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내놓은 지 두 달째... 아직도 집이 안 나갔다
대체 이 시리즈는 언제 끝날까?
5월 말쯤 전세계약이 만료되니까 3개월 전인 2월 말에 집을 내놨다. 그때부터 곧바로 미래의 세입자들이 집을 보러 오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5월 초다. 믿기는가? 심지어 아직도 집이 안 나갔다. 그리고 집주인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진짜 줘 패고 싶다. 좋게 해결하려고 여태 아무 말 안 했는데 중간에 전셋값을 몰래 올렸더라. 그래서 그런지 집만 보러 오고 게약도 안 하는 거다. 나도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앞으로 내가 어떤 절차를 밟아야 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절차와 소요기간과 비용을 알아보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 아실랑가? 내가 모르는 단어와 용어와 흐름을 다 공부하고 이해해야 되고 시간만 쓰는 게 아니라 돈도 추가로 내야 한다. 거기다 스트레스는 덤으로. 대체 내 돈 받기가 왜 이렇게 힘든 겁니까? 예? ㅋㅋㅋ
나같이 이 정도로 협조적인 임대인 없다잉. 올 때마다 집 치워놔서 깨끗하다는 소리 많이 듣는다. 물론 집이 개돼지우리 같아도 나갈 집은 나간다지만 그래도 내부 상태가 영향을 안 미친다고 딱 잡아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리고 여태 이 수많은 뷰잉 기간 동안 딱 한 번 빼고 집 보여달라는 시간 다 맞춰드렸다.
그런데 이제 이 짓거리도 못 해 먹겠다. 이제 막 새로 취업해 가지고 평일에 퇴근하고도 집 보여달라고 하는 것 때문에 끝나자마자 헐레벌떡 집에 가야 한다. 그리고 일 특성상 주말에도 출근을 하는데 주말 오전에 집 보러 온다고 하면 부모님한테 부탁하거나 약속을 평일 저녁으로 미뤄야 한다. 이런 상황이 주중이고 주말이고 계속되는 거다. 지친다 지쳐.
결심했다. 이제 시간이 없고 나는 할 만큼 했다. 초기부터 바로 ㅈㄹ할 수 없었던 건 나도 이런 거 알아보는데 시간 써야 하고 법적절차에 드는 수수료 내는데 돈 쓰기 싫으니까 참은 건데 이제는 한계다. 집주인도 양심이 있다면 세입자가 왜 이렇게 생각보다 조용하지? 하겠지. 등기부등본 떼어보니 이 집을 2010년에 산 걸로 나오더라. 이 집을 소유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세입자를 들이고 내보냈을 테니 나보다 오히려 잘 알 것이다.
인터넷을 폭풍검색해 내용증명 초안을 작성했다. 사람들이 내용증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섭다고 생각하는데 별거 아니다. 그냥 문자나 통화로 주고받을 내용을 증빙으로 확실하게 남기는 절차다. 그리고 나는 뭐다? 회계팀에서 채권회수업무를 담당한 사람이다, 이거야.
물론 내가 직접 돈 받으러 다닌 건 아니고 추심업체에 외주를 줬지만 원본 서류는 우리가 준비해줘야 한다. 어쨌든 나도 담당자로서 일의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보고도 하고 어떤 추심방법을 선택할지도 정해야 하기 때문에 대략적인 흐름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듣고 배운 게 있다. 내용증명은 하나도 무섭지 않으며 초안 작성쯤은 껌이다. 내용증명을 휘리릭 보내고 임차권 등기명령을 걸어야지.
이 집 들어올 때 봐주신 동네 부동산 중개사님께도 자문을 구했다. 그분도 어딘가에 물어보고 다시 전화를 주셨는데 전세권 설정을 하라길래 그건 이미 들어올 때 했는데요? 했더니 그거 해주는 집주인 잘 없는데,라고 한다. 맞아요, 잘 없죠. 전세권 설정이 확정일자보다 더 강력한 수단인 걸 알고 있는 나는 해달라고 했고 집주인도 동의해서 했습니다. 물론 수수료 100만 원은 덤으로 내가 지불하고요. 이미 전세권 설정도 되어있으니 약속된 날짜에 보증금 안 돌려주면 소송 들어간다고 써서 보내면 된다고 했다.
우리 동네 부동산 아줌마는 또 오늘 아침에 연락이 와서는 오늘 저녁에 집 보러 올 수 있냐고 물어본다. 그것도 원래 내가 6시 땡 치고 퇴근하고 가도 간당간당하고 오늘은 내 나름의 퇴근 후 계획이 있었단 말이야.
이제 회사가 바뀌니 회사 근처 생활권이 바뀌었다. 그래서 회사 근처에서 뭘 하려면 강남이 아니라 종로나 광화문 근처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퇴근하고 광화문 교보에서 바로드림으로 책을 한 권 픽업하고 근처 프랑스어 어학센터에 들러 델프 합격증을 찾아서 집에 오려고 했단 말이다.
물론 오늘 꼭 안 해도 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오늘 집 보여주러 시간 맞춰서 갔어 -> 집 보고 감 -> 또 계약 안 해 -> 그러고 다음 주 수요일에 오늘 못 간 거 가려고 했는데 또 집 보러 온다고 함 -> 그럼 나는 또 내 할 일 못하고 퇴근함 -> 집 보고 감 -> 또 계약 안 함... 이 루트를 탈 가능성이 있다.
이판사판이다. 집 보러 오는 거고 자시고 이제는 나도 내 할 일 해야지 싶어서 오늘은 일이 있으니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집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렇게 약속이 파투날 줄 알았는데 알겠단다. 엄마는 또 그 와중에 한 팀이라도 더 보여줘야 하는데 그 사람들 안 온다고 하면 어떡하냐면서 아빠를 대신 보내놓는다는 둥 했지만 나는 강경하게 나갔다.
솔직히 이 정도면 협조 많이 해줬다. 1,2주도 아니고 한 달도 더 넘게 내가 언제까지 내 퇴근시간 그리고 주말 시간 맞춰주겠냐고. 적당히 하셔야지들.
어쨌든 오늘 집을 보고 가는 사람까지도 계약을 안 하면 집주인한테 연락해야지. 내용증명 보낸다고 통보하고 내용증명을 보낸다. 그리고 전세계약만료일에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으면 그 즉시 법적조치에 들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