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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Jun 22. 2022

동물병원 오는 길.

사랑합니다 고객님

 가끔씩 손님 없이 한가할 때면, 내가 늘 앉아있는 수의사 쪽 의자가 아닌,  보호자분이 앉아 계신 쪽의 의자에 앉아보곤 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진료실 전경은 또 느낌이 다르다. 이렇게 더러웠나??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수의사(나)는 어떤 모습일까??

사랑스러운 우리 아기를 치료해주시는 신뢰감 넘치고 친절한 의사 선생님일까? 아니면 제일 가까워서 그냥 다니는 잘생기고 평범한 수의사일 뿐일까?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오실까? 또 무엇을 기대하며 오실까??

조용한 날일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유비무환!

(있을 유,  비 내릴 비, 없을 무, 환자 환.)

정말 유명한 사자성어이다.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는...

비가 오는 날은 정말 환축이 없다. 사실 거의 모든 장사가 비가 오면 손님수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동물병원은 유독 그게 심하다. 비 오는 날 개나 고양이를 챙기고, 우산 챙기고, 짐 챙기고.. 바리바리 이것저것 싸들고 병원에 온다는 건 정말 쉽지 않으리라. 거기다가 평소에는 목줄채워서 오면 되는데, 비 오는 날은 무거운 애들조차 가방에 넣고 매고 다녀야 한다. 이런 날 반려동물을 챙기고 동물병원에 오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다.  


눈이 오는 날은 더 심각하다.  개 고양이 안고 오다가 넘어지기 일수라서, 정말 하루라도 지체하면 큰일 나는 병이 아니고서는 동물병원에 오는 게 불가능하다. 택시조차 안 잡히고, 운전도 힘드니 도대체가 병원 올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날씨가 좋은 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 놀러 가야지 어떻게 동물병원에 갈 수가 있단 말인가. 이쁜 우리 아기들 데리고, 애견카페 가거나 야외로 놀러 가야지...


보호자분들이 바쁘시면 동물병원에 갈 엄두도 낼 수가 없다. 매일 바쁜 하루하루 일상에 어떻게 짬을 내서 동물병원에 가겠는가. 내 몸이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마당에 하물며 반려동물의 건강까지 챙기기는 쉽 자기 않다.


보호자분들이 한가하면 도저히 동물병원에 가실 수가 없다. 가면 또 돈 많이 들 텐데, 요즘같이 경기가 안 좋을 때 어떻게 동물병원에 가서 돈을 쓸 수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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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는 동물병원이나 애견샵을 손님으로 가본 적이 거의 없다.  얼마 전, 타 지역에 강아지와 함께 놀러 가게 되면서, 강아지가 못 들어가는 곳을 방문해야 하기에 2~3시간 정도  그 지역 애견샵에 목욕을 맡겼다. 손님으로 방문한 애견샵은 또 느낌이 많이 달랐다. 세상 착한 우리 강아지가 거기서 목욕도 잘하고, 잘 기다려줄 것을 알면서도, 새삼 타인에게 우리 강아지를 맡긴다는 것이 크게 다가왔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마리의 동물과 수십 명의 보호자분을 만난다. 하루 종일 병원에 가만히 앉아서 만나는 그들은,  A라는 질환을 갖고 오는 동물과 보호자분일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는 사실 그들만의 삶과 사연을 특별히 나에게 공유하도록 허락해준 소중한 존재 들인 것이다.(심지어 돈도 주신다)

개가, 고양이가 아픈지 안 아픈지 걱정하던 시간들, 병원에 가야 하나 기다려도 되나를 고민하던 순간들, 지금 당장 가고 싶지만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서 초조해하는 그 마음들. 싫어서 발버둥 치는 냐옹이를 가방에 넣기 위해 씨름을 하는 그 수많은 역경들.

새삼 병원에 와주시는 모든 분들이 참 감사하다.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우리 병원을 찾아와서, 세상에서 가장 대단하고 특별한 애기를 맡겨주시다니.....



 비 오는 한가한 동물병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오시는 분 한 분 한 분에게 최선을 다하리라~!. 내가 최고의 의술은 펼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친절하게, 최대한 잘해드리자.

띵동! 원장님 접수했습니다.  

밖에서 어마어마하게 살벌한 소리가 들려서 열어본 차트에는 '강아지 정말 사나움, 근처만 가도 물어뜯음. 주인분도 예민하심. 매우 예민 별 다섯 개~!!!!!!'


하!!!!! 내일부터 최선을 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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