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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리 Feb 27. 2023

결혼 두 달 소회

22.12.16 작성

    

신혼생활 어떠냐고들 많이 묻는다. “제일 좋을 때”라면서. 


“좋긴 한데, 지금 이 행복이 끝이에요?” 나는 되묻는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의 결혼은, ‘끝나지 않는 수련회’ 같다. 매 시간 힙을 합쳐 식사를 차리고, 내가 설거지할 때는 네가 청소를 하는 등 역할을 분담하여 의식주를 영위한다. ‘우리는 같이 움직인다’라는 대전제 하에, 나의 개인 여가 시간을 언제 얼마나 보내야 우리 생활에 지장이 없는지, ‘우리’의 일정 사이 빈 틈을 찾는다. 내 뒤척임이 옆 사람에게 방해 되지 않도록, 침대의 반을 넘지는 않았는지 수시로 살핀다. 같은 공간에 있다가, 같은 목적지로 함께 이동했다가, 다시 한 곳으로 들어온다.     


남편이 남자친구일 때는, 데이트하는 동안 그에게 나의 가장 예쁜 모습만 보이면 되어 어렵지 않았다. 신경 쓸 것이 그것 단 하나였으므로. 우리 공동의 책임이나 역할, 의무 같은 단어는 없었다. 그 앞에서의 여자친구 역할은 사나흘에 한 번씩, 3시부터 10시까지만 있는 일정이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자유롭게 원하는 모양으로 널브러져 있으면 되었다. 그와 만나는 날을 빼면 24시간은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사나흘에 한 번 괜찮은 여자로 등장하는 것보다 훨씬 고되고 진지한 퀘스트, 좋은 배우자가 되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센스와 배려를 발동해야 한다. 24시간 합숙이니 거푸집머리를 한 채 맘껏 누워있을 수도 없다. 밥 차리고 치우는 시간이 식사 시간의 몇 배가 되어도 묵묵히 내 몫을 다해야 한다.     


무표정한 얼굴에 건조한 말투로 수련회에 결혼 생활을 빗대고 있는 나를, 지금 저 옆에 누워있는 그가 보면 분명 아주 섭섭할 것이다.    

 

이 생활이 오로지 즐겁고 신나기만 하진 않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결코 앞서 나열한 각종 불편함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성질은 아니라는 것. 너와 가족이 되기로 한 결심을 후회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라는 것.     


에휴, 숨 한 번 쉬지만 그래도 일어나서 네가 좋아하는 제육볶음 레시피를 보며 고춧가루와 다진마늘을 꺼낸다는 것. 대충 산 매트리스가 좁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혹시 나의 지분 1/2을 넘지는 않았는지 네 쪽의 여유 공간을 새벽마다 확인한다는 것.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네가 스치듯 말한 카스테라를, 안 만들어도 되는 그 빵을 굳이 만든다는 것. 결혼 전 나는 꼭 5시에 저녁을 먹겠다고 우기던 내가 7시 너의 퇴근 시간만 기다린다는 것.     


네가 마지막 남은 동그랑땡을 내 밥에 얹어주고 나는 반을 잘라 다시 네 밥에 얹어주는 것. 내가 밥 차린 식사에 네가 설거지할 때, 혹시 힘들까 봐 옆에 서서 괜히 말 걸어보는 것.     


장밋빛 달콤함이 가득한 환상처럼은 아니지만 우리는 가장 좋은 시절을 보내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이왕 온 수련회 재미있게 놀다 가자는 마음으로, 오늘 밤도 오늘 하루 어땠냐고 도란도란 대화 나누며, 물주머니 하나씩 끌어안고 따스히 잠에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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