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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라 Dec 09. 2023

독립 1주년을 맞이하여

독립 후에 달라진 10가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말도 지긋지긋하다. 그만큼 날이 갈수록 무서운 속도로 해가 바뀐다. 벌써 자취를 시작한 지 1년이나 되었다니. 본가를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는 시간이 너무 안 가서 골치가 아팠는데, 벌써 2023년 12월 9일이다.


독립으로 인해 내 삶은 크게 달라졌다. 인생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이다. 오늘은 그중 몇몇 개만 골라 간략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독립 후에 달라진 10가지



01 출퇴근 스트레스가 줄어서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인천에서 살던 나는 통근 시간이 왕복 3시간 이하였던 적이 없다. 2년 동안은 왕복 4시간, 1년 동안은 왕복 3시간 30분, 이후 2년 동안은 왕복 3시간 40분 거리에 있는 직장에 다녔다. 돌이켜보면 그 긴 시간 동안 그렇게 번거로운 출퇴근을 해낸 나 자신의 체력과 인내력이 놀랍다. 언젠가 한 번은 퇴근길이 너무 고되어서, '이렇게 힘들게 출퇴근을 하는데도 겨우 이 정도의 승질머리라면, 사실 나는 누구보다 착한 인간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나 힘들었던 출퇴근길 스트레스가 확연히 줄어드니 삶의 질이 대폭 개선되었다. 물론 지금도 한 번은 환승을 해야 하지만, 인천에서 '버스1-지하철1-지하철2-지하철3-버스2' 루트를 감당할 때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어찌 보면 월세와 출퇴근 스트레스를 맞바꾼 셈인데, 나에게 무조건 득이 되는 거래였다. 큰 스트레스를 덜어내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02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긍정적이었던 점은 집안 정리와 화장실 청소가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결벽증과 강박증이 있다는 건 알았어도 집안일이 스트레스 해소법일 줄은 몰랐다. 특히 화장실 청소를 다 하고 난 다음,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할 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자기파괴적이지 않고 되려 나만의 공간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만듦으로써 기분까지 나아진다니, 일석이조다.


03 감정에 더욱 솔직해질 수 있게 되었다.

원래도 남의 앞에서 눈물을 잘 보이는 편이고 남들보다 많이 우는 나지만,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는 툭하면 운다. 안 좋은 일이 그만큼 많다기보다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터뜨린다는 의미다. 덕분에 슬픔이나 분노의 잔여물이 마음속에 쌓이지 않아 좋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작품 속에서 남이 울면 망설이지 않고 따라 운다. 이것 역시 오래된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인데 우울을 덜어내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집안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실컷 울 수 있어 후련하다.


04 조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식물을 키우는 데 소질이 없다. 그렇게 키우기 쉽다는 다육이와 선인장도 몇 차례나 죽인 전적이 있다. 어째서일까? 하라는 대로만 했을 뿐인데... 아무래도 나는 나 외에 또 다른 생명을 책임질 자질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래서 자취를 시작할 때 플랜테리어에 살~짝 관심을 가지려다 금세 포기했다. 더군다나 식물을 들여놓으면 자잘한 날벌레가 생긴다는 말도 있고, 몇 년 전 우리 언니가 분갈이를 하다 흙에서 지렁이가 튀어나와 비명을 꽥 질렀던 경험도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처럼 좁은 원룸에서 나 혼자 식물을 잘 키워내기란 무리인 듯하다.

그래서 조화를 들여놓았다. 노란색 튤립 3송이와 올리브 나무 화분. 옛날에는 단순히 '가짜'라는 이유만으로 조화를 시시하게 여겼는데, 이제는 나 같은 똥손에게는 그것만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인테리어를 위해 여러 생명을 죽이느니 차라리 살아 있던 적 없는 조화와 함께하겠다.


05 돈 나가는 게 우스워졌다.

자취를 하면 숨 쉬듯 돈이 빠져나간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전, 돈 나가는 게 진짜 우스운 일이라는 걸 체감한 사건이 있었다. 쓰레기 무단 투기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무려 16만 원이나 냈다. 정말로 무단 투기를 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잘못한 일이라면, 쓰레기 버리는 날 저녁이 아닌 아침 출근길에, 입구가 묶이지 않는 비닐봉지 안에다가 치킨 박스를 넣어 버린 것. 그뿐이다. 함께 내다 버린 일반쓰레기 봉투 안에 있던 치킨 뼈를 보고, '같은 사람이 버린 쓰레기일 것'이라 추측한 구청 사람이 쓰레기 봉투 안에 있던 택배 송장에 적혀 있는 우리 집 주소로 과태료 고지서를 보낸 것이다. 고지서와 동봉된 사진에는 내가 종량제 봉투에 꼭꼭 담아 버린 온갖 쓰레기가 처참한 꼴로 풀어헤쳐져 있었다. 왠지 모를 수치심이 느껴졌다.

쓰레기를 아침에 내다놓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지만, 솔직히 내가 대단한 잘못을 했다기보다는 재수가 없었던 일이라 생각한다. 구청에 전화해서 내가 버린 거 아니라고 우길까 생각해봤지만, 그게 더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서 그냥 돈을 내버렸다. 과태료를 고지하는 방식이 이렇게나 아날로그적이고 허술하다니. 어쩌면 억울하게 고지서를 받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쓰레기는 꼭 출근길이 아닌 퇴근길에 버리고, 택배 송장은 갈기갈기 찢어버려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06 ‘자취’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와 주제가 너무 한정되어 있어서 스스로 고립되어 간다고 느낄 때쯤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의 세계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넓고 깊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과 '자취'를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3박 4일도 모자랄 정도다. 자취 관련 이야기는 언제 해도 늘 재미있다. 자취의 세계에 발들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된 루틴으로 흘러가고, 함께하는 사람들도 큰 변화가 없다면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릴 일은 많지 않다. 늘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만 주고받다 보면 생각의 틀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계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을 스스로 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러니 계속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경험을 확장해야만 '우물 안 개구리'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내년에는 운전면허를 따서 '운전'의 세계의 문을 열어볼 예정이다.


07 매 끼니를 해결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님을 알았다.

요리를 싫어해서인지 몰라도 매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게 이렇게나 귀찮은 일인 줄 몰랐다. 차라리 안 먹고도 배가 안 고프면 좋으련만, 나는 위장이 하도 튼튼해서 금세 배가 고파진다. 메뉴를 선정하는 것도 귀찮고,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귀찮고, 요리하는 건 더 귀찮고, 나가서 사 먹는 건 더더 귀찮다. 포만감도 느끼고 영양소도 충분히 들어 있는 알약을 빠른 시일 내에 누가 좀 개발해줬으면 좋겠다.


08 원하는 집의 조건이 생겼다.

처음 집을 알아볼 때는 내가 원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혼자 집을 보러 다녔다. 흔히들 채광이나 수압, 엘리베이터 유무, 창문 개수, 주변 인프라 등을 살펴야 한다고들 했지만 그중 어떤 게 나에게 있어 우선순위인지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다. 바로, 채광이다.

지금 내 방은 낮과 밤의 차이가 거의 없다. 부동산에서는 내 방이 동향이라고 했지만 지도로 다시 확인해보니 북향이었다. 심지어 창문이 옆 빌라 건물로 가로막혀 있어서 빛이 거의 안 든다. 직접 겪어 보니 자연광은 사람의 기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아침잠을 깨는 것도 훨씬 힘들고. 채광이 없는 집은 우울을 보태는 데 한몫한다. 그러니 다음 집은 무조건 남향으로, 그게 안 되면 아침에 해가 잘 드는 동향으로라도 갈 예정이다. 빛이 쏟아지는 집에서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보고 싶다.


09 집은 습기에 취약하다는 걸 알았다.

자취하며 산 아이템 중 가장 활용도가 높은 것 1위는 제습기다. 자취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반드시 사야 하는 물건으로 꼽는 것도 제습기다. 원룸은 공간이 좁아 습도가 금방 높아지는 데다 제습기가 없으면 빨래도 잘 마르지 않는다.

자취 초반에 먼지다듬이 때문에 골치 아팠던 적이 있다. 그때 온갖 집 벌레에 관해 찾아보면서 집 안의 습도가 60%를 넘어가면 벌레들이 모여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 이후로 항상 제습기를 풀가동하며 습도를 40~50%로 맞춰 놓는다. 물먹는 하마를 한 박스 구매해서 집안 곳곳에 놓아두었는데, 반년 정도가 지나니 전부 다 물이 꽉 차 있었다. 습도가 높으면 집안 구석구석에 곰팡이가 생기기도 쉬워서 항상 신경 쓰고 있다.


10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집안일을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뭐든 다 내가 해야만 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먼지가 굴러다니고, 쓰레기통이 꽉 차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 썩고, 변기에 곰팡이가 끼고, 빨래통이 넘친다. 집안일은 하면 티가 안 나는데, 안 하면 티가 난다는 말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러니 혼자 지내는 나는 엉덩이가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쳇바퀴 같은 삶만 지속될 뿐. 그러니 자신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어떤 계획을 실행할 것인지, 나에게 있어 무엇이 최선의 선택일지. 그 누구도 집안일을 대신해주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직 자취 1년밖에 안 됐는데 무수히 많은 사건을 겪었다.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어내는 동안 1년 전의 나에 비해 좀 더 강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무너지기보다는 기꺼이 부딪힐 줄 아는, 그 과정에서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튼, 타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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