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한 삶의 기쁨
바닥에서 자기, 면으로 된 옷 입기, 향수 쓰지 말기, 오리털 이불과 베개 사용 금지, 치약은 베이킹소다로만 만들어진 것으로 쓰기, 샴푸 쓰지 말기, 프린트 인쇄 지를 만지지 않기, 립밤을 바르지 않기, 거품이 나는 제품과 헤어스프레이를 쓰지 말기, 모피를 입지 말기,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바나나를 먹지 말기, 홍차와 커피를 마시지 말기 등.
이 행동수칙들은 나에게 내려진 처방이다.
20대 중후반 즈음부터 목걸이를 하거나 어깨끈에 금속이 있는 옷을 착용하면 그 부위가 간지럽고 긁어 피딱지가 앉았다. 얼굴에 종종 두드러기 같이 작은 것들이 올라왔다. 예전엔 거의 없던 피부 트러블도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증상이 심해질 때면 급하게 약을 받아서 지냈다. 하지만 그런 증상들은 해마다 범위가 번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가게 된 피부과에서 알레르기 첩포검사를 하게 되었다. 결과는 '라텍스, 검정 고무, 니켈, 검정 잉크, 노란 염색약, 향수, 바셀린, 샴푸, 파운데이션 등'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었다. 없던 알레르기 증상이 갑자기 발현된 건 일종의 직업병과 같다고 메이크업에 오랫동안 시달린 방송인뿐만 아니라 메이크업 아티스트들도 종종 온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다.
그러고 보니 내가 방송을 위해 메이크업을 한 것이 10년이 훌쩍 넘었었다. 평소엔 메이크업을 안 하지만 촬영을 하면 온종일 방송용 메이크업을 하고 있어야 했고, '몇 시간 이상 촬영 금지' 같은 조항이 제대로 없었던 지난 수많은 날들은 메이크업을 지우지 못하고 먼지 많은 세트장에서 메이크업을 덧입혀가며 날을 넘기며 촬영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혹사당한 내 피부에 보상이라도 하듯 나는 기초 화장품이라고 부르는 스킨, 로션, 에센스, 크림들의 기능들을 맹렬히 탐구했고 넘치게 사용했다. 내가 좋아하는 제품들과 브랜드에서 선물로 들어온 신제품들을 바꿔가며 썼고 촬영 땐 샵에 구비되어있는 제품들을 썼었다. 게다가 향기 나는 건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립밤, 핸드크림, 향수, 바디로션 할 것 없이 향이 나는 제품들을 다양하게 모았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제품을 자주 바꾸고 다양한 것을 쓰는 것이 오히려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다양하고 새로운 기능성 화장품들과 아름다운 향기로 치장하던 것이 사실상 내 피부를 한계치로 몰아간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화장품을 제한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킨과 에센스는 필요한 날만 가끔 사용했고 로션, 아이크림, 크림으로 세분화하던 걸 크림 하나로 대체했다. 아끼고 좋아하던 향수도 다 처분하고, 그 많던 립밤, 핸드크림, 바디 크림들과도 이별했다. 샴푸, 린스, 바디 클렌저를 무색무취의 클렌져(나중엔 샴푸로 그 클렌져 마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하나로 통용하였다. 화장대와 욕실이 갑자기 텅 비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권유대로 라텍스 침대를 치우고 요를 깔고 바닥에서 잤다. 딱딱한 바닥에 몸이 배겨 힘들었지만 다른 방도는 없었다. 오리털 침구도 차렵이불로 바꾸고 베개는 베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겨울 털옷들도 처분했다. 비우고 버린 그 자리에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향기롭고 푹신하고 안락했던 나의 일상이 향기가 사라지고 딱딱해지고 불편해졌다. 하지만 확실히 내 몸엔 차도가 있었다. 피부는 진정을 찾았고 목과 어깨 부근의 증상도 좋아졌다. 나의 평생 고질병이라고 생각했던 두피 트러블까지 사라졌다.
그리고 특별한 경험 두 가지를 하게 되었다.
매일 바닥에서 자느라 몸은 뼛속까지 결리는 것 같았고 촬영할 때 쓸 수 있는 메이크업 제품이 없어 난감하기 일쑤였으며 샴푸를 쓸 수 없어 물로만 씻어야 하는 찜찜함과 괴로움 등 어느 하나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렇게 불편하게 몇 주를 보내던 어느 날 딱딱한 바닥에 몸과 머리를 대고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깨달았다. 내가 나를 이토록 정성껏 돌보았던 시간이 있었던가.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위한 적이 있었던가.. 살면서 늘 나름대로 나를 위한 여러 선택들과 행동들을 해왔겠지만 나를 진정으로 신경 쓰고 돌본 적은 없었다. 이제야 내가 진정 나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
연인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단 말은 들었어도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단 말은 못 들어봤던 터라 말로 무어라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그 뒤로 이따금 이 경험을 지인들에게 공유했었다.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아마 그럴 것 같다. 혹 궁금하다면 얼마간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며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진심으로 위해보자.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은 ‘선택의 고민 없는 단순하게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이다. 예전엔 새로운 화장품이 나오면 다 써보고 싶었다. 향기로운 제품들은 다 가지고 싶었다. 새로 나온 다양한 제품들에서 무엇을 써야 할지, 행여 좋은 걸 놓치고 빠트릴까 조바심까지 내며 비교하고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좋다는 것인들 미심쩍은 성분이 있으면 나한테는 쓸모없는 물건들일뿐이다. 어떤 선택이 완벽할지 고민해봤자 소용없다. 그저 내가 쓸 수 있는 화장품만 쓸 뿐이다. 그러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그때 깨달았다. 너무나 많은 선택지들이 나에겐 오히려 피로감을 준다는 것을. 스티븐 잡스와 마크 주커버그가 왜 늘 같은 옷을 입는지 이해가 되었다. 옷을 선택하는 일들이 그들에겐 번거롭고 불필요한 일이 었던 것이다. 그들에겐 옷이란 그저 옷의 기능을 하면 될 뿐이다. 이젠 나에게 화장품이란 자극 없이 내 피부를 건강하게 가꾸어주기만 하면 돼듯.
그렇게 나는 새로운 화장품들을 소유하겠다는 욕망에서 자유로워졌고 그 자유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그동안 내가 해온 소모적인 선택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수많은 책들과 옷들, 자잘한 것들, 큰 것들, 쓰임이 다 하고도 버리지 못한 물건들, 흥미를 잃은 물건들, 사서 채우고 싶은 물건들.. 너무나 많은 물건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의 편의가 아닌 나의 욕망으로 선택된 그 물건들은 나의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을 가득 채우고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계속 다른 물건으로 넘어간 듯했다. 물건들이 계속 넘쳐나고 선택할 것이 계속 넘쳐났다. 그게 바로.. 내가 살면서 끊임없이 해오고 있는 일이었다.
여전히 나는 알레르기와 싸우고 있고 이따금 물건들을 넘치게 사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무얼 이고 살아가는지 조차 몰랐던 무지했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종종 멈춰 서서 이고 있던 것들을 버리고, 비워내고, 숨을 고르고 묻는다. 진정 내가 필요한 것인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 아직 내 삶의 모든 것을 완전하게 바꾸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나는 심플하고 미니멀하게 살기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