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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Feb 23. 2022

나의 인생, 너의 견생과 묘생(3)

미안하지만... 지금은 니가 젤 이뻐~!

안녕하세요 아버님~~! 우리 애기 이름이 어떻게 될까요????


 반달 모양의 눈웃음과 함께 애교 넘치는 목소리~~

잘한다! 우리 김쌤~!!!  이 정도 친절이면 감동 안 받을 보호자분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안 그래도 줄어든 손님들 때문에 텅 빈 진료실에서 졸고 있던 나를 깨우는 김쌤의 사랑스러운 웃음소리. 좋다. 좋아... 저 정도면 또 우리 병원 평가에 좋은 소리 하나 올라오겠군.

아니 그런데 이상하다?? 테크니션이 저렇게 상냥하게 여쭤봤는데, 왜 보호자분이 대답이 없지??

 잠시 후 답답해하는 김쌤의 재촉

" 아버님.... 애기이름이 뭔가요??? 아버님~!!!"

 김쌤의 숨이 막 넘어가기 직전,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게 들려오는 답변

"이쀠"

"예?? 이쁜이요??

"아니 아니, 이쀠"

"아~~ 예삐요??"

"아니.. 이쀠"

"아... 죄송합니다. 아버님.. 이삐요.. ^^

 한참을 차트를 뒤지던 김쌤.. 놀랍게도 진짜 이름이 이뷔였다. 성이 이, 이름이 뷔

 본인들의 성에 따님이 좋아하는 bts 에 뷔를 붙인 것.

그렇다.. 아버님은.. 이뷔라는 이름을 입밖에 내뱉는 것이 못내 부끄러우셨던 거다...



 내가 어!  너거서장이랑 어! 다했어 어!

 누가 봐도 이런 대사를 뿜어낼 것 같은 비주얼의 50대 아저씨.

 대충 기른 머리에, 허름한 점퍼, 운동화를 접어신으시고는, 제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마라...라는 표정으로 잔뜩 겁을 먹고 있으신 아버님.  그 품에는 풀코트에 온몸이 블링블링으로 뒤덮여있는 손바닥만 한 이쁘기 그지없는 요크셔테리어가 도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범죄와의 전쟁에 한창인 최민식을 닮으신 아버님께는, 클래식이 울려 퍼지고 젊은 아가씨들이 대기실에 즐비한 동물병원이 무서우실 수밖에 없다. 차라리 고성이 오가는 시장통이 편하지... 애효...


 


 " 아버님.. 혹시 뭐 때문에 오셨나요???"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마라, 손은 눈보다.. 아.. 여기까지 가는 건 아니구나.

아버님과 진료실에 앉아서 노려보기를 5분.

어떤 질문도 답을 안 하신다. 왜 오신 걸까. 나를 노려보기만 할 거면....

 " 아버님.... 죄송한데 뷔가 어디 아픈가요???"

 제발.. 제발.. 아버님 숨 막혀요..

 "음... 어디가 아파... 어디가.."

 드디어 아버님 입에서 나온 한마디...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답답하다.. 어디가 아파..라고 하면 그 어디가 어딘지 내가 어떻게 알란 말인가???

 "아버님. 혹시 어떤 특별한 증상이 있을까요?? 애가 밥을 안 먹나요???"

 "아니.. 밥은 잘 먹어.. 오늘 저녁도 잘 먹고 왔어.."

 "그럼, 다리를 저나요?? 호흡이 안 좋나요? 혈뇨를 보나요? 설사를 하나요??"

 모두 고개를 젓는 아버님.. 아버님. 여기 스무고개 하러 오신 건 아니잖아요.??

 "혹시 기력이 없나요? 컨디션이 안 좋거나."

 "어.. 맞아~!!"

 갑자기 급 방긋 웃으시며 크게 고개를 끄덕이신다. 빙고. 드디어 맞췄다.

 "아. 힘이 없나 보네요.. 얼마 정도 되었나요?? 하루? 이틀?? 디스크나, 복통 같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쏼라쏼라. 썰을 풀려는 순간.. 아버님의 한마디.

 "한 30분 됐어..."


  엥? 기력이 없는 증상 하나밖에 없는데 30분?? 아니. 설사 그런 증상이 맞다고 해도 30분 기력 없는걸 어떻게 눈치채?? 역시 월드스타는 뭐가 다른 건가??

 " 아버님 그럼 30분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 없고, 잘 먹고 잘 놀았는데... 딱 30분 전부터 애가 힘이 좀 없는 것 같다고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아니 그걸 어떻게 느껴요??? 말도 못 하는데??"

  주섬주섬 아버님의 손이 속주 머니로 향한다. 순간 움찔했다. 왠지 손도끼나 작은 칼이 나올 것 같은 무지막지하고 단단한 손.  그 손에 딸려오는 건 작디작은 빗 하나와 초고급 럭셔리  간식.

 빙그레 웃으시면서 아버님이 뷔의 등을 정성스럽게 빗기기 시작하신다. 맛있는 간식을 입안에 밀어 넣어주시고는,  한마디 하신다.


난 알지... 이 녀석... 말 안 해도 알아....


 결국 아버님이 말씀하신 증상이란, 원래 아버님이 퇴근하시면 꼬리를 초당 100번 흔들면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자기를 반겨야 할 애가, 오늘은 꼬리를 초당 10번 정도밖에 안 흔들면서, 평소랑은 다르게 5분만 따라다니다가 엎드려서 물을 먹더라는 정말 심각하고도, 심각하고도 심각한 증상이었다.

 뭐 큰 검사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 당장 대학병원 뛰어갈 것 같은 아버님을 간신히 설득하고 돌려보냈다. 그렇다. 인생의 3회 차 반려동물. 보통 그 시작은 성인이 된 자식이 키우던 반려동물을 떠맡으면서 시작된다. 시집을 가고, 아기를 낳고, 취직을 하고... 이뻐 죽겠던 첫 만남이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빛이었던 내 사랑이 짐으로 다가올 때 즈음. 나의 어떤 짐도 두말없이 받아주는 두 사람이 떠오른다. 바로 엄마와 아빠.

 

첨엔 극구 반대했지. 내가, 자식들 출가시키고, 이제부터 막 여행 다니고 쉬려고 하는데.... 또 개밥 주고, 똥 치우고.. 이 짓을 다시 하라고??? 절대 안 된다고 했지....

 

 하지만 자식이 힘들다는데 어쩌랴.. 자식이 방법이 없다는데... 그걸 끝까지 거절할 부모가 세상 어디 있겠는가. 애들 모두 나가서 좋다고 꾸미기 시작한 럭셔리한 집 인테리어는 어쩌나. 이제 밥 달라고 할 애들 없으니 마음껏 돌아다니려고 맘먹은 여행 계획들은 또 어떻고... 30년을 세워놓은 내 중년의 계획이 망가질 것이 눈에 뻔하더라도 결국은 어쩔 수 없다. 그게 자식이니깐.


  그렇게 시작되는 3회 차의 반려동물. 이때 가장 큰 변화를 겪는 주인공들이 바로 아저씨들이다. 처음에는 냄새난다, 갖다 버려라, 돈 든다며 투닥투닥거리던 50~60대 아저씨들. 그들은 외롭다. 함께 살아도 한마디 말 붙이기 힘든 가족들. 전화 한 통 없는 자식들. 바쁘게 놀러 다는 와이프... 일하고 들어오면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씻고, 술 한잔 하고 티비보고 자고... 평생을 누군가에게 애정표현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애정표현 한번 제대로 못 들어본 대한민국 아저씨들. 그분들이 평생 처음 겪어보는 누군가의 맹목적이면서도 무조건적인 애정. 그걸 꼬리가 빠져라 휘둘러대는 강아지와, 와서 쓱 한번 비비고 살짝 쳐다봐주는 고양이를 통해 느껴버리는 것이다.

 

 

 


원장님~!! 우리 아빠 좀 혼내주세요... 아토피 있다고 그래 먹이지 말라해도 말을 안 들어요...
원장님~!! 우리 남편 좀 한소리해주이소... 이 인간이 다이어트 사료 먹이고 있는데 맨날 거기 고기 뿌려서 먹인다이까네.. 진짜 환장하겠네...


 병원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탑 3안에 들어갈 말이다. 여전히 부끄럽고, 내성적인 우리네 아저씨들은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른다. 대놓고 뽀뽀해주는 것도 어색하고, 하다못해 동물병원에 혼자 찾아가서 우리 애 이름이 귀요미예요, 꼬꼬예요. 이런 말도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애정 표현. 진짜 애들한테 간식이란 간식은 먹여서 조진다.

 직업이 수의사다 보니, 음식 관리해주시라, 엄한 거 먹이지 마시라. 맨날 잔소리를 하는 게 일상이 돼 버렸지만.... 아버지가 집에서 몰래 간식을 준다는 말은 왠지 너무 귀엽다. 하도 혼나니 안주는 척하면서 숨어서 먹이신단다. 개도 눈치가 빨라서 아버지만 오면 침을 흘리면서 따라간다. 그리고 그걸 또 들켜서 혼난다. 그리고는 더 몰래 먹일 방법을 찾는다. 또 혼난다. 영원한 반복이다.


 엄마는 그래도 엄마다. 어릴 때 넘어지면 울면서 엄마부터 찾는다. 조금 커도 엄마에게는 평생의 애틋함이 있고, 엄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곤 한다. 하지만 아빠는 그래도 아빠다. 초등학교에만 들어가도 조금 어색해지고, 왠지 대화도 잘 안 통하는 것 같고, 늘 마음은 쓰이지만 늘 감사하지만 그래도 아빠는 아빠다.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이 세상 모든 아빠들은 조금씩 결핍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긴 힘들다는 결핍을... (심지어 마누라 조차도...)


  그래서, 미안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지금은 니가 젤 이쁘다. 벨이 울리자마자 앞뒤 옆 안 보고 뛰어나오는... 용돈을 안 줘도, 휴대폰을 안 사줘도, 나만 바라보고, 나만 좋아해 주는 물론 간식을 많이 줘서 일수도 있자만.... 바로 니가 젤 이쁘다.

 젊은 아가씨들처럼 키우는 반려동물의 사진이 박힌 휴대폰 케이스를 하고 다니진 못하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몸에 좋고, 최고급 제품들만 사서 애한테 선물하진 못하지만... 고된 일하는 도중도중 피식 웃게 해 주고, 퇴근길을 서두르게 해 주고, 대답은 못하지만 티비보며 대화할 수 있는 니가... 젤 이쁘다.



 오랫동안 신부전으로 투병생활을 했던 몽이가 결국 무지개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거의 1달 이상 매일 수액을 맞고, 가족들도 매일 번갈아가면서 고생고생을 했던 지난 한 달. 15세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그래도 평균 나이까지 잘살다가 갔구나 할 수도 있지만, 막상 가족에게는 그렇지 않다. 여자분둘, 남자분 하나, 그리고 어머님. 그동안 자주 병원에 오셨던 온 가족들이 다 오셔서 차가워진 몽이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그런데 저 뒤에 멀찍이 낯선 분이 한분 보였다. 한 번도 병원엔 오신 적 없는 아버님이신 듯했다. 가족들이 항상 말씀하셨던. 몽이의 진짜 주인. 몽이를 가장 아끼고, 몽이를 꼭 살려야 하는 이유라고 하신.... 본인도 당뇨와 신부전을 앓고 계신 아버님. 온 가족이 몽이 앞에서 슬피 울고 있을 때도 다가오지 않고 묵묵히 병원 문 앞 복도에서 가만히 서있으시던 아버님께서.... 결국에는 무너지셨다. 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으셨다. 그냥 눈에서 끝없이 많은 양의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아버님의 건강이 너무 걱정이 되어서 가족분들을 적당히 다독이고는 데리고 가시게 했다. 정말 무뚝뚝한 경상도 아저씨. 그분이 일평생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신 적이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까???


 10대, 20대, 30대. 이때의 시간 속에서의 만남은 내가 원해서 시작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내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너무 바쁘고, 너무 힘든 시절. 내가 열심히 키워주고 싶지만, 나를 키우기도 바쁜 시절. 그래서 미안하고, 그래서 아쉽다.

 하지만 40대, 50대에 만나는 이 얘기 들은 내가 원해서 맺게 되는 인연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빈 곳을 빠짐없이 채워준다. 외롭고, 쓸쓸한 나인 생의 중반을 고스란히 자신의 일생을 넣어서 빛나게 해 준다. 그래서 고맙다. 한없이 고맙다.


어머님.. 아버님이 애  간식 주는 거 절대 못 말립니다... 제가 장담해요. 그냥 두 번 중에 한 번은 그냥 눈감아 주세요. 왜냐하면 이건 한 생명의 행복이 아니라... 두 생명의 행복이니까요...~^^





 ps.글이 좀 많이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시한번 열심히써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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