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사랑, 영웅의 승리와 몰락 - 프렌치 내한 뮤지컬 '나폴레옹'
"우리가 품은 큰 꿈은 삶을 바꾸는 의지
네 안에 잠들어 있는 영웅을 깨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인류의 역사에 굵은 발자취를 남긴 그가 돌아왔다. 2023년 5월, 프렌치 내한 뮤지컬 '나폴레옹'이 영웅의 대서사시를 재탄생시켰다.
전 세계적으로 역사적 인물을 주제로 한 뮤지컬이 제작되는 것은 흔하지 않다. 두 세기가 지났지만 왜 여전히 그의 이름이 끊임없이 후손들에게 거론되고 있는지 공연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꾸고자 했던 한 사나이의 강렬한 열망은 자신의 고향이 아닌 머나먼 이국의 땅, 이곳 한국까지도 감동의 물결을 충분히 자아낼 만했다.
뮤지컬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의 사랑과 성공, 야망과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섬세하며 강렬하게 풀어냈다. 코르시카 섬의 보잘것없던 군인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매혹적인 여인 조세핀을 만나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끝없는 야망을 품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사랑과 권력을 잃고 몰락하는 쓸쓸한 뒷모습까지 남김없이 드러냈다. 그야말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마주할 수 있었던 인생의 곡선을 빼곡하게 그린 작품이다.
나폴레옹은 출신으로 인한 주위의 차별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강한 신념으로 끊임없이 '상승'을 한 인물이다. 극에서는 그의 군사적 능력과 강한 의지, 주위 사람들을 착실하게 챙기는 인간적인 면모를 표현했다.
나폴레옹을 둘러싼 관계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두 사람은 조세핀과 탈레랑이다.
먼저,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관계는 세기의 사랑이다. 조세핀은 나폴레옹이 평생 사랑한 여인이자 첫 번째 부인이다. 극 중 넘버에서 "더 높은 곳에 날 이끄소서 승리의 여신이여"라는 가사가 말해주듯 나폴레옹에게 조세핀은 없어서는 안 될 승리의 여신이었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끼리 찰싹 달라붙는 비유가 어울린다. 그들은 정열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탈레랑의 계략과 정치적인 이유로 이들은 헤어져야만 했다. 조세핀 없이 나폴레옹이 서서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절절한 그들의 사랑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영웅, 폭군, 독재자로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나폴레옹이었으나 사랑에 대한 진심만큼은 가장 선명하게 인정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편 이번 작품은 탈레랑의 시점으로 내레이션을 이어가며 나폴레옹의 삶을 그렸다. 탈레랑의 존재감은 나폴레옹만큼이나 매우 강렬했다.
나폴레옹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탈레랑'은 권모술수에 능한 냉철한 정치가이자 지략가다. 어린 시절에 다리를 다쳐 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나폴레옹을 정계로 이끌며 그의 곁에서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려 한다. 찬란한 빛 속에서도 영원히 힘을 유지하기를 욕망한다.
탈레랑의 서사 속에서도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과 상처를 발견할 수 있다. 탈레랑이 지닌 아픔들로 인해 나폴레옹의 뒤에서 끝없이 야망을 키우려 한 그의 욕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프렌치 내한 공연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프랑스 배우들의 활약이었다. 프랑스 현지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출연진들은 오랫동안 쌓은 내공과 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200년 전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근원적인 고뇌와 갈등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은 물론, 캐스트마다 특유의 매력과 특징을 드러냈다.
'나폴레옹' 역을 맡은 로랑 방(Laurent Ban)은 무게감이 있고 뚝심 있는 나폴레옹을, 존 아이젠(John Eyzen)은 영리하고 강인한 나폴레옹을 연기하며 각자만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발산했다.
'조세핀' 역을 맡은 키아라 디 바리(Chiara Di Bari)는 아름답고 현명한 여인의 모습을, 타티아나 마트르(Tatiana Matre)는 '테레즈' 역까지 2가지 역을 동시에 소화하며 팔방미인으로 활약했다. '탈레랑' 역의 크리스토프 쎄리노(Christophe Cerino)는 유머러스한 동시에 냉철한 정치가를, 제롬 콜렛(Jerome Collet)은 야망과 욕심으로 똘똘 뭉친 지략가를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내며 극을 힘차게 이끌어 나갔다. 쿠데타가 일어나 공직에서 물러난 '바라스', 나폴레옹의 동생 '뤼시앙', 귀족 출신의 장군인 '헨리', 나폴레옹의 총애를 받고 장군이 된 '안톤', 탈레랑의 부하인 '푸셰'와 '가라우'는 극에서 감초 역할을 했다.
헨리는 장군으로서의 중후한 멋과 뚝심있는 모습을, 안톤은 나폴레옹과 함께 전쟁에 올라 끝까지 맞서 싸우는 강한 신념을 보여줬다. 탈레랑의 부하인 푸셰와 가라우는 공연 내내 관객들의 웃음을 책임지는 인물들이었다. 탈레랑을 따라서 나쁜 일에 손을 쓰지만 때로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이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한국 앙상블 배우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전쟁과 혁명 등 웅장하고 장엄한 장면에서 화려한 춤과 안무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프랑스 배우들과 한국 앙상블 배우들이 함께 어우러져 프랑스의 시대를 연기하고, 함께 울고 웃는 장면을 통해 진정한 K-뮤지컬의 정수를 본 기분이었다. 한국 땅에서 프랑스 최정상급 배우들과 한국 배우들이 한 몸이 되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광경은 그 자체로 감동의 서사였다.
음악의 힘은 가히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세계적인 작곡가 티모시 윌리엄스의 손을 거쳐 탄생한 ‘대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곡이 훌쩍 넘는 넘버를 통해 나폴레옹, 조세핀, 탈레랑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의 서사를 분명하게 표현했다.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아름답고, 웅장하고, 거대하고, 압도적이고, 위엄 있는 음악들이었다.
또한 300벌이 넘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의상과 6개의 대형 LED가 다양한 장면을 섬세히 묘사하여 극의 몰입도를 더욱 높였다. 워털루 전쟁, 오스트리아 원정, 쿠데타, 성대한 황제 대관식, 플롱비에르 르 뱅의 온천마을, 아름다운 무도회, 러시아 전쟁 등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나폴레옹이 살았던 그 시대를 아름답게 재현했다. 200년 전 나폴레옹의 시대와 유럽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감동적인 무대가 끝난 후 5월 7일 저녁 공연에서는 스페셜 커튼콜이 시작되었다. 모든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를 하고 관객들과 마주보며 호흡을 하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노래가 끝난 뒤 마이크를 잡은 배우 로랑 방은 영어로 인사말을 이어갔다. 배우와 연출, 불어 버전의 각색까지 1인 3역을 소화한 로랑 방은 밝은 얼굴로 관객들에게 공연을 올린 소감을 전하며 “캐나다와 미국에서 특별한 손님이 왔다”라는 소식을 전했다.
이윽고 상상도 못한 특별 게스트들이 무대에 올랐다. 아마 살아가면서 한번쯤 볼 수 있을까 싶은 두 명이다. 세계 뮤지컬, 영화, 드라마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들을 남기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바로 뮤지컬 ‘나폴레옹’의 원작자이자 극작가 앤드류 세비스톤(Andrew sabiston)과 작곡가 티모시 윌리엄스(Timothy williams)가 무대 위에 올랐다. 5월 5일 '나폴레옹’이 개막한 후 줄곧 몇 차례나 연속해서 공연을 관람한 그들은 “fantastic”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한국에서 열린 프렌치 내한 공연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한국 관객들과 마주 본 그들의 얼굴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과 감동의 기운이 잔잔히 머물고 있었다.
이날 티모시 윌리엄스와 앤드류 세비스톤을 만난 관객들은 한국과 프랑스, 캐나다와 미국의 창작진이 만든 '나폴레옹'의 진정한 가치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와 노래 그 이면에 4개의 국가가 협력한 시간과 과정을 마침내 확인할 수 있었다.
공연의 막이 내리고 나서도 관객들과 배우들의 러브 스토리는 끝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주말 관객을 대상으로 주연 배우들과 함께하는 팬사인회가 열렸다.
관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배우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나폴레옹, 조세핀, 탈레랑, 헨리, 루시앙 등 주연 배우들은 따뜻하고 다정한 눈길로 한국 팬들과 함께 웃고, 악수하고, 사진을 찍었다. 팬들은 준비한 선물을 주기도 하고 프랑스어로 번역된 메시지를 보여주기도 하며 배우들과 더 가까이 교류하기 위해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먼 곳에서 발걸음을 한 프랑스 배우들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을 보낸 순간이었다.
뮤지컬 '나폴레옹'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5월 5일부터 5월 21일까지 관객들과 만난다. 한국에서 만나는 프랑스의 혁명 정신과 영웅 '나폴레옹'의 대서사시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180분 내내 웃고, 울고, 감동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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