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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Jun 23. 2022

냥줍을 하다!

집사 너로 정했다. 나를 키우도록....

원장님.. 이거 보세요.. 너무 이쁘죠~!!!!


하하.. 니가 더 이쁜걸??

8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와, 더 어려 보이는 어린이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진료실로 들어온다.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처럼 너무나도 소중하게 품에 안고 온 카봇 상자 안에서는 삐약삐약 병아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하지만 뒤따라 들어오신 엄마의 표정은 죽을 맛이다. 너희 둘 키우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강아지를 키우는 분들은 이해를 못 하실 수도 있지만, 현재 보호자분들이 키우고 있는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길에서부터 온다. 병원에 오는 품종묘와 코리아 숏헤어의 비율은 3:7 정도. 이 코리아 숏헤어(코숏)는 몇몇 집에서 태어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길냥이가 낳아서 길에 버려진 애기를 보호자분들이 길에서 발견해서 키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냥줍이라고 한다. 특히나 장마나 태풍이 끝날 무렵에는 정말 많은 새끼 고양이들이 여러 보호자분들께 발견되어 병원에 내원하게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경우의 애기들이 대부분 건강하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어떤 생명체든 새끼 때는 이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고양이의 애기라면 그 귀염도가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길가다가 자신의 이상형을 만나 혼인신고를 하러 손 붙잡고 온듯한 표정으로 보호자분들은 흥분해서 말을 꺼낸다.

" 이거 눈곱 끼는 거 허피스 맞죠?? 허피스 치료해주세요. 링웜은 없을까요?? 밥은 뭘로 먹이죠? 중성화는 언제 해야 돼요? 산책도 데리고 나가도 돼요??"  제대로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꼬물이를 앞에다 두고, 초보 집사는 이미 중성화하고 채울 넥 카라까지  준비할 기세다. 하지만 이럴 때 한번 초치는 말을 해줘야 할 타이밍이다.


보호자분.. 그런데 이 애기를 과연 보호자분이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 엄마가 정성껏 키우고 있는 애기는 사람이 발견하기 매우 어렵다. 엄마는 사람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애기를 꼭꼭 숨겨두고 젖을 먹여 키운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면, 결국 사람이 발견한 애기 고양이는 엄마가 키울 생각이 없는 애기, 혹은 건강하지 못해 엄마가 포기한 애기인 것이다.....


 


 차라리 수의사가 열심히 치료해서 낫게 해 줄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말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2달이 채 안된 애기에게는 생각보다 해줄 수 있는 치료가 없다. 치료가 아니라 생존이 필요한 시기. 약이 아니라 밥이 필요한  시기. 정말 죄송하지만 보호자분께는 냉정하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인 분들은 그냥 눈에 보이는 눈곱이나 피부병을 걱정하시지만, 사실 그런 건 지금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애기는 당장 이틀만 안 먹으면 바로 죽을 것이다. 하루만 설사하면 바로 죽을 것이다. 3번만 구토하면 바로 죽을 것이다. 그만큼 아직은 약하디 약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 아기가 먹어만 주면 살 수 있다. 자라날수 있는 것이다.

 

 이런 꼬물이를 데리고 오면, 내가 하는 말은 항상 같다.


 "보호자분. 아직은 고양이 키우시는 거 아닙니다. 살리시는 거예요. 보호자분께서 열심히 살리기 위해 노력을 하는 거지 키우시는 게 아니에요. 살아나면 그때부터 정을 주시고, 이뻐해 주세요.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먹여만 주세요. 대신 결과가 안 좋더라도 너무 상심하진 마세요.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요... 설사 3일을 못 버티더라도.. 적어도 보호자분 덕분에 3일간 좋은 거 먹고, 따뜻한 곳에서 행복하게 있다가 간 겁니다. "


 참, 신기한 일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여기저기에서는 수많은 반려동물들이 버려지고 있다. 유기견 보호소는 이미 기능을 못할 정도로 만선이고, 휴가철이면 버려진 동물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하지만 또 어느 곳에서는 살아만 나면 내가 키워주겠다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제발 먹어만 다오. 버텨만 다오. 내가 꼭 키워줄게.. 내가 니 집사가 되는걸 제발 허락해다오.. 제발..



 일주일 전 눈도 못 뜨고 탯줄을 달고 있던 꼬물이 애기를 데리고 오셨던 아가씨분이 울먹이며 다시 오셨다. 일주일 전보다 오히려 더 줄어든 몸무게, 고개도 들지 못하는 미약하게 숨만 쉬고 있는 채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신다.

"어제까지는 너무 잘 먹었어요. 너무 잘 먹고, 너무 잘 놀고, 똥오줌도 잘 쌌어요. 오늘 아침에 설사 한번 하더니 갑자기 애가 이렇게 되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10년을 넘게 수의사를 하면서도 차마 입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 문장이 있다. '포기하셔야 할 것 같아요'

보호자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이 이 순간이다. 차라리 첨부터 안 먹었으면 진작 포기했을 텐데...

오랫동안 굶었던 애기들은 집에 와서 맛있는 분유를 먹으면 며칠 정도 잘 먹기도 한다. 그러고는 한두 번의 설사 후 몸이 급속히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희망이 생기고, 미래를 꿈꾸고, 막 이름을 지어준 보호자분은 가장 크게 상처를 받는다. 이런 일이 반복이 되다 보니, 애기 고양이를 냥줍 해서 오시면 나도 모르게 주인들 눈치를 보게 된다. 이 애기가 잘못되었을 때 이분들이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인가. 아직 어린애가 집에 있는데 저 어린이에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내가 뭐라고 말해줘야 상처를 덜 받으실 수 있을까....


  


원장님 접종 왔습니다.!!!!

 조용한 병원의 정적을 깨버리는 테크니션의 우렁찬 목소리. 차트를 열어보니 정확히 한 달 전 0.1kg의 애기 고양이를 안 고왔던 어린이 두 명과 표 정안 좋았던 어머님이었다. 애기들과 어머님께 신신당부를 했던 게 기억났다.

 "얘들아, 이 애기는 정말 약하단다. 무조건 잘 클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너희가 정말 소중히 다뤄주고, 정말 열심히 키워줘야 너희의 동생이 될 수 있단다. 하지만 아파서 어쩌면 하늘의 별로 빨리 가버릴 수도 있단다. 알겠지?? 그래도 씩씩하게 이겨내야 또 다른 동생이 너희에게 올 수 있을 거야.."   

 그리곤 어머님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머님. 지금 집에 가신 후로, 한 달간 단 한 번도 동물병원에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야 합니다.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아야 돼요. 그냥 정말 너무나 편하게 잘 있고, 잘 먹고, 잘 싸야 돼요. 정말 단순하고도 당연한 거지만, 오직 그 한 가지 경우만이  이 꼬물이를 다시 데리고 한 달 후에 접종하러 오실 수 있으실 거예요. 최선을 다해 살려보시고, 혹시나 모르니 아드님들에게도 미리 잘 말해두세요. "


 한 달간 그 집에서는 단한통의 전화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 빨리 가버려서 연락이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한 달이 지난 오늘 잠을 못 자서 피곤해 보이시는 어머님과 동생이 생겨서 더 기분이 좋아진 두 남자아이의 품에는 0.7kg의 살이 포동포동 오른 애기가 같은 카봇 박스에 담겨 있었다.


"원장님. 너무 아무 일도 없던데요?? 주는 대로 어찌나 잘 먹는지. 진짜 편하던데요?? 원장님 말 듣고 괜히 걱정했네..."

하루 종일 삐약삐약 울어대서 이름이 삐약이가 되어버린 애기 냥이를 어루만지며 내가 빙그레 웃었다.

" 어머님. 그냥 주니깐 주는 대로 잘먹드죠?? 똥도 잘 싸고, 활기 넘치게 잘다니드죠?

"네"

"그렇게 당연히 잘 먹고 잘 크는걸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바로 기적이라고 합니다.

수없이 많은 보호자분들과 고양이들이 꿈꾸는 그 기적. 그게 바로 그냥 아무일 없이 잘 크는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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