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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Mar 13. 2020

데스티네이션

그 녀석의 위기탈출 넘버원

아이고... 어머님. 진짜 힘들지예~~~  

 

 어머님 입에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1.8kg 몰티즈 예삐. 키가 180cm인 내 주먹 두 개 합친 것보다 조금 더 큰 초소형견. 그 작디작은 생명체가 이번 달에만 4번 마취를 했다. 올해 그녀의 나이 방년 15세....     

 


 청량하기 이를 때 없던 8월의 시작 날. 출근하면서  가장 먼저 오늘의 예약 수술부터 확인했다.  우리 병원은 지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바쁜 동물 병원이다. 그날 수술이 3개 이상 잡혀있다면 오늘 하루는 지옥을 맛볼 만큼 바쁜 날이 될 것이고,  수술이 한두 개뿐이라면 밥은 먹을 수 있고, 테크니션이랑 농담 따먹기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큼만 바쁜 날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예삐? 예삐가 스케일링을 한다고?? 순간 엄청난 부담감이 엄습해왔다. 15세라는 나이는 일반적으로 강아지들이 천수를 모두 누린 나이라 마취가 조금 부담스러워지는 나이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삐 보호자분께서 예삐를 광적으로 사랑하신다는 점이다.  자식들 모두 출가시키고, 적적하실까 봐 따님이 분양받아서 어머님께 선물로 드린 정말 작고 이쁜 몰티즈 예삐. 70이 다 되신 어머님께는 예삐가 삶의 전부이고, 살아가시는 유일한 낙이다.  접종 한번 건너뛴 적 없고, 매달 눈이 내려도, 비가 내려도 사상충 하러 열심히 오시고, 조금만 콜록 기침해도, 살짝 헛구역질만 해도 기겁을 하고 병원에 데려오시곤 하신다. 막상 본인은 다리가 아파서도 병원 한번 안 가시고는, 몇 번이나 쉬어가며 동물병원은 열심히 오신다.  눈이 어두워 휴대폰도 잘 안보이시지만, 그 안에는 예삐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예삐가 스케일링을 한다고??


 “원장님. 예삐 스케일링 잡혔네요. 나이도 많은데 왜 하신데요??”

 스케일링은 원래 고령에 더 자주 하게 되는 건 맞지만, 15세가 넘어가면 사실 마취 때문에 보호자분들께서 꺼리시는 경우가 많으셔서, 더 젊을 때 몇 번 권해도 마취가 겁난다고 안 한다고 하셨던 예삐 보호자분께서 갑자기 스케일링을 하겠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어, 치첨농양”

 언제나 그렇듯, 20년 짬의 원장님은 무덤덤하게 한마디 하곤 끝이다. 아~~ 치첨농양... 치아 뿌리에 염증이 너무 심해져, 그 염증으로 인해 잇몸뿐만 아니라 볼 부위까지 퉁퉁 부어서, 통증이 심하고 밥도 잘 먹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 그냥 치석이 많다면 15세에 스케일링을 꺼릴 수도 있지만 치첨농양이라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발치하고 스케일링을 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그랬구나... 아. 그래도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모든 마취가, 모든 수술이 당연히 안전하게, 잘 마무리되도록 노력하겠지만, 또 100% 무조건 괜찮으란 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겁이 난다. 하지만 예삐의 경우처럼, 그 존재가 보호자분께 너무나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에는 훨씬 더 부담스럽고 겁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럴 때의 부담감은 사람에서의 수술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렇게 예약된 시간이 다 되었고, 늘 그렇듯 활기차고 마냥 신난 예삐를 데리고, 어머님은 긴장 때문에 실신 직전의 상태로 병원을 찾아오셨다. 

  “어머님, 예삐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아마 마지막 마취가 되겠죠~ 혈액검사도 괜찮고, 심장도 괜찮아서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 말고 기다리세요~”

 원장님의 위로도 어머님 귀에는 안들 리시는 것 같다. 대기실에 앉아서 훌쩍훌쩍 우시던 어머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예삐의 수술은 아무 문제없이 잘 끝났다. 발치도 잘되었고, 스케일링을 해서 깨끗해진 이빨에, 일주일 후에는 부었던 염증도 다 사라지자 어머님의 얼굴엔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      

 


 더위가 최고에 다다랐던 말복이었다. 오늘 저녁에 치킨을 먹을까 삼계탕을 먹을까 고민하면서 출근길에 확인한 수술 예약표. 거기에는 또 예삐의 이름이 있었다. 잉? 이게 뭐지??

 “원장님 예삐 이빨 다 나은 거 아니었어요??”

 “어~ 자궁 축농증”

 역시나 심플한 대답. 어제 병원 마치고 원장님께 급하게 전화가 왔다고 한다. 예삐의 질부 위에서 갑자기 고름이 줄줄 나오는데 이것도 이빨 때문이냐는 말도 안 되는 전화가... 

 자궁 축농증은 그야말로 응급 중의 응급이다. 자궁에 염증으로 인해 수술을 안 했을 시 사망확률이 100%에 가깝고, 수술하더라도 자칫 늦어지면 패혈증으로 사망할 수 있기에, 서둘러야 한다.  잠시 후 눈물을 흘리며 허겁지겁 달려오신 어머님. 꼭 뭐에 홀린 것처럼 수술 동의서를 쓰고, 서둘러 수술에 들어갔다. 이번엔 어머님도 어느 정도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연신 흐느끼시기만 했다. 하지만 예삐는 15세라는 연세가 무색할 정도로 잘 깨어났고, 잘 회복이 되었다. 3일 정도 입원한 후, 염증 수치도 정상이 되고 식욕도 돌아온 후 싱글벙글 웃는 어머님 품에 안겨 꼬리 치며 퇴원을 했다. 

 “어머님, 이젠 진짜 마취는 마지막이겠지예~~” 

원장님 말씀에 어머님은 자신 있게, 이젠 진짜 안 올 거라는 말을 남기며 집으로 향하셨다.      


  예삐가 퇴원을 한 지 3일 후, 수술 예약에 예삐를 보고 또 한 번 어이가 없었다. 

“원장님 예삐 또 왜 마취해요?”

“어, 골절.... 니 어제 월차 때매 못 봤재??” 

 진짜 이게 무슨 천지가 개벽할 일인지. 어릴 때 멋도 모르고 뛰어노는 하룻강아지들이나 골절이 생기지, 사람으로 치면 80은 다되어 가는 몰티즈가 뭐가 그렇게 신나서 놀다가 다리가 부러졌는지. 이젠 죽을병에 걸리더라도 마취는 안 시키겠노라 다짐하셨던 어머님 조차, 덜렁거리는 앞발에 비명 지르는 예삐를 보고는 수술을 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도착한 어머님은 이번에는 울지 않으셨다. 3번을 연달아 수술을 하면서 체념을 하신 건지, 무덤덤하게 예삐를 안겨주고는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같은 말만 반복하셨다. 

 “애가, 자궁 축농증 수술을 하더니 회춘하더라고.. 방방 뛰어다니길래 나도 너무 좋아서 줄을 풀어놨지 뭐야.. 내가 미친 x이지, 내가 미친 x 이야”

 아무도 물어보질 않았지만, 계속 미친 x이라는 말만 반복하시면서 대기실을 서성이셨다. 골절 수술은 앞전 수술들 보다 훨씬 오래 걸렸지만, 놀랍게도 1시간이 넘는 마취를 잘 이겨내고 예삐는 또 무사히 깨어났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일주일간의 입원 후 깁스를 한 채 예삐는 퇴원을 했다. 

 “깁스 풀 때 뵐게요~~”

 이번엔 대답도 안 하시고 어머님은 서둘러 병원을 떠나셨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어머님은 또 오셨다. 집에 갔다고 신나서 3개의 다리로 뛰어다니던 예삐는 수술한 반대쪽 다리가 부러져왔다. 아연실색한 병원 직원들과는 다르게 어머님만 차분했다. 

 “또 수술해주세요.”

 “네”

 대화는 이게 끝이었다. 어느 누구도 어머님께 감히 위로조차 못 건넸고, 연신 한숨만 쉬시던 어머님은 이번에도 마취를 잘 견뎌내고 양팔 모두 깁스하고 나오는 예삐를 보자 그제야 눈물을 한 방울 흘리셨다. 

 그날 어머님과 원장님은 참 오랜 대화를 하셨다. 나머지 진료가 바빠 무슨 말인지 들을 순 없었지만, 어쨌든 어머님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예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는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예삐는 한 번도 오질 않았으나, 우리는 가끔 예삐 이야기를 했다. 이제 한번 올 때가 되었는데.... 방사선 확인하러 왜 안 오실까? 정말 대단하다. 15살 된 애가 한 달 동안 각기 다른 곳에 4번을 수술을 받고 그렇게 건강하게 퇴원하다니... 영웅담처럼 우리 사이에 회자되곤 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다들 예삐가 건강하 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예삐 죽었단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원장님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밥 먹었니? 잠은 잘 잤니?처럼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전달해주신 원장님의 말과는 다르게, 우리는 모두 기절할 듯이 놀랐다.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취를 너무 자주 해서 신부전이 온건가? 부러진 뼈 때문에 패혈증이 온 걸까?? 아니면 나이가 많아서 자연사한 건가?? 

  “왜요 원장님?? 퇴원할 때 멀쩡했잖아요??”

 “어, 맞다. 마지막 수술하고 다음날, 어머님이 약 먹인다고, 고구마 줬는데 그게 목에 걸려서 질식사했단다. 나도 어제 전화받았다. 어머님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연락도 못하고, 이제야 여유가 좀 생겨서, 어제 고맙다고 전화 왔더라.”

 뜨억.. 이게 뭔 소린가. 한 달 내내 마취, 입원, 깁스를 반복하면서 그 작은 몸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잘 버텨준 녀석이, 결국 젤 좋아하던 고구마 먹다가 목에 걸려 죽다니.... 어머님 말 마따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결국은 죽을 팔자였을까?? 어떻게든 모면해보려고 아등바등 발버둥 쳐봤자, 정해져 있는 운명을 피할 순 없는 것일까?? 어쩌면 예삐는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어차피 죽을 애는 죽는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이런 치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점차 염세주의자가 되려는 찰나,     

“손 선생, 진료 왔다. 교상이란다”

하는 원장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결과가 정해져 있으면 어떻고, 그게 운명이면 어떤가. 일단 내 앞에 와있는 이 개부터 살리고 보는 거지. 혹시 아나? 중국집 쿠폰처럼 10번 잘 해내면 그중 한 번은 신의 변덕으로 결말이 살짝 바꿔질지?     


어서 오세요. 물린데 한번 봅시다~~~


* 본 에피소드는 10여 년 전 동물병원에서 있었던 일로서, 요즈음의 동물병원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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