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 Nov 07. 2023

인생은 끝이 없는 갈림길의 연속

지금은 살아 있는 것, 살아내는 것에만 집중하자.

#1

 '이혼'이라는 중대한 사항을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이혼이라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대게 다 그렇게 이혼을 하지 않나 하며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혼'이라는 것은 '실패'와 같게만 느껴졌었다. 남들보다는 조금 불우했던 유년기, 그리고 준비되지 않았던 임신이었지만 내 자식들에게는 그들의 우주의 반이 갈라지는 듯한 좌절감과 슬픔, 양육자의 부재로 인한 우울감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기도 했다. 이혼을 한 가정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매사 부정적이고 우중충한 아이들이겠느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혼'이라는 꼬리표는 어떻게든 붙게 되어 있다. 또 내리 이혼이라는 되물림의 이혼의 과정이 있을 수도 있겠고. 


#2

아이들은 많이 어렸다. 이혼 후 그저 어린이집 하원을 하는 줄로만 알았을 텐데 내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왔다가 그 길로 외할머니집으로 가게 되어 이유도 영문도 모른 체 그저 방학을 맞아 어린이집을 쉬는 줄로만 아는 눈치였다. 매일 밤 배겟잎을 적시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잘 한 결정인 걸까', '내가 더 참았어야 했을까',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이라도 용서를 해달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다시 돌아가는 게 맞는 걸까'

그때의 나는 이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받아들였어도 사실상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너무 많은 시간을 공존했고, 또 익숙해진 것들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일이란 괴롭기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지. 내 결정 때문에 생이별을 겪게 된 상황에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그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야반도주를 결정한 것은 결국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고자 함이 전부였으니까…


#3

시댁에서는 아이들이 잘 있는지, 또는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와중에 그는 내게 전화를 거는 일 대신 카드를 자르고 경제적인 지원을 끊어냈다. 아마도 수중에 땡전 한 푼 없으면 다시 돌아오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시가의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중에 돈 하나, 옷가지 하나 없이 나왔어도 나는 마음 하나만은 편했다. 내 몸 하나 뉘일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간 자지 못했던 잠을 내리 잘 수 있었던 만큼 마음 하나만은 편했다. 그의 외도 행적을 잡기 위해 한 달가량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피로를 말끔히 덜어냈다. 반대로 그들의 상황은 나와 역전했으리라 하고 어림짐작 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돌아갈 수도 없는 강을 건너왔을 뿐이었다.


#4

이혼에는 두 종류의 이혼이 존재한다. 협의이혼과 소송이혼. 이 중에서도 가장 악질은 소송으로 끝나게 되는 이혼소송이다. 상대방의 치부를 샅샅이 파헤쳐 글로 나열하고, 내가 얼마나 귀책사유가 없었는지를 종이에 써 내려가고, 이를 토대로 변호사들은 글을 검토한 후 상대방의 유책 사유를 따져 묻고, 그에 근거로 결혼 생활에 대한 기간과 재산분할 양육권에 관해 주장하게 된다. 이때에도 소송이혼은 양측 의견이 극렬히 갈릴 경우 재판을 거치고 판결 선고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소송이 이루어진다. 꽤 긴 법정 다툼이다. 특히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는 소송이혼은 더욱이 어렵다. 단지 누군가가 잘못을 했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었고 로 끝나는 다툼이 아니다. 누군가는 잘못을 했지만, 다시 화합을 위해 노력을 하려 했는지 여부도 따져 묻고, 또 반대로 잘못을 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귀책은 없었는지에 대한 근거도 제시해야 한다. 즉 잘 살아왔었다는 배경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어떤 쪽이 아이를 키워야 할지에 대한 것도 엄격히 따지게 된다. 미성년자녀가 있는 경우 양육비, 양육권, 친권, 면접교섭 시기 등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무척 많다. 또한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는지, 유대관계는 어떤지, 이후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낼 건지에 대한 계획서 역시 제출을 해야 하며 보조 양육자의 여부, 보조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가감하여 양육권을 지정하게 된다.


#5

소송이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법원에서 기일을 잡는 일정과 아이들을 아이 아빠와 함께 만나야 하는 면접교섭일정, 가사 조사원과의 면담 등이 있어 쉬이 끝나지 않았다. 협의이혼으로 끝나게 됐다면 굳이 내 허물을 끄집어내고, 상대의 유책사유를 구구절절 적어내는 일 또한 없었을 터, 우리는 그렇게 길고 긴 싸움을 이어가야만 했다. 그저 아이들의 양육권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그도 나도 아이들이 가장 중요했고, 떨어져 지내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법정 싸움은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소송이혼에는 이제 예전처럼 무조건적 엄마가 양육권을 갖기에 유리하다, 아빠가 유리하다는 인식이 그다지 없다. 어떻게 아이들을 잘 키울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 쟁점 사항이었고, 경제활동 능력과 자녀와의 유대관계, 보조 양육자가 있는지가 가장 크게 작용할 뿐이었다.


#6

2년이 다 되어갈 즈음, 그는 홀연히 양육권 포기에 대해 인정했다. 지금처럼 아이들을 잘 키워주길 바란다는 부탁과 함께 아이들의 면접교섭을 원활하게 해 주길 바랐고, 적당한 양육비로 협의하여 조종 이혼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끝까지 가서 원하는 바를 얻었어야 했다는 반응이 더 컸고, 재산분할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나오게 된 나의 상황에 대해 이긴 것만 못한 결정이라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아이들을 키울 능력이 크지 않았으니 양육비는 필요한 상황이었고, 아직은 젊으니 열심히 벌면 된다 생각뿐이었으니까…

#7

소송이혼이 종결되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할 보금자리를 다시금 얻었다. 넓지도 좋지도 않은 열두 평 내지 방 두 칸짜리 공간이었지만 마냥 좋았다. 이제 법원으로 왔다 갔다 주말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고, 매일 밤 상대방의 귀책사유와 그 당시 내가 어떤 것을 보았고, 경험했으며 괴로웠는지에 대한 반론 내용에 대해 작성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였다. 특히 그런 것들을 준비하고 나면 그때의 당시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에 굉장히 정신적으로 큰 타격이 있었는데, 이제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아이들의 장난치는 모습을 보고 웃음도 지어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소송이혼이 끝난 이후 가장 큰 행복이었다.


#8

아이들이 클 때까지 내가 가진 모든 걸 동원해서 잘 키워내겠다는 확신은 지금도 여전하다. 어긋난 인생이지만 내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한 이혼이란 길은 내가 선택한 것들 중 가장 큰 선택이고, 잘한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 그때의 내가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고 이혼만을 받아들인 채로 집을 나섰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면, 나는 행복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은 아이들의 웃음 속에 조그마한 에피소드에도 웃음을 지을 수 있는데 과거의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지금의 선택이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다.


#9

아이들이 한 해 한 해 커가며 나는 이혼 관련한 서적을 계속해서 샀다. 더불어 자기 계발서와 육아서를 구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게 이혼과 육아와 이직에 관한 준비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나중'을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읽고,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책은 굉장히 많이 모였고, 그 책들은 다시 온라인 중고 책방에 다시 판매를 하고, 또 다른 책들을 들임으로써, 내 자신이 항상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게 훈련을 했다. 한 가지 책을 읽게 되면 그 책은 일주일 내로 거침없이 읽어내기. 그게 목표였다. 되도록이면 한 주를 넘기지 않고 책을 속독해 가며 읽었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 내가 경험했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글로 접했다. 잠들 때마다 다시금 읽고, 점심을 먹고 난 후 다시 시간을 내서 읽고, 항상 책을 끼고 살았다. 그리고 어딜 갈 때에도 책을 가지고 나가서 읽는 습관을 들였다. 그때의 나는 책이 전부이고, 그들의 삶을 기반한 책들이 내게 줄 영향에 대해 기대하곤 했었다.



 

 이혼 후 내 삶은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겪었고, 아이들 역시 큰 변화에 적응해야 했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결정에 대해 번복하지 않으려 매일을 노력한다. 더불어 주어진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보내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기쁘지 않은 날들이 계속되더라도, 불행한 일들이 생길 때에도, 일부로라도 재미있는 일을 만들고, 재미있는 주제를 가진 TV를 보면서 웃음을 지으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걱정스러웠던 일들도, 우울했던 일들도 조금이나마 수그러드는 것을 느끼곤 한다. 결국 행복이란 건 내 안에 있는 것인데 나는 내가 항상 행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찾고, 내가 행복하지 않아야 할 사람처럼 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의 난 행복하다.

너무 애쓰고, 아등바등 살려고 하지 않아도 내게는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 있고, 이 것들로 하여금 살아갈 의지를 다진다. 

작가의 이전글 현실로부터의 도피…도피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