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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라 Jan 10. 2023

자취 한 달 차,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먼지다듬이 덕에 깨달은 것들

자취를 시작한 지 정확히 한 달이 됐다. 원래는 벌써 한 달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브런치에 나름의 소감을 써보려고 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내 새끼손톱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먼지다듬이 한 마리 때문에 거의 30분 동안 꺼이꺼이 울었다. 먼지다듬이가 두려워서는 아니다. 나는 원래도 벌레를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 데다가 공격력이 제로인 먼지다듬이, 다른 말로 '책벌레'는 어릴 적부터 책장 사이에서 간간히 봐왔기에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취를 시작한 이래로 한 달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먼지다듬이의 출현으로 인해 폭발해버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입주 초반에는 옆집 때문에 스트레스가 컸다. 혼자 사는 줄 알았던 옆집에서 갑자기 웬 애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밤 10시부터 새벽 2~3시까지, 끊임없이 칭얼대고 울어대는 애기 소리는 아무리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해봐도 내겐 그저 벽간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그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날에는 내 애도 아닌데 내가 왜 참아야 하나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소음보다 더 큰 문제였던 건 옆집 사람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자기네가 뭘 그렇게 시끄럽게 했냐며 적반하장으로 집주인에게 쌍욕을 하고, 복도에 나와서 들으라는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집주인에게 말한 게 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현관문에 귀를 대고 숨은 채로 벌벌 떨어야만 했다.


다행히 옆집은 이사를 가겠다고 했고, 집주인도 퇴실 조치를 하겠다고 한 상태다. 부동산에서도 적극적으로 집을 알아봐주고 있다고 한다. 그렇긴 한데...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서 지금은 반포기 상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집주인과 부동산이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꼼꼼히 신경 써주고,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본인들의 손해도 감수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내보니 알게 된 건데 애기가 오지 않는 날에는 건물 전체가 조용한 편이다. 사실 애기도 금쪽이에 나올 만큼의 진상(?)은 아니라서, 마음이 평온한 날에는 '내가 너무 야박하게 굴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제는 그냥 애기가 온 것 같은 날이면 에어팟을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을 달래볼까 싶기도 하다.


두 번째 문제는 나방파리였다. 2주 전쯤부터 어디선가 자꾸 비실비실하거나 이미 죽은 상태인 나방파리가 나타난 것이었다. 처음에는 창문의 물구멍을 막지 않아서 그런 줄 알고 다이소에서 바로 물구멍 막이를 사다가 설치했다. 그런데도 계속 여러 마리가 나타나길래 의아해하면서도 별 일 아니겠거니 하고 방심하던 차에... 살아있는 지옥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쟁여둔 갑 티슈를 꺼내려고 보일러실 문을 여니 그 안에 수십 마리의 나방파리가 벽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몇몇은 이때다 싶어 내 방 안으로 들어와버리는 바람에 나는 말 그대로 패닉 상태가 되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보일러실 내부를 살펴 보니 보일러 배관이 연결된 하수구가 아무런 트랩도 없이 뻥 뚫려 있어서 거기로 날벌레들이 다 들어온 것 같았다. 일단 급한 대로 나방파리를 닥치는 대로 죽인 다음, 걸레로 하수구를 틀어막고 테이프로 밀봉하고, 보일러실 철문 테두리에 약을 치고 문 자체를 테이프로 틀어막아버렸다. 오늘 집주인과 함께 다시 확인해보니 나방파리의 개체 수가 늘진 않아서 우선 하수구를 확실히 틀어막는 식으로 해결을 했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오나 싶었는데... 저녁을 먹고 <나 혼자 산다>를 보던 중 벽에 기어가는 먼지다듬이를 발견해버린 것이었다. 스카치테이프로 간단히 죽이고 '먼지다듬이'에 관해 검색을 해보니, 먼지다듬이는 보통 신축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번식력이 뛰어나서 한 마리가 발견되면 우후죽순 생겨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게다가 세스코도 먼지다듬이는 해결 못 한다고 했다. 그러니 집에 있는 규조토와 라탄 제품, 목재 가구를 전부 버리라고, 되도록이면 종이책도 다 갖다 버리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박멸하기 어려운 벌레이길래 '먼지다듬이 피해자 카페' 회원 수가 몇만 명이었다. 나는 나보다 먼저 먼지다듬이에 시달려본 사람들의 말대로 곧바로 규조토를 내다버리고, 내 눈에 현미경이라도 장착되어 있는 것처럼 방에 있는 목재 가구들과 라탄 물건 사이사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먼지다듬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돌돌이로 방바닥에 깔린 카펫과 라탄 물건들을 수차례 벅벅 문지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지?'


그때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오른손에 돌돌이를 쥔 채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사람처럼 꺼이꺼이 울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벌레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기분을 망칠 수가 있다고? 나는 새해부터 나를 아예 붕괴시키기로 작정이라도 한 셈인가?




자취한 지 오래된 학교 선후배들과 친언니에게 위로와 조언을 듣고 나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보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열을 낸 건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앞으로 혼자서 '잘' 지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나를 책임져줄 사람이 오직 나뿐이라는 생각에 내가 나 자신에게 너무 과하게 의지했던 것이다. 그런 압박감 때문에 작은 문제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하게 굴면서 스스로 기분을 망쳐버린 것이다.


그렇게 깊이 가라앉는 동안 내가 잠시 잊고 있던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항상 해결책은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회사에서 크로스교를 보고 있는 원고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선배, 겨울이 오면 동사(凍死)를 생각할 게 아니라 땔감을 준비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그 말처럼 걱정을 할 시간에, 걱정에 쏟을 에너지로 차라리 만반의 대비를 하는 편이 낫다. 만약 옆집이 또 애기를 데려와서 시끄럽게 굴면 이어폰을 끼면 되고, 날벌레가 기승을 부리면 방역 업체를 불러 날벌레를 죽인 뒤 하수구 트랩을 설치하면 된다. 먼지다듬이가 나오지 않도록 약을 치고, 자주 환기를 해서 습도를 조절하고,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면 된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일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최후에는 자취방을 버리고 다시 본가로 들어가는 수도 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도대체 뭐가 있겠는가? 별 거 아닌 일 때문에 끙끙 앓지 말고 차라리 기분이라도 좋아지도록 달달한 사탕이나 먹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자꾸만 내가 불행한 것 같을 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때. 그럴 때는 나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으로부터 시선을 돌려서 내가 가진 것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내겐 비록 때때로 시끄럽게 굴어놓고 적반하장인 이웃이 있지만, 전적으로 내 편이 되어주려 하는 친절한 부동산 직원과 협조적이고 상식적인 집주인도 만나지 않았는가. 그간 건너 건너 들어온 별별 희한한 집주인들 썰을 떠올려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이 넓고도 좁아터진 서울에서 고작 '상식적인' 집주인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하늘의 별따기 같은 일인지를.


무엇보다 지금 내가 명심해야 할 것은, 나는 혼자 있어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꼭 기억하고 되새겼으면 좋겠다. 아까 내가 엉엉 울 때 한 선배는 규조토 갖다 버리고 발매트 하나 새로 사라며 쿠팡 3만 원 쿠폰을 선물로 주었고, 한 선배는 다들 자신만의 강박이 있는 거라며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계속해서 일러주었다. 한 후배는 울지 말고 웃으라며 요즘 자기한테 제일 웃긴 영상들의 링크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걸 극복하고 스스로 자립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이야. 몸만 나와서 살고, 혼자 돈 벌어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족, 친구들이 내 곁에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말자.




자취한 지 이제 고작 한 달밖에 안 됐으면서 새로이 깨달은 것들이 어쩜 이리 많은지, 앞으로 닥칠 일들은 다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도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더 재밌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야만 이 밤을 좀 더 편안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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