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다들 서울 서울, 하는구나
사내 문화가 좋은 직장
최근 일부 서울지역 회사들의 근무환경을 실은 칼럼을 읽어봤다. "와, 이게 드라마 세트장이 아니라니." 부모님 생신에 대표님 편지와 선물, 경조사비, 사내 안마기, 아침식사, 커피머신, 리프레시 데이... 이전 회사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각종 혜택들을 직원들에게 퍼 나르고 있었다. (좋은 표현이다, 정말 듬뿍 '퍼'주고 있는 거니까) 내 첫 회사가 생각났다. 연차 9년 차 된 팀장님이 사비를 털어 취재부에 커피머신을 배치했다. 커피머신 정도는 다른 회사도 다 놔주는데,라고 불평한 내가 한심하다. 야, 서울 회사들은 안마기도 놔준다더라.
회사 소개란엔 미소로 가득한 직원들의 사진이 가득 실려 있었다. 물론 대표님의 '눈치 챙겨'에 따른 연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직원들끼리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내겐 놀라웠다. 전 회사에선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만 잘 나가면 만땅'이라는 각자도생 문화. '나대지 마'라는 기 죽이는 문화. 회사 사람들과 친해지는 건 그냥 사회초년생의 환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사진들이 코웃음 쳤다. 우린 서로 친하고, 우린 그런 조직문화를 갖고 있어,라고. 얘, 너 봄감자가 맛있단다. 내겐 그런 사내 문화가 그 봄감자였다.
모든 복지 혜택 중에 감탄이 절로 나왔던 건 '사람 챙기는 문화'였다. 회사 내 동아리 모임, 생일파티, 워크숍 , 멘토 멘티 문화 등등. 사람 좋아하는 태생을 타고난 내겐 그런 문화가 아득했고 또 절실히 필요했다. 만일 '당연히 회사가 해줘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한 이가 있다면, 분명 남 부럽지 않은 직장 생활한 거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MBTI가 E인 직원에게 회사 내부 분위기를 암묵적으로 맡겨버린다. 바로 그 E 성향인 고연차 팀장이 사비 써가며 커피머신을 끙차끙차 놔둔 것처럼.
나는 이전 회사에서 다니면서 역시 회사는 그냥 잠시 '몸이 머물다 가는 곳'이라 생각하려 애썼다. 그러나 어떤 애정도, 열기도 느껴지지 않는 회사에서 나조차 찬밥처럼 식어버리곤 했다. 난 사람과 일하고 싶었고, 소통하고 싶었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은 애초 '사람'이 없었다. 자기 이득 챙기기에 급급한 돈벌레들만 있을 뿐. 회사를 퇴사하며 난 다짐했다. 다음 회사는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랑 일하는 곳으로 가겠다고.
근데 요새 여러 회사들을 다룬 칼럼지나 기사를 읽으면서 또다시, 생각한다. 그래서 다들 서울 서울 하는구나,라고.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서울 사람들에게만 있는 건 아닌데, 서울 만의 역동성과 유연함이 조직문화에 스며든 것 같있다. 물론 모든 서울지역 회사들이 그런 게 아니란 건 안다. 내 전 회사 같은 곳도 분명 한 트럭 싣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바로 옆에 앉은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다. 특히 경쟁자가 그렇다. 조직도 맞찬가지다. 서울에선 그 경쟁사들끼리 코를 부닺치며 치열한 인재영입에 나선다. 인테리어는 트렌디하게, 보너스는 빵빵하게, 대우는 VIP급으로.
다음에 이직할 회사는 서울로 알아보고 있다. 후회만 남을 발걸음일지라도, 마음속 결단은 섰다. 누가 그랬다. 나란 사람이 있어서 '서울공화국'이란 말이 생겨난 거라고. 근데 취준생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조직과 20대 청춘을 함께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20대는 인생 중 가장 바쁘게 살아보고 싶은 순간이다. 파도 같은 지하철 인파에 휩쓸려도 보고, 거리마다 생명력 넘치는 문화생활을 즐겨도 보고, 온갖 스터디와 유명 학원들 청강도 해보고. 그러니 다들 서울 서울, 하는 거다. 지방은 없고, 서울엔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