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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리 Sep 16. 2023

종로에서 뺨 맞아도 한강에는 안 가려고


사회적 비용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친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디 아픈거지' 말하는 사람들, 열등감, 생계곤란, 어린시절 트라우마 등으로 합리적이고 예의 있게 의사소통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엄한 데 가서 큰소리치는 일들은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 큰 손해라고 생각한다.


종로가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기는 사람들도 눈치껏 한다. 눈 흘겨도 별 일 없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만 눈을 가늘게 또는 시퍼렇게 뜬다. 나는 상냥함과 친절함과 인간에 대한 신뢰 믿음 희망 같은 것을 생각하며 인내하고 포용하려 하건만 돌아오는 건 누구에게나 만만해져버린 내 모습 뿐인가 싶다.


결국에 나는 무표정하게, 낮은 목소리와 단호한 말투로, 나다까로 끝맺으며 건조함을 연마하고 있다. 나에게 어떤 감정도 쏟아붓지 말라는 강력한 신호를 연습하고 있다. 나도 웃음을 잃었고 나를 보는 수십 사람들도 웃음을 못 받겠고 결국 사회에는 웃음기가 가시고 건조함만 남는 꼴.


내가 뭐 대단한 영향력이 있는 존재인가 생각하지만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고 믿는다. 가까운 이와 다투면 그다음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표정이 무미건조하거나 퉁명스러워지기도 한다. 잠을 잘 못 잔 날에는 괜히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걸 '당하는' 이들의 기분과 신체예산에 영향이 가고 그게 또 순환 순환 순환. 세상에 나는 먼지 한 톨이지만 주변 먼지 여러 톨과 이웃하기도 하여, 결코 막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는 일단 내 나이 반도 안 되는 아이에게서 십새끼라는 말에 반말까지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걸 내가 차분하고 너그럽게 포용하는 처지라는 상황도 짜증났다. 내가 늘 주차하던 자리에, 어느 날부터 두 칸을 차지해 정차하는 외부인이, 카시트 쪽으로 아이가 탈 자리가 좁다며 오히려 내게 짜증을 냈다. 나는 그 사람 입장도 헤아려주고 고충을 이해하는 반응까지 해줬는데(습관적으로 배인 행동이라 하고나서 울화가 더 치밀었다) 그 사람은 오히려 자기 말만 고집하다가 내게 화를 쏟아붓고 떠났다. 순간 짜증나서 차를 잡아세우고 싶었다. 나도 똑같이 미친 년처럼 차에 대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만만한) 한강에 가서 눈 흘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 자기 반성이 없는 이기적인 개인들. 그래도 되게 냅두는 사회도 문제고 그 안에서 문제의식을 안 갖는 개인도 문제인데 나는 둘의 희생양이라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난다.


그럼 나는 어딜 가서 눈을 흘기나. 또 '누가' 있어야 눈을 흘기는데, 내 옆엔 대체로 중요하고 의미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내 화를 덮어씌워서 좋을 게 무엇이고, 내 측근이 아니라도 경비실, 콜센터, 마트, 주민센터 같은 데서 화를 내 봐야 창피함이 더 크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 결국 나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화를 내서 좋을 것이 뭐란 말인가. 도대체 자기가 도움받거나 양해 구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큰소리 바락바락 내지르는 사람들은 왜 그리 앞날을 생각 못하고 한 치 앞만 보는지. 제발 깨달았으면 좋겠다.


화가 목끝까지 차오른 상태로 이번 주를 보내며 같은 말을 다섯 명에게나 반복했다. 나도 그 사람들처럼 왈왈 짖을 수 있는데.


이성을 잃은 사람을 상대하면 굉장히 불쾌하다. 불쾌함을 안고 상대를 쳐다보고 있으면 차마 나는 저 꼴을 보이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결국에 나는 그들만큼 짖을 수가 없다.


나도 쌓인 화를 풀어야겠기에 방법을 찾는다. 내가 왜 내 에너지를 들여 남의 배설물을 처리해야 하는지 짜증이 또 나지만 이미 덤테기 쓴 쓰레기들을 떼어내기는 일단 나를 위해 시급한 일이다. 수영 가서 숨이 차오를 때까지 물살을 가르고, 무용 가서 가슴 응어리가 터져나올 때까지 움직이며 터뜨리고, 요가 가서 호흡 고르고 마음 비우고, 그러고 온다.


넷플릭스의 성난 사람들 속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난폭운전에 안전운전으로 대응하기 위해, 험한 말이 목끝까지 차오르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 앞에서 삼킨 말을 지금 빈 화면에 푼다.


스무 살 서러워 울던 나를 위해 "다 덤벼라 좆 같은 세상아!" 하고 밤하늘 허공에 대신 욕해주던, 그러고는 깔깔 웃으며 기숙사 언덕길을 함께 오르던 내 친구 민이에게 전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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