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미련 없이 주변 환경 정리하기
그 애와 헤어진 후, 친한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너는 남자친구랑 헤어지면 사진이랑 영상 바로 다 삭제해? 나 일단 다 삭제하긴 했는데 아직 '최근 삭제된 항목' 앨범을 비우지는 못했거든."
"나는 다 삭제해."
"곧바로?"
"응. 보면 나만 마음 약해지니까. 지우는 것도 물론 힘들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보고 싶을 때 보면 더 힘들어지고, 그럼 지금까지 노력한 거 도루묵 되는 거야."
"그럼 나도 그냥 지금 다 삭제할까? 네 말대로 사진 보다 보면 마음 약해지는 것 같아. 막 '이때는 좋았는데.' 이런 생각 들고."
"왜 그런지 알아? 싸울 때는 사진을 안 찍잖아. 사진은 원래 좋은 순간밖에 남기지 않아."
친구의 말을 듣고 난 후에야 나는 '전체 삭제'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순식간에 수천 장의 사진과 수십 개의 영상이 끝나버린 우리의 관계처럼 그대로 증발했다.
'최근 삭제된 항목' 앨범이 깨끗하게 비워지고 '사진 또는 비디오 없음'이라는 텍스트만이 덩그러니 화면에 놓였다. 공허하거나 마음이 아플 줄 알았는데 의외로 후련했다. 구질구질하게 이어져 있던 악연의 끈을 드디어 놓았다는 생각에 홀가분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을 위한 비움이었다. 정말 큰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걸 스스로 해냈다는 데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그날부로 사진첩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메모, SNS에 업로드했던 사진들과 주고받은 댓글, 음성 녹음함, 연락처 등 그 애의 모든 흔적을 없앴다. 특히 영상이나 음성처럼 그 애가 '살아 있음'이 생생히 느껴지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헤어진 직후에는, 그래도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인데 굳이 삭제까지 해야 하나 싶고, 후회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사진과 영상을 그대로 뒀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건 결과적으로 나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 꾸역꾸역 어떻게든 마음을 정리해 나가다가도 사진을 보면 다시 이별 1일 차의 마음으로 돌아가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미련하게도 이런 악순환을 며칠 동안 반복하다가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모든 흔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친구의 말대로 우리는 늘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만 간직하려 한다. 그 누구도 억울하고, 화가 나고, 슬프고 힘든 순간들을 굳이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진 않는다. 그러니 이별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핸드폰 사진첩은 그야말로 '악마의 편집'의 장인 셈이다. 단숨에 모든 기억을 미화시켜버리는, 조작된 현장.
사진과 영상을 봐도 아무렇지 않다거나 애초에 사진첩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사진첩을 봤을 때 좋았던 기억들만 떠오르고 마음이 약해지는 이들에게는 쥐약과도 같다. 언젠가 삭제할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비워내는 게 속편하다. 일찍 삭제할수록 마음도 더 빠르게 회복된다. 분명히.
마찬가지로 받은 선물들 중에서는 실용적인 것이나 나에게 필요한 물건을 제외하고 전부 다 갖다 버리는 게 좋다. 정말로 마음 정리를 하고 싶다면, 함께한 추억이 얽혀있는 사소한 물건부터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들 하나하나까지 아까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정리해버리자.
요즘 그 애를 떠올리면 '정말 살아 있던 사람이 맞나? 내가 잠시 꿈을 꿨던 건 아닐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애의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서 그렇다.
살아 있든 아니든, 이제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