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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y 04. 2024

독립생활자의 다음 집 구하기 시리-즈 : 0탄

나는 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집청소를 하고 있는가

(2022년 시점에서 쓴 글입니다.)



     시간 참 빠르다. 어느새 이사 온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1년 9개월 정도 되었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2년만 살기로 계약하고 들어온 거라 곧 이사를 가야 한다. 2년 뒤가 오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3n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면서 커다란 포부를 안고 독립을 했다. 그런데 저 중에 이룬 게 과연 몇 개나 있을까?


      먼저 이직준비를 시도하긴 했으나 정확히 시도한 건 올해부터다. 그전부터 마음은 '이직 상태'였는데 실제로 뭘 한 건 없었다. 그리고 이사 올 때부터 이미 코로나 상태였기 때문에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도 거의 이용하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 11월쯤부터 조금씩 이용하고 있는데 이사 가기 전까지 해도 겨우 6개월이나 이용해 보겠네.


     요리는 해 먹으려고 노력은 했다. 여전히 실력은 늘지 않았지만 시도는 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시금치를 한 단 사 와서 온갖 시금치 요리를 해 먹었다. 시금치 굴소스 볶음, 시금치 프리타타, 시금치 볶음밥까지... 이렇게 했는데도 시금치가 아직도 남았다. 남은 걸로 뭐 해 먹지?


      그러다 집주인을 통해 갑자기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내일(토요일)에 집 좀 볼 수 있겠느냐고.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집이 안 나갈까 어쩔까 걱정했는데 일단 보러 온다니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집 보여주는 게, 이게 뭐라고 힘이 드는 거니. 집을 구하러 다니는 입장에선 약 5분가량 집의 구조와 형태, 채광 등을 그저 쓱 둘러보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답이 후자의 문장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니 내 살림이 괜히 부끄러워지고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내 살림(세간살이)을 보고 가는 것이다." (X) 

"곧 세입자가 될지도 모르는 그 사람(들)은 방과 거실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고 부엌은 어떻게 생겨먹었으며 채광은 어떻고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O)



     이렇게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다음 세입자에게 보여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하는 걸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곳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사 가기 전에 이사 갈 집을 보는 일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왜냐면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줘야 하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거 없다.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우리 집이 4인 가족에 살림하는 집이면 가족이 많아서 지저분해도 용인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달랑 혼자 사는 집을 지저분하게 해 놓고 사는 걸 보여주는 건 왠지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매주 토요일 주 1회 청소를 한다. 마침 토요일에 집을 보러 온다 하니 청소하는 날이라 다행이긴 한데... 청소도 청소지만 눈앞에 보이는 거슬리는 짐부터 좀 치우기로 한다. 화장실 청소와 바닥 청소를 모두 마치고 안방 화장대나 그 주변에 있는 것들을 깡그리 치워서 서랍 안에 일단 처박는다. 어젯밤 입고 벗어놓은 잠옷과 당장 쓰지 않지만 바깥에 나와 있는 물건들은 아예 옷장의 빈 서랍에 모아서 다 쑤셔 박는다. 옷장 안까진 열어보지 않겠지. 물건이 없어야 집이 깔끔해 보이니까.


     그리고 책상이 있는 작은방에 와서는 여기도 일단 지저분한 건 서랍 속으로 넣어버리고 가릴 수 있을만한 건 가린다. 서재라고 해봤자 각종 외국어 교재들과 해리포터 시리즈 책, 과거의 일기장, 만화책 이런 것들 뿐이라 왠지 내보이기도 부끄럽다.


     부엌으로 가본다. 1인 가구라 짐이 많이 없지만 가스레인지 위에 올라가 있는 냄비와 프라이팬이 거슬린다. 다 찬장 안으로 넣어버렸다. 설마 찬장을 열어보진 않겠지. 행주로 가스레인지 주변도 한번 더 닦고 다 닦고 난 행주에 뜨거운 물을 부어 행주를 소독한다.


     이렇게 대청소를 하고 나니 급 피곤해졌다. 집에 손님이 놀러 올 때만큼 청소를 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그때는 나와 관계가 있는 손님을 대접한다는 의미에서 청소를 하는 거라 기분이 좋았는데 이건 도대체 왜 알지도 못하는 미래의 세입자가 될지 말지도 모르는(심지어 내 세입자도 아니다) 사람과 부동산 중개인을 위해 왜 집을 쓸고 닦고 더러워 보일까 걱정하고 있는가. 웃긴 상황이다.


     그리고 평상시엔 집에 혼자 있으니까 후줄근한 잠옷을 입고 편하게 돌아다닌다. 그런데 외부인이 온다고 하니 마냥 편하게 있을 순 없어서 나름 맨투맨과 조거팬츠를 입어 힙한(?) 홈웨어를 완성했다. 이렇게 준비를 마쳐놓고 나서야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 토익시험이 있어서 마지막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지자 인터폰이 울린다. 경비실에서 방문객이 왔는데 문 열어줘도 되냐고 묻길래 그러라고 했다.



<독립생활자의 다음 집 구하기 시리-즈 : 1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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