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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Mar 17. 2020

우리들의 어색한 시간

-그 녀석이 먹은 것-

선생님 우리 애 가요...~!!!     

 

 응급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보호자의 표정만 봐도, 아니 문이 열리는 소리만 들어도 이젠 알 수 있다. 접종을 하러 오는 보호자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마! 우리 개 마! 접종도 하고 마! 좋은 거 먹이고 마! 다했어!’라는 기세 등등한 모습으로 들어오신다. 피부나 장염 같은 가벼운 증상이지만 자주 재발되어 여러 번 내원하시게 되는 경우에는 약간의 짜증 섞인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병원에 들어오신다. 응급은 다르다. 문이 벌컥 열리고, 보호자분은 다급하게 수의사를 찾는다. 그리고 이 경우 항상 개를 안고 오신다. 즉 뛰어온 것이다....     

 


 조그마한 체구의 귀엽게 생긴 아가씨가 작은 시츄를 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접수를 했다. 

 “선생님, 제가 한눈을 판 사이에 이 애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다 먹어버렸어요. 거기 별의별 쓰레기 다 있었는데.. 어쩌죠???”

 걱정이 되어서 울고 있는 보호자 분과 미친 듯이 흥분해서 헥헥거리며 좋다고 뛰어다니는 뭉치의 모습. 오직 동물병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혼돈의 카오스인 것이다. 

 뒤이어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주차를 하고 허겁지겁 들어왔다. 평소 대학생 보호자분 혼자 자취하면서 키우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다행히 아버지가 집에 있어서 먹자마자 바로 차를 타고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자, 우선 진정하시고요. 뭘 먹는다고 무조건 문제 되는 건 아니니깐, 엑스레이부터 한번 찍어볼게요.”

 보호자분들께서 뭘 먹었다고 온 경우, 대부분 막상 배안에 별로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강아지가 아무리 아무거나 먹는다고 해도 생각보다는 맛없는 이물을 그렇게까지 잘 먹진 않는다. 그래서 진정을 좀 시켜드리려고 이렇게 말을 했는데, 방사선 사진을 본 순간 와이씨, 미쳤네.. 란 말부터 먼저 나왔다. 정말 뭉치의 위안에는 뭔지 모르겠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진짜 뭐 엄청 많이 먹었네요.. 이것들은 전부 휴지 같고, 뭐 동그란 것도 있고. 이건 플라스틱 같고... 이건 뭐지?? 의자에 끼우는 받침대? 골무? 같은 것도 있고.. 좀 심하네요..”

 방사선 사진을 보여드리자 보호자분은 더 하얗게 질리셨고, 옆에 계시던 아버님은 기가 차 하시며 뭉치야 도대체 왜 먹었냐... 이걸 왜 먹어...  만 반복하셨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뭉치는 오래간만에 나온 나들이에 제세상 만난 듯 뛰어다니며 기분이 한 껏 좋았다. 마치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한 대장금처럼,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어찌 쓰레기를 먹었냐고 하시면, 그저 쓰레기통이 앞에 있어서 먹었을 뿐이 온데....


 “일단 구토를 시켜볼게요. 아직은 위에 대부분 있으니깐 구토를 시켜서 배출시켜보고 실패하면 수술이나 내시경 같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요즘은 옛날처럼 무식하게 과산화수소 먹이지 않고, 좋은 주사가 있어서 주사 한방이면 구토시키고 쏼라쏼라.. 보호자분이 너무 쳐 저 있어서, 나라도 쉴 새 없이 떠들어대며 뭉치 앞발에 라인을 잡고, 구토 주사를 놨다. 2분쯤 후, 온 병원을 활개 치던 뭉치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우우우 웩~~“엄청난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이물을 토해냈다.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쓰레기통 하나가 그대로 입에서 나온 듯했다. 기뻐하며 다시 한번 엑스레이를 찍어봤고, 다행히 뭉치의 위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해졌다. 

 ”일단 거의 다 나온 것 같으니, 당장 다른 처치는 보류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모르니 일주일 정도만 주의 깊게 관찰하죠 “

 내 말이 귀에 들릴 리가 있나, 아버님과 따님은 뛸 듯이 기뻐하시며 막 구토해서 침범벅에 토사물이 잔뜩 묻어있는 뭉치의 입에 뽀뽀를 해댔다. 일단 토를 성공시키면 수의사로서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나는 기분 좋게 마치 전리품처럼 토사물들을 젓가락으로 헤치며 보여드렸다.  

”너 도대체 뭘 먹었는지 봅시다. 휴지에, 비닐에, 애 해이... 면봉도 있고.. 이건 콘....... “

 순간, 콘... 에서 다행히 내입은 멈췄지만, 분위기는 급격히 싸늘해져 갔다. 엑스레이 사진에 보였던 의자 발싸개인가, 골무인가 했던 것.. 그게 콘돔이었던 것이다. 가만있자, 분명히 따님 자취방에서 나온 쓰레기통인데.. 하필 뒤에 아버님도 같이 있고.. 이걸 어쩌나..

 눈치 게임을 하듯이 모두들 조용히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자랑스럽다는 듯이 꼬리 치는 뭉치의 숨소리만 무거운 공기 중에 울려 퍼졌다. 찰나의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음.. 다행이네요. 이제 진료는 다됐죠?? 제가 계산할게요. 얼만교? “

 아버님은 마치 못 본 듯, 못 들은 듯 슬쩍 밖으로 나가셨고, 아가씨분은 아까 문을 열고 들어올 때보다 얼굴이 더 하얗게 질린 채로 문을 열고 나가셨다. 

 그렇게 그들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부디 사소한(?)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뭉치가 아무 일 없었음에 감사해하며 가정의 평화가 계속되길 빌 뿐이었다.      

”뭉치야.. 너도 먹으려면 눈치껏 좀 먹어라.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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