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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DA Apr 17. 2022

31주 임산부 혼자 하는 제주여행

남편은 내일모레 올 거예요

지금은 저녁 9시 반. 서귀포 어느 작은 호텔에서 노트북을 켜고 2007년 오늘 국내 인기곡 리스트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내일이면 출산휴가 2주 차에 들어가며, 제주도 일주일 살기를 계획했었다. 물론 갑작스럽게 일주일이나 휴가를 낼 수 없는 남편 때문에 고민을 했다.


결혼 전에는 혼자서 뉴욕, 대만, 홍콩, 호주 어디든 잘 다니던 난데, 남편이 생기니 남편 없이 혼자서 하는 여행이 왠지 두려워졌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까지 생각하면 더욱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내 인생에 당분간은 오지 않을 여유로운 이 시간들을 사치스럽게 쓰고 싶었다. 떠나자!!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부칠 때까지 남편이 함께 있어줬고, 보안검색대부터 혼자 여행이 시작되었다. 임산부는 엑스레이를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조그맣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검색대 직원에게 '임산부인데 따로 통과가 가능할까요?'라고 말해 손 검색으로 무사통과했다.


 비행기 보딩 때에도 사람들이 탑승하기를 앉아서 기다리다가 세 번째 탑승 안내가 나올 때쯤 승무원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임산부인데 먼저 탑승 가능할까요?'라고 말해 아주 조금 일찍 보딩 할 수 있었다. 호의를 요청하는 일이 내겐 아직 어려운 일인가 보다. 난 교통약자인데!! ㅎㅎ


제주 여행의 시작은 기념품샵이지!!! 용두암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제스토리!



그리고 오늘 반나절의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비행기의 이륙 시점이었다. 활주로에 도착한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엔진의 추진을 세게 넣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뱃속의 아이가 놀라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옷으로 배를 한번 더 감싸고 마음속으로 아기에게 말을 걸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려고 그러는 거야 아가.
처음이라 소리가 너무 커서 놀랐지? 괜찮아~ 엄마랑 재미있게 여행하자.'


이런 게 모성애라는 걸까. 이상하고도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비행기를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타던 나이고, 터뷸런스도 지구의 대기를 몸소 체험하는 것이라며 즐기는 수준이었던 내가 비행기 추진에 놀라서 눈물이 나려고 하다니.(남편에게 이야기하면 내가 극성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며 놀리겠지 ㅎㅎ)


 먼저 아기를 낳은 여동생과 백화점에 갔던 도 생각났다. 조카를 아기띠로 안고 엘리베이터를 내리는데 문이 먼저 닫히려 하자 동생은 겁이 나서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조카를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 제 몸으로 엘리베이터의 문을 이겨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때에는 말을 못 했지만 이상하게 슬펐다. 내 소중한 동생이 자기 몸보다 먼저 챙기는 존재가 생기다니. 나에겐 아직도 내 동생이 더 소중한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내가 이제는 뱃속의 아이 때문에 겁쟁이가 되어간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려니 싶다가도 신비롭다. 이래서 옛말에 아이를 낳으면 철이 든다고 했던 건가. (아이 안낳아도 철드는 사람 많지만!!)


아가야, 엄마는 괜찮아.

우리 내일도 또 즐거운 여행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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