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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Mar 26. 2020

중독이 된다는 건...

그 녀석은 슈퍼히어로

 중독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의 의미로 쓰일 수 있다. 독성 성분이 있는 것을 흡수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게 된다는 의미로도 쓸 수 있다. 간혹 동물에게는 이두가지의 뜻이 동시에 쓰이기도 한다. 먹으면 안 되는 것에 대한 갈망... 마치 죽을 것을 알면서도 뜨거운 불로 뛰어들어가는 불나방처럼 그 녀석들은 초콜릿을, 포도를 갈구하고, 또 갈구한다. 


 며칠 전 사상충 예방 접종을 하러 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래브라도 리트리버 순심이. 미친 듯이 활기차던 순심이가 축 늘어져서 내원을 했다. 어제부터 밥도 안 먹고 상태가 너무 안 좋아졌다는 보호자분의 설명. 바로 기본적인 검사를 해봤더니 빈혈을 체크하는 수치인 헤마토크리트가 너무나 낮게 나왔다. 뭐 수치를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순심이의 귀나 잇몸의 색깔도 많이 창백해져 있었고 호흡도 조금 가빠오고 있었다. 

 빈혈이 생길 수 있는 원인이 다양하지만, 너무 어린애인지라 다른 원인이 될만한 게 별로 없었고, 보호자분을 취조(?) 하기 시작했다. 동물은 말을 못 하기 때문에, 원인이 애매할 때는 역학조사가 필요하고 보호자분의 기억을 하나씩 되짚어나가며 찾아나가야한다. 

 “아 맞다. 원장님. 짜장면 먹었어요..”

 오호라~~ 이 정도면 아귀가 딱 맞아떨어졌다. 짜장면을 먹고 밖에 내놨는데, 순심이가 그 국물을 깨끗하게 핥아먹어버렸다고 한다. 국물뿐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는 보호자분의 설명이었다. 

 “ 이 큰 덩치의 개가, 그 국물에 우러나온 그 적은 양의 양파로 이렇게 될 수도 있나요???

 보호자분은 기가 차 하셨지만, 현미경 검사를 비롯한 여러 결과들이 양파 중독에 가장 맞게 나오고 있었다.      

 빈혈은 생각보다 치료가 힘들다. 특히 중독에 의한 빈혈은 특별한 해독제가 있는 게 아니라, 결국 빈혈을 관리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혈액의 양이 파괴되는 혈액의 양보다 많아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순심이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혈뇨를 보기 시작했고,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입원 3일 차에 헤마토크리트 수치가 15 이하로 떨어져 수혈을 실시했다. 강아지의 혈액은 사람처럼 구하기 쉬운 것도 아니고, 사설 기관에서 직접 구매하여 행해지기 때문에, 특히나 엄청난 양이 공급되야하는 대형견에게는 매우 힘들고 매우 비싼 치료이다.  꼬박 2주일의 입원기간 중에 수혈을 3번이나 하고서야 겨우 순심이는 조금씩 회복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퇴원 날이 되었다.      

 


 ”어머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진짜 비싼 짜장면 드셨네요..~~“

 ”네, 선생님 이제 죽을 때까지 짜장면 안 먹으려고요... “

 순심이가 회복이 되어 기분은 좋으셨지만 한 달치 월급이 날아간 보호자분은 속상함에 연신 한숨을 쉬셨다. 그때, 강아지 미용을 하기 위해 오셔서 대기실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똘이 할머님이 스윽~ 다가오시더니 그 보호자분 옆에 서서 이렇게 물으셨다. 


 ”선생님... 이상하네.. 양파 먹으면 안되는교??“

”네 어르신. 양파는 개에게 독성 성분이 있어서 조금만 먹어도 죽어요. 이 큰 개도 짜장면 한번 핥아먹고 한 달 가까이 고생하다가 이제 퇴원하는 거예요.. “

”어. 이상하네?? 내가 마 우리 똘이 심장 안 좋다는 소리 듣고, 건강하라고 내 먹는 양파즙 맨날 먹는데?? 매일 내 한 컵, 똘이 한 컵... 벌써 일 년째 매일 먹는데 안 아파 보이는데?? 진짜 위험 한교???     

 잉? 이건 무슨 소리?? 똘이는 14살이 넘은 2kg 조금 넘는 장모 치와와다. 그 작은 녀석이 매일 걸쭉한 양파즙을 한잔씩 먹는다고??? 

 “어르신 진짜 안돼요.. 양파가 개한테 얼마나 위험한데요. 아마. 빈혈이 지금쯤......” 하면서  똘이 안색을 살폈는데.. 이런, 점막이 너무나도 영롱하게 붉다. 빈혈의 ㅂ자도 꺼낼 수가 없을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음. 지금은 괜찮지만 언제 문제 될지도 몰라요. 일단 먹이지 마세요..”

 똘이 할머님은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미용을 맡기고 자리를 떠났다. 남은 건 순심이 보호자분.. 결제카드를 떨리는 손으로 내밀면서 나직이 물었다. 

 “선생님.. 저 작고 늙은 애가  양파즙을 매일 마시는데 왜 쟤는 괜찮고, 6개월 된 덩치 큰 순심이는 짜장면 양념 한번 핥아먹고 왜 저랬을까요??”

 음.. 중독이라는 게 원래 개체 차이가 크다. 내 개가 안전하라는 법이 없으니 다들 조심해야 하는 것이지만, 실제 무지한 보호자분을 통해 여름 내내 포도를 먹고도 멀쩡한 애가 있고, 포도 껍질 한 개 먹고 신부전으로 죽는 개들도 있다. 순심이 보호자분이 가시고 나서 아..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했다. 대신 그 순간 당황한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저 개가 초능력이 있나 봐요. 왜 뭐 잘못 먹고 잘못 찔리고 하면  헐크나 스파이더맨이 되잖아요...”

당황해서 한말이었지만 다행히 보호자분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웃으면서 가셨다.

 말이 씨가 된 것일까?? 똘이는 진짜 초능력자처럼 19살이 될 때까지 병치례 한번 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할머님 품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요즘도 가끔 중독 증상으로 개들이 오면 그때 생각이 난다. 간혹 상태가 심각해져 위험한 상황에 이를 때면, 그 애들에게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다. 

 

“이것만 잘 넘겨보자. 이 시련을 이겨내면, 너도 초능력이 있는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단다. 힘내~!”


* 본 에피소드는 10여 년 전 동물병원에서 있었던 일로서, 요즈음의 동물병원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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