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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또다시 이사

낮에는 매수자로, 저녁엔 세입자로

by 세니seny

오늘은 지난주에 갔던 동네에 나온 매물을 직접 보러 가기로 한 날이다. 지난주엔 약속 없이 동네 탐방이나 해보자 하고 간 거였기에 이런저런 설명만 듣고 왔고 미리 약속을 잡은 게 아니라 집에 들어가 볼 순 없었다.


나는 엄마랑 따로 살고 있어서 일단 엄마랑 시간을 맞춰서 만난 다음 부동산이랑 약속한 시간에 맞춰 방문했다. 지난주는 토요일 오전이었고 오늘은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동네 분위기가 좀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분명 집 보러 오기 하루 전에 연락 달라고 했는데 오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내놓은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급하게 연락해서 미안한데 오늘 2시나 6시 중에 괜찮은 시간 있냐고. 회사 다니면 집도 못 보여주겠네? 하필 오후에 지난주에 보고 온 동네 부동산에 나도 예약을 해놔서 저녁 6시로 약속을 픽스하고 나의 미래의 집이 될지도 모르는 후보지로 향했다.


시간에 맞춰 무사히 부동산에 도착했고 중개사 분을 따라 목적지로 이동했다. 여기가 대단지이기는 한데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네를 잘 아는 사람이면 지름길로 가겠지만 그걸 몰랐던 나랑 엄마는 지난주에 생고생하며(?) 이리저리 돌아 돌아 부동산이 있는 아파트 상가까지 왔었다.


매물이 두 개였는데 하나는 이사를 나가서 비어있고 하나는 세입자가 살고 있어서 전화를 미리 하고 출발했다. 이번엔 지리를 아는 분과 가니까 언덕이 그다지 심하지 않은 길로 손쉽게 갔다.


먼저 전화를 한 집부터 갔다. 내가 원하는 평수는 같은 동에 전부 몰려 있었다. 구조는 현재 살고 있는 집과 비슷했지만 미세하게 복도 등이 아주 조금 넓어 보였다. 대신 방은 좀 작아 보였다. 아니, 확실히 작았다. 그리고 욕실엔 욕조가 있었고 거실 겸 방으로 쓰는 공간엔 중문이 있었는데 모든 집에 다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거실 바깥으로 베란다가 있는데…


이 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점은 바로 베란다에서 남산타워가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유명한(?) 남산타워 성애자다. 여력만 된다면 당장 이 집을 사고 싶었다. 남산타워뷰에 반해서 집 사는 인간? 나야 나. 아무튼 뷰가 뻥 뚫려서 좋았다.


그리고 다음 집. 여기는 이사를 나가서 집이 비어 있었는데 아까 본 집과 구조는 똑같았지만 전에 사택으로 썼다고 하더니 온갖 물건들을 다 놓고 갔다. 냉장고에 드레스룸 거치물에 세탁기까지. 보통 오피스텔이라면 옵션으로 제공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아파트는 보통 자기 물건을 가지고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지. 그리고 아무래도 사택이라 자기 집 아니라고 험하게 썼는지 아까 집보다 묘하게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여기는 남산뷰는 아니고 아파트뷰다. 대신 복도 앞에서 인왕산과 북악산이 보였다.


그렇게 두 집을 보고 이따 저녁 6시에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보러 온다고 했기 때문에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을 깨끗하게 쓰는 편이지만 오늘은 청소도 안 했고 보일러도 떼놔야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게 와서 지저분한 자잘한 짐도 치우고 한쪽으로 정리도 해놓고 바닥도 한번 닦고 컴퓨터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벨을 누른다. 아무리 그래도 부동산에서 출발할 때 전화 한 통은 주셔야 되는 거 아녀? 급습당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커플과 약간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오셨길래 시어머니나 장모님을 모시고 왔나? 했는데 이들은 따로 온 사람들 즉 두 팀이라고 한다. 신혼부부 한 쌍과 혼자 사시는 할머니 이렇게 두 팀이 온 거다. 하긴, 나도 이 집 처음 보러 왔을 때 신혼부부랑 집을 같이 보긴 했었다.


오래된 아파트지만 기본적인 도배 벽지는 새로 했기 때문에 깔끔하고 내가 잔잔바리 짐도 싹 치워놔서 깔끔했다. 우르르 들어와서 집을 보고 3분 만에 후딱 보고 나갔지만 기분이 이상하더라.


나도 오늘 낮에는 다른 데 가서 '아이고 미안합니다~' 하면서 그분이 살고 있는 집을 구경하고 왔는데 반대로 저녁엔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으니 세상 일 참 어떻게 될지 몰라? 아파트는 미리 말한 거 아닌 이상 옵션은 잘 없는데 가스레인지는 원래 있던 거예요? 에어컨은요? 하고 물어보는 남편은 순진한 걸까? 아님 순수한 신혼부부 콘셉트로 내가 쓰던 물건을 싸게 넘겨받으려는 걸까? 이거 다 내가 사 갖고 들어와서 얼마 쓰지도 않은 새 건데 말이다.


요새 매매가고 전세가고 미친 듯이 오르고 있어서 내가 나가면 집주인만 좋은 일 시키는 꼴이라고 엄마는 쯧쯧거렸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2년 더 산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 집을 살 거면 빨리 사는 게 맞다. 일단 여기서 한 번 더 전세계약을 연장하게 되면 나도 움직이기가 힘들어지고 그동안 시장은 요동칠 테니까. 나도 2년 잘 살았고 그럼 된 거지.


자, 이제 집을 몇 번이나 더 보여줘야 할까? 오늘 보여준 걸로 과연 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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