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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DA Mar 07. 2023

우울감, 쓸모없는 인간

매일매일 싸우는 소리 없는 전쟁터

남편은 집안일을 꽤 잘 도와주는 편이다. 퇴근 후 7시 전에 집에 돌아오면 깨끗이 씻고 나서 아이를 안아준다. 30분 정도 아기와 놀아준 다음에 7시 30분이면 나와 함께 아기를 목욕시키고, 8시경에 아기에게 분유를 먹여 밤잠을 재운다. 


모든 일이 끝나면 8시 30분, 간단하게 부부가 저녁을 챙겨 먹고 나면 남편은 하루동안 쌓여있던 설거지를 하고 아기가 놀던 매트 위를 정리하고 물티슈로 깨끗하게 닦아놓는다.


남편의 일과가 저렇다면 나는, 남편이 아기를 안는 7시부터 30분간은 침대에 누워 쉰다. 목욕은 같이 시키고 로션을 발라 옷을 입히는 건 내가 한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남편은 목욕을 끝낸 욕실을 정리하고 나온다. 아기 수유를 할 때 나는 아기 빨래를 돌리고 저녁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보통 배달음식을 고르는 일이다.


그리고 사나흘에 한 번씩은 아기가 잠든 후에 이유식을 만들거나 젖병을 삶거나 장난감을 소독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나는 매일매일 나 자신과 싸운다. 왜 이런 일들은 항상 내가 주도해서 진행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나는 왜 남편의 심기를 살피게 되는 것인가. 


남편은 이유식도 사 먹이길 바라고, 집안일을 한 번에 해결하지 않고 쉬엄쉬엄 느긋하게 하는 편이며(그동안 속 터지는 건 나), 주변이 조금 지저분해도 괜찮은 사람이다. 반면 나는 모든 것이 완벽히 정돈되어 있길 바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잔소리를 시작하는 쪽은 나다.


나 죽으면 우리 딸을 부탁해...라고 농담했더니 진지하게 상처받은 우리 남편 ㅎㅎ


나는 집안일에 미친 쓸모없는 인간. 


요즘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인데, 참 위험하다. 이런 심리적인 위해가 몸까지 지배하여 최근 부정맥 증상이 심해져 약을 먹기 시작했다. 남편이 조금만 내 마음을 알아줘도 눈물부터 쏟아지고, 심장내과가 아니라 정신과를 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소하게는 맵고 단 게 당기는데, 먹고 나서는 헛배가 부른 나 자신이 참 초라하다.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걸까.


회사에 출근하고 싶고, 남편보고 육아에 전념하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남편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육아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불편감을 내비칠 때 내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이건 내 업무가 아니잖아. 아기는 같이 낳은 거잖아.


사실 남편은 육아를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그 완성의 기준이 나보다 조금 낮은 것뿐이다. 집안일에 대한 책임감도 조금 덜 하고, 적당히 대강 해도 마음 편한 성향이기에 그렇다. 라고 나는 또 남편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다가 속병이 나서 심장이 아픈 주제에.


오늘 아침엔 차갑고 정확한 어조로 쓰레기봉투를 버려달라고 말했다. 나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과 크게 한판 붙는 수밖에. 우리 엄마가 그랬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 탈이 나지 않는다고. 알아서 해주길 바라다가는 속병 나서 더 싸우게 될 거라고. 영문을 모르는 남편도 이게 웬 난리냐 싶지 않겠는가.


어차피 남은 60년을 함께 가야 하는 내 짝꿍이다. 아기를 낳은 지는 이제 겨우 9개월이 되었는데 어찌 손발이 착착 맞을 수 있겠는가. 혼자 열내면서 병 키우지 말고 말을 하자. 사실 내 말이면 다 들어주는 착한 남편이니까. 오늘 아침에는 쓰레기 버리느라 그 좋아하는 커피도 못 내려간 순딩이 남편, 그래도 내가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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