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영화 두 번째 시리즈: 로칸 피네건 감독의 <비바리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엄마는 내게 설거지를 부탁하셨다. ‘그걸 내가 왜 해야 해?’라는 마음이 불쑥 들어 할 일이 있다는 말을 핑계 삼아 방으로 도망쳤다. 순간의 감정이 사그라들자 그 빈자리엔 미안함이 들어섰다. 그건 분명 엄마의 일도 아닐 텐데.
신혼집을 구하러 온 젬마와 톰 커플은 ‘욘더’라는 기괴한 마을의 9호 집을 소개받는다. 같은 색과 구조의 집이 끝도 없이 펼쳐진 이 마을에서 중개인은 집 구경을 시켜주던 중 돌연 커플을 두고 사라져버린다. 젬마와 톰도 이상함을 느끼고 서둘러 떠나려 하지만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다시 9호 집 앞으로 돌아올 뿐이다. 다음 날, 좌절한 이들 앞으로 아이가 담긴 택배 상자가 도착한다. 아기가 다 자라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의문의 편지 한 통과 함께. 젬마와 톰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거두지만, 이들의 불행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영화 장르는 단순히 판타지가 아니다. 판타지물의 옷을 입고, 온갖 기괴한 세트와 강렬한 색을 사용하여 애써 표현주의인 척해보지만 결국은 극사실주의로 돌아온다. 주인공 젬마는 이 시대 모든 어머니의 초상이다. 영화는 그녀를 통해 어머니로 살아가는 여성에게 얼마나 많은 희생이 강요되는지를 보여준다. 가정보다는 개인의 일을 우선시하는 톰과 통제 불가능한 아이 사이에서 그녀 ‘Gemma’는 사라지고, 한 가정의 ‘mother’만 존재한다. 언제부터 아이를 기르는 것은, 가정을 지키는 일은 어머니의 역할이 되었을까. 어머니는 언제부터 희생의 아이콘이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