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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Jun 13. 2022

나의 인생, 너의 견생과 묘생..(4)

도원결의- 시작은 다르지만, 부디 끝은 같기를...

 어릴 때 읽었던 토끼와 거북이 동화를 읽을 때면 나는 항상 토끼를 응원하곤 했었다. 묵묵하게 자기 길만 가는 거북이보다는, 좀 게을러도 빠르고 자신감 넘치는 토끼가 더 멋져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ㅠㅠ

하지만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만큼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경기가 또 있을까. 뻔히 둘의 속도 차이가 큰 걸 알면서도 같은 곳에서 출발해서 승부를 가리려고 하다니. 마치 100kg의 사람과 50kg의 사람이 유도를 하듯이 말도 안 되는 경기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승부가 공평 해질 수 있을까?? 거북이가 토끼보다 더 느린 만큼, 토끼가 한참 뒤에서 출발하면 거의 비슷할 때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조금 더 재미있는 경주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이런 공평한 경주를 시작하려는 한 사람과 한 동물이 있다.   




 레이스 달린 멋진 모자에, 머플러를 고급지게 맨 한 할머니께서 병원문을 쾅 열고 들어오신다.

화가 나셨는지 거칠게 문을 여시고는 뒤따라 오는 아들에게 큰소리로 구시렁구시렁 불만을 표한다.

3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아들은 욕을 먹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아들의 손에는 500g 도 채 안될만한 자그마한 비숑이 연신 헥헥 거리며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아니... 내가 앞전 강아지 죽고, 다시는 개 안 키울라고 했거든??? 그런데 이 노마가 내한테 상의도 안 하고 덜컥 선물이라고 개를 데리고 와부렸다 아닌교..내원참..


할머님 말씀이 옳다. 이건 아들이 잘못한 거다.


아니... 우리 엄마가.. 키우던 개가 죽고 반년을 앓아누워있었어요. 밥도 잘 안 먹고. 친구도 안 만나고.... 이러다가 진짜 몽글이 따라가시는 거 아닌 가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수소문해서 최대한 이쁜 애로 하나 선물로 드렸죠. 좋으면서 괜히 저러시는 거예요.


듣고 보니 아드님 말씀도 옳다. 이건 아들이 효자인 거다. 


월월..으르렁..헥헥헥헥..

그래..니말도 맞다.....니가 뭔 잘못이 있겠니..




우리 인생의 마지막 반려동물과의 만남. 인생 4회 차의 반려동물은 보통 자식이 주는 선물로 만나게 된다.

40~50대 시절, 자식들이 떠넘기듯 맡아 키우기 시작한 인생 3회 차 반려동물이 떠날 때가 되면... 눈물 흘리며 하시는 말씀은 모두 한결같다.

"원장님. 전 인제 절대 동물 안 키울 거예요. 너무 마음이 아파 도저히 못 떠나보내겠어요.. 그리고 이제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지금 또 키우면 그 애를 어떻게 끝까지 돌봐줄 수 있겠어요.."

 이미 환갑이 넘어가는 어르신들. 이제 슬슬 끝을 생각하기 시작하시는 분들에게는, 어쩌면 마지막까지 책임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만남이 겁이 난다. 그리고, 한 번 더 마지막을 함께할 자신도 없다. 하지만 자식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원장님. 진짜 엄마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그나마 미미 만나고 저 정도로 좋아진 거라니까요.. 첨에는 앞전 강아지 생각난다고, 만지려고도 안 하시더니. 지금은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에요.. 화내는 거 저거 괜히 멋쩍어서 그러는 거예요.."


 진료실에서 툭탁툭탁 싸우는 모자를 보고 있으면 그래도 기분이 좋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하지만 이럴 때 한 번씩 산통을 깨는 게 또 내 전문이다.


하.. 아드님. 어머님 위해서 맘쓰 신건 좋은데.... 문제가 있어요.  비숑은 진짜 손이 많이 가는데. 계속 빗질하고, 귀 청소하고, 미용시키고.. 누가 계속 손을 봐줘야 이쁘게 유지되는 갠데, 어르신 혼자 사시면서 할 수 있을까요??


 순간 미소를 잃어버리는 아드님.  역시나, 그냥 이뻐서 받아온 거구나... 정말 뒷일은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었구나... 아들들이란, 40이 넘어도 어쩜 저렇게 철이 안 드누...




 2달이 넘어  접종차 들린 미미. 이번에는 어르신 혼자 오셨다.

다행히 전혀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자란 미미. 하지만 놀라운 건 미미의 변화가 아니었다. 두 달 사이에 10년은 더 젊어진 것 같은 어르신의 눈빛에서는 생기가 넘쳤다.

"원장님 들어보이소. 내가 야때매 별짓을 다하고있다. 오호호호호호

맨날 집에 들어앉아서 드라마만 보던 내가, 요새 뭐 보는지 아는교?? 유투부 본다. 유투부... 오호호호홓.

하루 종일 비숑치고 유투부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찌나 재미나는지... 그거 보다가 우리 아들 시켜서, 칫솔에 빗에 사 가지고, 우리 미미 이쁘게 해 준다고 머리 묶어주고 안 하나. 내가 아들만 셋 키우면서 평생 한이 딸내미 머리 한번 못 묶어 준거였는데. 요새 소원 푼다 아닌교.  우리 넷째 딸 이뻐 죽겠다. 오호호호. "

 다리 아프다고 집에만 누워계시던 어르신께서 하루 1시간씩 꼬박 산책하고, 아드님 졸라서 근처에서 젤 비싼 미용샵도 이주일에 한 번씩 다닌다고 하신다. 덕분에 자식들이 보내주는 용돈을 미미에게 모두 탕진(?)하고 있다고 한탄하시면서도 연신 싱글 벙글이시다.  굳이 보여달라고도 안 했는데, 휴대폰으로 미미 사진을 열심히 보여주신다. 휴대폰에서 사라져 버린 자식들과 손주들 사진들...  

너무 귀엽지 않냐는 어르신의 질문에, 차마 어르신이 더 귀여우신 거 같다는 말은 못 전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갑자기 어르신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요즘 내 가장 큰 고민이 뭔지 알아?? 미미가 그래도 20년 정도 살 텐데...
내가 그때까지 같이 살 수 있을까?? 하는거여..
 

순간 나도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해 드려야 할까....

딱히 어르신도 대단한 대답을 기대하고 하신 말 같진 않았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말은 그냥 정말 상투적인 말들 뿐.

 "에이. 당연하죠. 어르신.. 미미가 새끼 낳고, 그 새끼가 새끼 낳는 거 까지 다 보실 수 있으실 텐데요.."

말하고 보니 미미가 새끼 낳고 새끼가 새끼 낳는데 까지 2년이면 할 수 있다는 게 생각났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내 대답에  씩 웃으신 어르신은 신줏단지 모시듯이 미미를 꼭꼭 싸매고는 병원을 떠나셨다.


 그렇다. 지금 어르신께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토끼와 거북이 경주였다.

누구보다도 느리게 흘러가는 어르신은 이미 70보 앞에서 출발하셨다. 뒤따라 가는 미미는 엄청난 속도로 이제 막 출발선에서 뛰쳐나갔다. 아직은 너무나 먼 둘의 거리. 하지만 어르신이 느린 만큼, 그리고 미미가 빠른만큼 둘의 간격은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굳이 어르신이 기다려줄 필요도, 미미가 속도를 늦춰줄 필요도 없을 만큼 그들은 자연스럽게 나란히 도착선에 도달할 것이다. 지금은 조금 다른 둘의 모습이 그때 즈음에는 사뭇 닮아있지 않을까.  유비 관우 장비 조차 지키지 못한 도원결의의 약속.  부디 저 잘어울리는 한쌍의 커플은 서로의 마지막에 큰 선물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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