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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Nov 10. 2020

나의 인생, 너의 견생과 묘생...(2)

자식에서 전부로 -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너였다.

우리애가요 글쎄... 엄마 아빠 사진은 한 장도 없어요. 지 새끼만 좋다고 물고 빨고.. 참나.. 20년 키워놔도 아무 소용없어요...
  

 중년의 어머님 아버님들께 자주 듣는 하소연이다. 우리 동물병원이 부산이다 보니, 성인이 된 자식들은 대학이나 직장 때문에 서울로, 혹은 타 지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엄마 아빠 보고 싶다고 자주 전화하고 울먹이던 자식들이 슬그머니 연락이 줄어들더니, 어느 날 갑자기 인스타가 귀여운 아깽이, 강아지 사진으로 도배가 된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 휴대폰 케이스에, 폰 배경화면에, 카톡 사진에, 전부다 지 새끼 사진으로 꽈꽉 채워놓았더라고요. 요샌 전화도 안 하고, 카톡도 가끔 지새끼 이쁘지 않냐고 사진만 보내요.. 그놈에 고양이가 뭐가 이쁘다고..."

 언행불일치~~!!!   본인도 지금 안고 계시는 강아지가 이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어루만지시면서 자제분 흉을 보시곤 한다.

 '아따.. 어머님.. 동물 좋아하는 거 누구 닮았겠습니까... 하하하..'



 인생의 2회 차 반려동물. 보통 성인이 되면서 꿈에도 그리던 독립과 함께 이뤄진다.

 이 시기의 반려동물은 내 새끼, 내 자식이 되고, 본인은 어린 나이에 기꺼이 엄마, 아빠라고 불리게 된다.

 고달픈 타향살이. 애인도 친구도 채워주지 못하는 외로움을 잊기 위해, 세상 유일한 내편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어린 친구들은 알지 못한다.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개나 고양이처럼 나도 우아하고 럭셔리하게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20대... 일생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돈 없는 시기. 일에 치이고, 돈에 치이다 보면 어느덧 젤 이쁘던 나의 애기가 짐이 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든 관심이 애기에게만 집중되어 모든 시간을 함께하다가, 점차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들이 많아지면 짖고, 똥오줌을 못 가리고, 집을 엉망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이젠 더 이상 이뻐 보이지도 않는다.   안타깝지만 접종을 하러 오는 아가씨들의 웃음이 5차 접종이 할 때쯤 사라지고 하소연만 늘어간다면, 어느 순간부터 병원에 오지 않고, 몇 년 후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우리 xx, 기록 좀 지워주세요. 이제 안 키워요...'

 

 힘들었던 20대를 함께 보내고 나면, 다시 한번 견생, 묘생에 가장 큰 시련을 겪게 된다. 그것은 바로 주인의 결혼.

 시댁에서 반려동물을 데려오는 걸 반대하는 집도 많고, 혹은 반려자 쪽에 있는 반려동물과 함께 키울 수 없는 상황(예민한 고양이 라던지..)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아예 반려자가 동물을 싫어하는 경우이다.

아니야.. 나도 동물 좋아해.. 나도 예전부터 강아지 키워보고 싶었어...

 결혼하기 전에는 뭔 소리를 못하랴. 환심을 사려고 좋아하는 척했던 남편들이 결혼을 하고 나면 확 바뀐다. 집이 바뀌고 주인이 늘어나니 안 하던 실수도 늘고... 중간에서 상당히 힘들어 울곤 하던 여자 보호자분들이 많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식이 고양이만 10마리 넘게 키우는데, 이러다가 결혼도 못하고 평생 고양이만 바라보고 살 것 같다고.... 내가 고양이는 다 키워줄 테니 제발 시집만 갔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어르신의 말씀에 웃을 때도 있다.

 

 예전에는 이런 저런 사연들로 결혼을 하면 반려동물을 많이 파양 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엔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어려워도, 웬만하면 끝까지 내 새끼는 함께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배우자가 싫어하면 차라리 결혼을 포기하거나 배우자를 바꿀지언정, 나의 20대를 함께한 첫 번째 내 새끼를 포기할 순 없다는 것이다.

 


 힘들었던 20대, 변화가 많은 30대를 함께 보낸 나의 첫 번째 자식. 보통 이 아이와의 이별을 준비할 때 즈음이, 결혼 후 주인에게 아기가 생길 때와 겹치는 경우가 참 많다..


 "원장님 너무 힘들어요. 모두들 우리 짱이 때문에 말이 많아요.."

아가씨 때부터 15년간 모든 사랑과 애정을 쏟아 키웠던 짱이, 어느덧 이제는 늙디 늙어 오늘내일하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이 보호자분 께서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게 되면서, 짱이가 이미 갖고 있던 일들이 큰 문제로 여겨지기 시작한것이다.  어릴 때부터 안 좋았던 피부가 심해져, 이제는 귀에서 역한 분비물이 줄줄 나오고, 커질 대로 커진 유선종양에서도 피와 고름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집 어디에서도 악취가 없어지지 않는것이다.  크게 간섭 안 하던 친정엄마도, 사위와 사돈 눈치가 보이는지 자꾸 압박을 하기 시작했고, 차마 말은 안 하지만 크게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시댁과 남편도 임신 후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뭐가 가장 힘든지 아세요?? 이제 저도 더 힘들기 전에 짱이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에요. 정말 못할 짓이죠.. 정말 내 전부였던 짱인데.....

 정말 거짓말처럼, 짱이는 출산 예정일을 3일 앞두고 하늘에 별이 되었다. 같이 따라온 친정 엄마와 남편은 아기에게 안 좋다고 울지 말라고 진정하라고 자꾸 다독였지만, 그게 어찌 마음대로 될 수 있으랴... 끝없이 울던 보호자분은 짱이에게 고맙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의 2회 차 반려동물은, 주인이 가장 힘들고, 가장 외로울 때를 함께해주고는 훌쩍 떠나버린다. 더 이상 자기가 없어도 외롭지 않고,  혼자였던 주인의 옆에 다른 생명들이 존재함을 확인한 후에... 기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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