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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 Jul 28. 2020

한 여름, 새벽 소나기와의 호흡

자연을 닮은 우리에게

오전 7시 30분,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뒤척이다 결국 눈이 떠졌다. 비가 오겠다는 소식은 전날부터 들렸는데 이제야 밖이 어둑어둑하다


어쨌든 새벽 소나기가 시작된 것이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는 나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쓸어내린다.날이 개면 흙냄새가 올라올 것을 생각하면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설레는 마음에 잠에서 깨어나 어제 읽다만 책을 꺼냈다.


요즘 매일같이 하루 2시간 이상 책을 읽는다. 뭔가 자기 계발 같은 게 되는 기분이라 뿌듯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시간에는 이왕이면 한숨 더 자는 편이 마음이 더 좋은데...

어찌 됐건 이런저런 바람들에 휘둘리던 내 마음은 책을 펴면 보이는 글자들이 주는 차분함과 정갈함에 고요해진다.  종이 위에 올라탄 글자는 과열된 내 마음에 진정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글자를 보고 저자의 생각과 마주하며 현재의 나를  잠시 잊으면 되는 것이다.그렇게 한 권 한 권 읽다 보면 더 이상 고된 경험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싶을 정도로 좋은 스승의 가르침을 얻고 하산한 기분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공복이 찾아온다. 나의 배꼽시계는 꽤나 정교한 편이다. 깊은 잠에 빠져들다가도 오전 8시 40분쯤 되면 눈을 뜨곤 했다. 오늘은 라면을 끓였다. 집에는 나와 어린 동생만 있다. 어린 동생은 코를 고며 잘도 잔다.

마땅히 먹을 반찬도 없고... 그래서 라면을 끓였다. 적당히 꼬들꼬들하게 익힌 면발과 총총 썰어 넣은 대파, 반쯤 풀린 계란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호호 불어서 라면을 먹고  기운이 돌았다. 다음 일정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늘어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옷을 입고 커피나 마시러 나갈까?

아니면 아이패드로 드라마나 볼까? 모두 행복한 상상이지만 우선을 정하고 순차적으로 해나가야지 된다. 왜냐하면 휴일이니까 휴일엔 이 두서없는 행복의 순서를 정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그럴 땐 가장 완벽한 계획이 있다.

바로 그대로 드러눕는 것.  끄어-억! 설거지는 좀 있다가 해야지

창밖을 내다보니 소나기는 점점 거세진다.



‘소아아-!‘

빗소리에 점점 몸은 나른해지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갑자기 조급해졌다. 이 행복을 잃기 싫어서 그런가 보다.

어렸을 땐 소나기가 싫었다. 받아쓰기 시험지 위에 짝대기 투성이인 성적표를 보면서 아이들이 내 시험지에는 소나기가 내린다고 놀리기도 했고 무방비상태로 나갔다가 급작스러운 비 소식에 온몸이 비에 다 젖은 적도 있다. 근데 지금은 소나기가 나쁘지만은 않다. 아니, 좋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이렇게 새벽에 마주하는 소나기는 나랑 비슷해, 남몰래 울고 있는 여름에 동질감을 느낀다.

소나기 내리는 소리를 잘 들어보면 슬픔이 서려있다. 나는 소나기가 몰고 온 슬픔에 아무런 방편 없이 속절없는 무력감을 선사받은 적이 많다. 모두 그런 적이 있으려나?

물론 내가 지금 글쓰기를 미루고 있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라고도할 수 있다.


살다 보면 나의 공감 감각이 꽤나 예민하게 깨어있는 날이 있는데 어느 날은 꼭 마치 나 같은 날이 한 번쯤은 찾아온다.

서늘한 여름 소나기, 화창한 겨울, 낙엽이 지는 가을, 개화가 시작되는 봄 1년 365일 사계절 중에 어느 한날은 꼭 나 자신과 마주하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노을 지는 하늘에, 선선한 아침 공기에, 시끌벅적한 점심시간에, 한가로운 오후에, 홀가분한 저녁에. 내가 보고 있는 공간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기분. 이상하다 나는 하늘에 대고 내 기분을 말한 적 없는데 어느 날은 내가 꼭 마치 다 들킨기분이다. 그럴 수밖에 없으려나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가 자연에서 왔으니까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순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닮은 게 아니라 우리가 자연을 쏙 빼닮아 생겨먹은 걸까?

근데 참 닮았다고 하기엔 인간과 상반되는 성질이 있다. 바로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냐 아니냐에 갈린다. 자연은 목적의식 같은 거 없다. 하나 사람들은 여기에 목숨 건다. 뭔가 해야지, 뭐가 돼야지 나도 과거에는 그랬어서 정말 많이 아팠는데,  이 세상에 부자도 대통령도 연예인도 모두 힘들다고 한다면 도대체 누가 혜택을 누리는 걸까?



자연은 우리에게 공부해라 대학가라 취업해라 돈 벌어라 결혼해라 부자 돼라 실력을 키워라라는 명령어를 우리에게 남긴 적이 없다. 자연은 목적 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 질 녘 노을과 바다, 파스텔톤 하늘과 둥근달과 같은 자연적 현상에 사람들은 많이들 동요한다. 가장 순수한 자연의 마음을 보면 떼 묻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도 순수했었던 때를 추억한다. 새벽 소나기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그 마음의 시작점은 어디인 걸까 왜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났으면서 자연을 위반하고 만리장성과 피라미드, 모아이 석상 등  이런 인위적인 구조물을 만들게 했을까 그것을 만들기 위해 쓰인 힘, 그 노동력은 설득된 힘이었던가?

몇천 년 전 인류의 발자취를 보고 인간들은 참 많은 추측을 한다. 그러나 자연은 몇억 년 전에 태어났다. 인류가 가진 목적이란 것이 참으로 하찮아 보인다.                                                     

조화와 균형을 못 잡으면 정신이 약해져 마음의 병을 얻는다는데 우리는 인위적인 목적으로 인해 대부분 균형을 잃고 위태롭게 살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만리장성을 쌓고 있고 피라미드를 만들고 있고, 모아이 석상을 옮기고 있다.


우리의 정신은 아니지만, 우리의 육체는 자연을 닮았다. 아니 자연 그 자체다. 원자로 이루어진 우리의 몸은 나이가 들면서 차근차근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으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던 원자는 뿔뿔이 흩어져 횡단보도 가로등 아래, 산등성이길 암벽 아래 시원하게 내려가는 계곡 물줄기를 타고 여기저기 흘러간다. 그러니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며 무력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죽은 후에도 우리의 원자들은 흩어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할 일을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삶 속에 있는 우리는 소리를 낼 줄 안다. 목소리는 목청을 떨게 하여 진동이 되고 진동은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리고 소리가 공간과 만나면 파동이 된다. 즉, 이 세상은 파동이고 파동은 음악이다. 매미는 삶의 대부분을 땅 밑에서 번데기로 있다가 여름 한 철 노래를 부르다 속이 텅 비어진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

하루살이의 하루는 인간으로 치면 평생을 의미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시간으로 생명을 볼 수 있다. 공간은 우리의 무대고 시간은 우리를 빛나게 해줄 음악이다. 우주적 관점으로 우리를 보면 우린 하루살이보다 못한 존재다. 그러니 의미없는 행진은 멈추고 춤을 춰야 한다. 옆에 경쟁자와 서로 비교하며 경쟁하지말고 손을 맡잡고 춤을 춰야한다.우리는 우리 몸속에서 가장 정교하고 예민한 감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

우리는 시각으로 타인에게서  서로라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타인과 서로가 되어 마주하고 있으면 그 사람의 존재로 나를 느낄 수 있다.

그 사람으로 기쁨과 슬픔, 행복과 아픔마저도 느낄 수 있다. 나는 타인을 볼 당시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지 않는 편이다 생각은 인위적 목표의식에 너무 많이 잠식돼서 그 사람 그 존재를 온전히 담아내기 힘들다. 그 사람의 의식과 호흡을 느끼고 교감한다. 그래야 내가 아프지 않고 그래야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도 있다. 온전하다는 말이 엄청난 교만이겠지만 생각으로 이해하는 방법보다는 비교적 훨씬 온전하다고 할 수 있다.



키보드를 두들기다 보니 벌써 시간은 낮 12시를 향해간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안절부절이던 내가 참 차분해졌다. 나는 목적을 버림으로 행복해졌다. 목적을 버리라고 해서 아예 두 손 두 발 다 놓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잘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타인의 삶을 평가의 잣대로 들이곤 한다. 그런 행동은 피하자는 의미다. 남을 보지말고 나를 보자, 피라미드를 쌓지말고 나의 행복을 쌓자.

조급하지 말고 여유를 갖기 위해선 생각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마음이 아프다면 생각을 내려놓고 호흡으로 의식을 들여다보는 길을 추천한다.



새벽부터 내린 소나기가 이제 슬슬 부슬비가 되어간다. 이제 나도 잠시 낮잠에 들어야겠다. 잠시 자고 일어나면 분명 날이 화창하게 개어있을 것이다.

근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펼쳐놓은 걸까 휴일인 오늘 뭐할지 생각하고 있었구나... 모르겠다. 초저녁에 일어나 흙냄새를 맡으며 커피나 마시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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