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아홉수 백수의 6만 원으로 3박 4일 제주도 일주 시작
회사를 그만두고 멍하니 시간을 보낼 때 친구 태우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제주도 여행 안 갈래?”
제주도…? 여행…? 덜컥 겁부터 났다.
회사를 그만둬서 당장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제주도'와 '여행'이라는 두 단어가
천적을 만난 소라게처럼 나를 위축시켰다. 나는 여행을 다녀본 적 이 없다.
20대를 보내며 여행 한번 못 가본 인생을 살아왔다. 여행을 못 간 이유는 단순하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유복하지 못한 집안 환경 덕에 나는 여행이랑은 담을 쌓고 살았다. 무용수시절 공연 연습을 할 때면 낮에는 강사 일과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밤과 새벽에 연습실에서 살았다.
10년을 그렇게 개미처럼 살다 보니 나의 인생은 여행이라는 단어와 멀어지는 것이 익숙했고 오히려 돈과 시간을 들여 떠나야 하는 여행이란 게 다른 먼 나라 국가의 풍습 같이 느껴졌다 뭐랄까, 좀 오버에서 말하면 매일 정오에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이슬람의 문화처럼 내게는 멀게만 느껴졌다. 스케줄이 없으면 그냥 집에서 쉬는 게 최고라고 여겨왔다. 내게 익숙한 생활방식과 현실이라는 환경에 맞게 나의 하루하루는 나름대로 디자인이 되어있고 그날그날의 시간들은 모두 필요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기상청 일기예보의 오보처럼 늘 나에게도 예측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앞으로 몇 년간은 다닐 회사에서 '돌발성 난청'으로 더 이상 근무가 어려워, 회사를 그만둬야 할 상황에 놓였다.
예측 못했던 일이라 모아 둔 돈도 없고, 막막하다면 막막한 현실이지만 몸이 아픈 건 나의 의지가 아니니까 이시기가 필연적일거라 생각했다. 우연으로 치부하면 단순히 재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 좋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쩌겠나 벌어진 일 앞에서 저항해봤자,
인간은 늘 운명 앞에선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무력함을 허공에 휘둘러봤자, 운명은 변하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사실을 태우에게 말했다.
사실 회사에 들어간 사실도 태우와 가족들 외에는 거의 안 알렸다.
태우는 나와 고등학생 시절부터 절친이고 우리의 인연은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계속됐다.
지난 10년 넘는 세월 동안 태우는 나에게 여행 제안을 수도 없이했다. 난 번번이 거절했고 이번 역시
"장염 때문에" "집안일 도와야 해" "가족행사...""종백숙부님 생신이셔서"
그저 무의식에 영역에 장전된 수만 가지의 핑계 멘트 중 상황과 노출의 빈번함등을 적절히 고려하여 핑계를 대려던 찰나였다.
"티켓 값해봐야 왕복으로 4만 원밖에 안 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원성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그 녀석의 입에서 터져 나온 10년의 원성이었다. 이렇게까지 서운해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더욱 나의 귀를 의심하게 한 것은 바로
"왕복으로 4만 원"이라는 문장이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타면서 5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내고 탄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 믿음이 안 갔지만 친구가 제주항공 어플에 명시된 금액을 보여줬고 나는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었다.
이 금액이라면 나 같은 가난뱅이라도 한번 다녀올만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제주도 티켓값은 해결이 됐지만 비싼 숙박요금과 가서 먹는 것과 이동할 때 드는 교통비용 지출도 감당이 안될 거 같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봤고 아이디어 하나가 번뜩이며 떠올라,
태우에게 제안했다.
“그래, 가자 대신! 조건이 있어, 우리 자전거 타고 제주도 일주하자”
“뭐…?”
내 말을 들은 태우가 몹시 당황했다는 사실을 동공을 보고는 짐작했다. 사람의 눈길이 예측 못했던 상황을 마주 할 땐 저렇게 흔들리는구나. 이 녀석은 여느 커플들처럼 감성카페 가고 맛있는 밥집 가고 차 렌트해서 제주도에서 바람이나 쐬러 다녀오려는 생각으로 나에게 가자 한 거 같은데 내 주머니 사정으론 어림도 없었다. 나는 태우가 내 제안을 거절하면 온갖 핑계를 다대고 가지 말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태우의 반응은 더욱 놀라웠다.
“야 말이 쉽지 그거… 재미있겠는데?”
의외에 반응이었다. 그러자 태우는 덩달아 신나 하면서
“야 그럼 우리 잠도 텐트 치고 자자!”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좋은 기색을 적나라게 보이기는 싫어서 얼굴로는 인상을 썼지만 숙박비 절감을 하면서 떠나는 여행은 확실히 나의 마음 속 부담을 덜었고, 자유도가 어느정도 보장이 되는 것이 틀림없었다.
여기서 기세를 몰아 쓸 돈도 제한을 두자고 했다.
내가 둔 제한은 3박 4일 일정을 잡고 인당 6만 원으로 여행경비를 모두 해결하고 그리고 제주도 한 바퀴 완주를 목표로 잡는 거였다.
그리고 이동수단은 가장 돈도 안 들고 재미있을 거 같은 자전거를 선택했다. 비록 나와 태우는 자전거가 없어서 렌트를 해야 하지만 자동차 렌트보다는 훨씬 저렴했다.
4일 랜트 비용 총 5만 원을 지출했다.
그래서 비행기 티켓값 숙박비 식비 자전거 대여료, 모든 여행경비 총 인당 넉넉하게 16만 원으로 둘이 합치면 32만 원이다. 거기다 사진으로만 보던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 바퀴 싹 둘러보고 온다는 생각에 슬슬 심장이 너무 두근거렸고, 기대감 또한 커져만 갔다.
습관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올라오긴 했지만, 기쁜 순간을 기쁘게만 받아들이고 싶어서 불안의 불씨를 기쁨과 환희의 에너지로 잠재웠다.
제주도 여행을 내 돈을 내고 간다는 선택이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것도 퇴사를 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매 순간을 다 담는 건 힘들겠지만, 담고 싶은 순간은 꼭 담아보자고 이야기했다.
가장 싼 티켓으로 약 일주일 뒤에 우린 제주도로 간다. 나는 태우에게 비행기 티켓값과 자전거 렌트비를 보냈고 우린 바로 텐트와 제주도 날씨를 알아봤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한여름에 구름 한 점 없는 땡볕이 지속되던 여름, 우리가 비행기를 타기로 한 날 비구름이 한가득이었다. 울상 짓는 기상예보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못 갈 판이었는데
그래도 우린 제주도 행 비행기로 몸을 실었다.
“어차피 섬 날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어, 일기예보는 정확하지 않아 방수되는 텐트 사서 일단 가자, 가서 생각하자”
이미 대책이란 게 없었고, 비가 오든 안오든 별생각 없었다. 태우도 나도 꿈을 향해 발버둥 쳤던 지난 시간들과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점점 낮아지는 스스로에게 지쳤고, 지쳐버린 시간은 보상이라는 오랜 염원이 담긴 소망을 가슴속에 너무도 긴 시간동안 품게 하였다. 그래서 이번 제주도 배낭여행은 우리에게 주는 보상이자, 서른이 되기 전에 또 하나의 과제이며, 삶을 살며 연쇄적으로 작용한 아픔들로부터 희망을 소생시키기위한 심폐소생술같은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귀한 시간 내셔서 저의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정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누군가 저의 이야기를 읽어주고 귀를 기울여준다는 사실은 제겐 정말 큰 행복이고 과분한 사랑입니다.
저는 정말 자존감이 땅바닥을 내리칠 때 친구의 제안으로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저의 솔직한 심정과 당시의 상황을 여러분들께 영상과 글로 전해드리려 합니다.
영상은 다큐멘터리 장르로 풀어서 유튜브 플랫폼에 업로드를 하였습니다. 추후 영상 업로드와 브런치에 글을 계속 작업하여 올릴 예정입니다. 미련 없이 죽기 살기로 달렸던 2021년 9월 저희의 뜨거웠던 여름을 영상과 글로 여러분들께 보여드리려 합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2년에는 저희 모두 행복하게 보내요:)
제주도 표류기 영상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