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는 사람의 지문과 같아서
성우학원을 다니게 됐다. 내가 듣는 강좌의 정확한 이름은 <오디오북 클래스>. 일반 성우 과정하곤 다르게 오디오북 녹음만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클래스로, 성우의 기초인 호흡부터 발성 그리고 광역대 별 목소리 연기를 배우게 된다. 흔치는 않은 교육 과정이다보니 수업이 어떨 지 감은 안 잡힌다. 그러나 강좌 선생님이 유명한 성우셔서 적잖은 긴장은 몰려온다.
왜 학원을 가게됐나. 바로 올해 정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오디오북 제작하기'였다. 천연 악기라고 할 수 있는 목소리만을 갖고 책을 만든 다는 건 내겐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목소리는 고유하다. 이쁘게 성형할 필요도, 색이나 글리터를 입힐 필요도 없다. 엄마와 아빠의 음색이 적당히 섞인 내 목소리. 적당히 들뜨면서도 적당히 차분한. 그래서 목소리도 지문과 같다고 한다.
원래는 혼자 뚝딱이며 오디오북 제작을 시도했었다. 저가지만 무려 마이크도 샀었고, 녹음 알바도 지원해봤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 보다 꽤 힘든 일이었다. 녹음본을 통해 들어 본 내 발음은 꽤 뭉개져 있었고 어글러져 있었다. 편차없이 과장됐고 불필요한 숨소리가 많았다. 혼자 연습하면 내가 잘하는 지 잘못하는 지 잘 모르기에 성대가 더욱 긴장됐다. 그래서 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했다. 꿈을 더 단단히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만들기 위해선 타인이 필요했다.
목소리를 녹음하고 싶은 책은 외국의 고전 명작들이다. 이를테면 샬롯 브론테 <제인에어>와 같은 여성 문학을. 제인에어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읊조리는 한 문장, 한 문장을 내 목소리로 읽어내고 싶다. 활자로 읽으면 주인공의 감정이 스치듯 와닿지만 직접 읽으면 감정을 내재화할 수 있다. 책에서 만난 수 많은 주인공들을 나의 내면에서 만나는 것 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 있을까.
나의 결정에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꽤 긍정적이었다. 누구 한 명 '왜?' 라던지, '굳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면 불쑥 찾아온 용기가 금세 흐물해졌을 것이다.
오디오북도 사진과 똑같다. 사진 속에는 당시 그 나이를 지닌 내 웃음과 눈빛, 생각과 분위기가 담겨 있다. 10년, 20년 후에 꺼내봐도 사진 속의 모습은 변치 않고 그 시절에 멈춰 있다. 오디오북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 얼굴이 변하듯 목소리도 변한다. 마냥 청순하고 맑던 청춘의 목소리도 시간이 흐르면 깊이를 더해간다. 그러니 기록해야 한다. 시시 때때로.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