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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Jun 28. 2022

동물병원을 휘감은 나비의 거센 바람.

내 이름은 수의사 셜록!

 나비효과 - 작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거대한 태풍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정말 작은 사소한 원인이 때로는 정말 큰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특히나 말 못 하는 동물들을 상대해,  그 인과관계를 정확히 알기 힘든 직업은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수의사가 더 재미있고 매력적이기도 하다.


 



 원장님요... 야좀 살려주이소. 우리 진돌이 왜 이라지...


 유난히 추웠던 어느 겨울. 바싹 마른 진돗개가 주인에게 안겨서 들어왔다. 일어서지도 못하고, 눈은 반쯤 풀려있고, 체온은 36도(정상은 38도 이상). 모든 면에서 최악을 나타내는 징후들. 어쩌면 곧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라인을 잡고, 수액을 틀고, 혈액검사를 돌렸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는 사이 보호자분을 문진(이라고 쓰고 취조라고 읽는다) 하기 시작했다.


나-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애가 이지경이 됐습니까?? 며칠은 못 먹고 몸도 안 좋았을 거 같은데 왜 이제 댈꼬 오신 겁니까~!!


주인- 그런게 아니고.. 내가 마 바빠서 원래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가보기는 하는데.. 밥도 많이 주고, 물도 많이 주고.. 중간에 옆집 아저씨가 한 번씩 와서 봐주고 하는데... 이래 산지가 벌써 5년이 돼 써요.. 갑자기 이럴 리가 없는데... 혹시 누가 해코지한 거 아닌교.  


 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다. 하지만 외상은 전혀 없었고 그냥 단순히 심하게 쇄약해 보였다.. 과연 뭘까?? 검사 결과를 보면 딱나오겠지.. 음하하.


테크니션-원장님.. 검사 결과 에러 뜨는데요..


 이런.... 동물들의 혈액 상태가 너무 안 좋으면 혈액검사 기계가 읽지를 못한다. 결국 애가 이지경이 된 것의 원인을 주인과의 대화만으로 알아봐야 한다. 이를 어쩌지..ㅠㅠ



 한때 나의 인터넷상의 닉네임이 수의사 셜록이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그만큼 똑똑하거나 유능한 수의사여서는 아니고... 다만 수의사라는 직업이 생각보다 추리를 많이 해야 하는 지라, 눈으로만 봐도 척척 원인을 밝혀내는 셜록의 능력이 부러워서였다.

 동물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보다 주인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별로 말도 안 해준다. 그냥 살리라는 살벌한 눈빛만 나에게 보낼뿐다. 도대체 어떻게 진료를 하란 말인가. 이럴 땐 나를 믿어야 한다.  수의사 면허증은 가위바위보 해서 딴 게 아니다. 나의 날카로운  감을 믿어보자. 이대로 그냥 얼버무리기에는 주인의 눈초리가 너무 따갑다.


나- 정확히 알긴 힘들지만, 밖에 사는 진돗개이고 하니 사상충에 노출이 돼서 갑작스럽게 몸이 안 좋아졌을 수도...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주인-사상충 약은 매달 먹이는디요???

음.. 사상충은 진짜 음성이 뜨네.. 실패~! 다음.


나-그렇다면 혹시 먹이는 음식 중에 양파나 너무 자극적인 사람음식을 먹어서..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인-야는 사료만 먹는디요???

음.. 실패~ 다음


나-혹시 농약이라든지, 살충제...

주인-지금 겨울이라 주변에 그런 거 전혀 없는디요.? 야는 한 번도 풀린 적도 없는디요??


아니 아저씨.. 아무리 내가 못 미더워도 말이라도 좀 다 듣고 대답해주면 안돼요???

젠장.. 수의사 셜록의 추리가 이렇게 다 빗나가다니...


 모든 추리가 실패해서 의기소심해졌던 그때 테크니션의 갑작스러운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어어어.. 원장님 진돌이 서는데요... 어어.. 밥 먹는데요...

 탈수가 너무 심해 빠른 속도로 링거 한팩을 다 맞고, 두 번째 링거로 넘어간 진돌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꼬리를 치며 물을 먹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잉?? 다 죽어 가는 병에 걸린 애가 어떻게 링거만 한팩 맞고 멀쩡해질 수가 있지??? 도저히 괜찮아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진짜 중독이나 병은 아니었나? 그런데 도대체 진짜 왜 그런 거야??


"아니 링거 한대 맞고 애가 멀쩡해져부렀네.. 원장님 도대체 와 이라는 교?? 코앞에 대야 통째로 물이 가득한데 물을 못....."


말을 이어가던 아저씨의 눈이 커졌다.

"아~!!!  알았슴더. 원장님.... 내가 맨날 밥이랑 물이랑 가득 부어놓고 가는데... 물이 꽁꽁 얼어있데예.

물이 얼어서 계속 못 먹었나 봅니더..."


아니 이게 웬 생각지도 못했던 원이이란 말인가. 애가 죽어가는 게 물을 못 먹어서???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늘 똑같은 패턴으로 일주일에 하룻밤만 농가로 와서 진돌이에게 밥 주고 물 주고 놀아주고 떠나는 아저씨. 지난 주말에도 진돌이는 활발하고 멀쩡했다. 왜냐하면 갑자기 날씨가 확 추워진 게 목요일에서 금요일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그즈음 언 물은 한 번도 녹지 못했고, 진돌이는 열흘 가까이 물을 못 먹고 아저씨가 발견할 때 즈음 죽어가는 상태가 된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워낙 건강했던 애인 지라, 다른 장기에 이상은 없었고 탈수 교정만으로 멀쩡해져서 웃으며 걸어서 퇴원했다.


참 생각해보면 작은 원인이었다. 우리 일상에서 늘 있을 수 있는 작은 사건. 하지만 하필 역대급 추위가 시작되었고, 늘 물그릇을 진돌이 집안에 넣어주던 아저씨가 별생각 없이 바깥에 놔두었고 , 2~3일에 한 번씩 와서 돌봐주던 옆집 주인이 하필 추워서 와보질 않았고, 또 하필 진돌이는 입이 짧아서 얼어붙은 물을 핥아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별것 아닌 원인이 합쳐져서 진돌이는 죽을뻔했다. 다행히 유능한 수의사의 수액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수의사 셜록이라는 닉네임을 버리기로 했다. )



 의학 드라마를 보면, 천재 주인공이 멋지게 환자에게 질문을 한다. 보호자에게 질문을 한다. 그리고 여기저기 꾹꾹 눌러보고, 열심히 관찰하더니, 검사 결과를 보며 빠른 속도로 분석해서 병명을 밝힌다. 주변 사람들은 기절할 듯이 놀라며 칭찬해댄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야옹"

 보호자분 얘는 어디가 아픈가요??

"몰라요, 그냥 아파요. "

 한번 만져볼게요.

"하악~!!"

피가 나고 있네요.... 아니 아니. 보호자분 고양이 말고.. 제 손에서요....


오늘자 동물병원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이다. 과연 의학 드라마의 천재 주인공을 데리고 와도, 이 고양이의 병명을 밝힐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하고 또 추리해봐야 한다.

 정말 사소하고도 하찮은 원인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켜서 이 아이에게 거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나는 한쪽 손을 휴지로 둘둘 말고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보호자분 다시 한번 애기 상태 볼게요. 좀 잡아주실래요..

아니 보호자분.. 보호자분이 뒤로 가시면 어게 합니까.. 나도 무섭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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