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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사진방 Aug 29. 2023

거울과 창

사진가의 시선 #1

  1978년 7월 28일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거울과 창’이라는 대규모의 사진전시회가 열렸다. 기획자 존 자코우스키는 당대 사진을 ‘거울과 창’ 즉 주관과 객관으로 구분한 것이다. 그도 이런 이분법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위험을 감수하기로 한다. 안갯속을 걷기보다는 욕을 먹을지언정 명확함을 선언한 것이다. 회색 벽면의 거울 섹션에는 사진을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보는 작가들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마이너 화이트, 제리 율즈만, 듀안 마이클, 랄프 깁슨 등의 조형적이고 시적인 사진이 소개되었다. 회색 벽면의 창 섹션에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대한 탐구를 지향하는 작가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다이안 아버스, 게리 위노그랜드, 리 프리들랜더 등의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사진들이 소개되었다.     


  눈이 바깥으로 향해 있듯이 카메라도 항상 세상을 향해 있다. 마이너 화이트가 어떤 아름다움을 보았을지라도 나는 하나의 피망을 찍은 사진을 본다. 아름다움이 원래 거기 있었다면 나는 창을 통해 사진을 또는 피망을 보는 것이고 아름다움을 내가 부여한 것이라면 나는 거울을 보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창을 통해 바라보지만 결국 거울(사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거울을 보든지 창을 보든지 거기에는 항상 보는 자가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동해의 바닷가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자. 나는 눈의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저기 나의 밖에 바다가 있는 것이지. 하지만 생각을 멈추고 계속 바라본다. 내가 본다는 사실을 잃을 정도로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 이제는 ‘거울’ 바다가 되어보자. 나의 몸은 저 끝없는 수평선이고 저 출렁임이고 짙은 파란색이다. 텅 빈 것과 꽉 들어찬 것이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결국 거울과 창은 보는 자가 사라지면서 만난다.     


   창밖에 아름다운 꽃을 볼 때 꽃의 아름다움이 일어난다. 핑크빛 여린 질감과 꽃가루에 잔뜩 둘러싸인 수술의 떨림이 내게서 일어난다. 이때 꽃은 내 아름다움의 거울이 된다. 산책길 수풀 속의 뱀을 보고 징그러움이 일어난다. 미끈한 몸체가 길게 내 목덜미를 훑어내리듯 징그러움이 일어난다. 이때 뱀은 내 징그러움의 거울이 된다.     

 

  지하철에서 한 청년이 난동을 부린다. 무언가에 몹시 화가 난 듯 승객들에게 욕설을 퍼부어 댄다. 그의 옆에 앉아있던 노인은 그의 손을 지긋이 잡는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청년을 바라본다. 청년은 이내 노인의 손을 꼭 잡고 흐느낀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는 자로 자각할 때 누군가의 거울이 될 수도 있다. 노인의 창은 맑고 투명하여 청년의 두려움을 보았다. 노인의 연민과 사랑은 청년에게 거울이 되었던 것이다.  

    

 사진이 직업인지라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사람과 마주 앉는다. 그들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자신을 본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 그들을 마주 본다. 나의 역할은 뷰파인더의 창을 통해 그들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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