비슷하게 생긴 공간에서 거주한다. 여가의 형태도 비슷하다. 주말이면 근교로 나들이를 가거나 여행을 간다. 여가 시간에는 온갖 매체와 그에 수반되는 광고에 둘러싸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를 소비해야겠다는 욕구를 주입받는다. 그렇게 해서 무언가를 구매하면 자신의 ‘선택’으로 그를 구입한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연애 시장이라는 말은 이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상품화하였다. 자신의 가치가 상한가를 칠 때 자신이 만날 수 있는 (대체로 사회, 경제적 지위가 기준이 되는) 최고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믿는다. 이 결과에 대해 프롬은 현대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동료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 오염되지 않고 사랑하려면 무엇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가? 프롬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사랑할 줄 알게 되려면 그는 최고의 위치에 놓여야 한다. 인간이 경제적 기구에 이바지하지 않고 경제적 기구가 인간에게 이바지해야 한다.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로써 상대를 이용하는 것보다, 다른 어떠함 때문이 아닌 상대를 사랑하여 주는 행위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때 건강한 사랑이 가능하다.



‘자본주의’라는 키워드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서평을 적어 보았다. 사실 종교, 성별, 모성애, 부성애 등 다양한 하위 주제를 가진 책이다. 200쪽 남짓한 짧은 책에 너무 많은 개념이 들어가서 조금 산만하고 사고의 흐름이 흩어진다는 느낌도 들었다. 전자책으로 읽어서 그랬을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꽤 많았지만, 영감을 받을만한 부분을 취해서 내 삶에 녹여내는 길이 책을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10년, 20년 후에 다시 읽으면 또 어떤 부분이 내 삶과 겹쳐지게 될지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연하지 않은 오늘을 만들어 낸 의학의 숨은 영웅 설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