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이 아닌 지지, 두려움이 아닌 대화가 필요한 이유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이성교제’라는 단어 앞에서 걱정부터 앞선다. 감정에 휘둘려 학업을 소홀히 하지는 않을까, 혹은 연애 경험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불안은 부모로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감정임과 동시에, 자녀와의 관계에서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매일 학생들을 만나는 교감으로서, 또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나는 이 문제를 단순한 우려가 아닌 ‘이해와 동행’의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오늘날의 청소년 이성교제는 단순히 사랑의 감정을 넘어 자기 정체성과 관계 형성 능력을 탐색하는 중요한 성장의 일부다. 부모가 그 흐름을 읽지 못한 채 통제와 금지로만 대한다면, 자녀는 감정을 숨기고 부모와의 정서적 거리를 두게 될 수밖에 없다. 보호하려는 마음이 자녀와의 단절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지금의 사랑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요즘 학생들은 연애를 SNS에 올리고, 친구들과 함께 커플의 모습을 축하하고 소비하는 문화 속에 있다. 커플 사진을 스토리에 올리고, 손목에 걸린 머리끈이나 직접 만든 커플링은 더 이상 숨겨야 할 연애의 흔적이 아니다. 연애는 이제 감정을 나누는 것을 넘어, ‘사회적 공유의 문화’가 되었다.
이러한 문화의 변화 속에서 부모는 당황스럽다. 그러나 이 연애를 단지 ‘이르다’, ‘불안하다’고 여길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녀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사랑은 인간관계의 출발점이며, 청소년은 그 사랑을 통해 타인을 존중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부모는 감시자보다 관찰자, 판단자보다 지지자로 역할을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
‘공부할 나이에 연애는 사치’라는 생각은 여전히 많은 부모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청소년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자기조절력이 향상되기도 한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청소년기의 발달과업을 ‘정체성 확립’으로 보았다. 이 시기의 또래관계, 특히 이성교제는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중요한 심리·사회적 학습의 장이다. 그 관계 안에서 자녀는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경계를 인식하며, 관계의 균형을 배운다. 청소년기에 건강한 이성교제를 경험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대인관계에 자신감을 갖는다. 이성교제는 성적을 떨어뜨리는 변수가 아니라, 사회적 성숙을 이끄는 중요한 변수일 수 있다.
요즘은 부모 대상 강연이나 콘텐츠에서도 ‘이성교제를 통제하는 기술’이 인기다. 하지만 사랑을 ‘관리’하려는 시도는 자녀의 판단력과 감정 인지 능력을 가로막는다. 부모는 자녀의 관계를 설계하는 감독자가 아니라, 그 여정을 옆에서 함께 걷는 동반자여야 한다.
지나친 간섭은 오히려 아이를 더 고립시키고, 때로는 부모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자녀의 선택을 전적으로 승인할 수는 없어도, 그 선택의 책임을 배워가는 과정을 지켜봐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모가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개입이다. 자녀는 그런 신뢰 속에서 진짜 책임감을 배운다.
스킨십은 이성교제에서 부모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그래서 많은 부모가 이를 언급하기조차 꺼린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이는 유튜브, 드라마, SNS를 통해 배우게 된다. 문제는 그 정보가 언제나 건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 시기에 필요한 건 금지가 아니라, 동의(Consent)에 대한 교육이다. ‘나의 동의 없이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것은 안 된다’, ‘상대방도 나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기본을 부모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달해야 한다. 사랑과 욕망, 표현과 경계는 감정의 기본 언어다. 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면, 더 큰 관계의 혼란이 따라올 수 있다.
이별은 감정의 끝이 아니라, 관계의 마지막 수업이다. 그러나 이별 이후가 더 큰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연애 중 찍은 사진을 유포하거나, 상대방의 사생활을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등의 디지털 폭력은 아이들에게는 ‘감정의 복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사랑이 존중이라면, 이별 역시 존중이어야 한다. 자녀에게 “함께한 기억은 소중하되, 이별 이후에도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특히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하나까지도 감정의 도구로 변질되는 시대다. 디지털 시민성은 이제 윤리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의 사랑은 어른이 보기엔 유치하고 과도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진지한 감정의 여정이다. 처음이기에 서툴고, 감정이 격렬하지만, 그렇기에 성장의 기회다. 우리는 이 감정이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서 세계를 배우고 있다.
최근 '모태솔로 세대'라는 말처럼 연애 경험이 부족한 성인이 늘고 있다. 관계의 시작을 두려워하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청소년기에 감정의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성교제는 자기이해와 타인이해의 학교다. 그 학교를 제대로 졸업할 수 있도록, 부모는 멀리서 지켜보는 인생교사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의 이성교제를 단순히 ‘위험 요소’로 바라보는 시선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관계와 감정의 기본을 배우는 훈련이자, 타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모든 답을 주려 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응원해야 한다.
사랑이 처음인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판단이 아니라 공감이며, 간섭이 아니라 믿음이다. 자녀가 연애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집, 이별의 아픔을 꺼내놓을 수 있는 부모야말로, 가장 든든한 교육환경이다. 부모의 태도는 언제나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이성교제는 자녀가 세상과 관계 맺는 첫 실습이다. 그리고 그 실습이 실패가 아닌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부모는 한 발 물러서서 따뜻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사랑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켜봐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2025. 11. 6.(목)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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