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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컨닝, 누구의 잘못인가?

AI를 두려워하는 대학이 아니라, AI를 넘는 학생을 길러야 한다

사건을 넘어 구조의 문제로

생성형 AI가 대학의 시험장을 뚫고 들어왔다. 연세대·고려대·서울대 등 주요 대학에서 AI를 활용한 부정행위가 잇따라 발생했고, 일부 과목에서는 전원 재시험이라는 초유의 조치까지 내려졌다. 고등학교에서도 수행평가 중 AI를 사용한 사례가 적발되며 충격을 더했다. 이제 AI를 둘러싼 논란은 더 이상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학과 학교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오늘의 현실이 되었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특정 학생들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문제는 개별이 아니라 구조다. 지금의 대학 교육과 평가 체계가 AI 시대에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평가의 공정성 논란 뒤에는, 교육 내용과 평가 방식 자체가 현실의 삶과 학습 맥락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OECD는 2023년 발표한 「미래교육과 역량」을 비롯한 다수의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이 교육의 전반적 층위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할 것이며, 기존의 교수–학습 방식과 평가 시스템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교육 체제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AI를 둘러싼 이번 논란은, 그런 경고가 현실에서 표면화된 첫 장면에 가깝다.


AI를 막을 수 있는가? 막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현재 많은 대학과 고등학교는 가장 먼저 ‘AI 금지’부터 외치고 있다. 시험 지침에 “AI 사용 금지” 조항을 넣고, 과제 제출 시 AI 활용 여부를 서약하게 하거나, 일부는 대면 시험 비중을 급격히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스마트폰, 노트북, 검색 엔진, 메신저까지 AI 기능이 기본 탑재된 시대에, 단속과 통제로만 접근하는 교육은 현실과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이미 보고서 작성, 개념 정리, 토론 준비, 자료 조사에 AI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대학 교수와 연구자, 직장인, 기업과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현실에서는 AI를 활용하는 능력이 곧 업무 역량과 생산성의 중요한 축이 되어가고 있는데, 오직 평가 장면에서만 AI를 ‘금지된 도구’로 취급하는 것은 교육의 자기모순이다.

교육평가 이론에서는 오래전부터 “학습은 맥락을 떠날 수 없고, 평가는 그 맥락을 가능한 한 정교하게 재현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현실에서 AI는 이미 필수 도구가 되었는데, 평가에서만 AI를 차단한다면 평가는 현실성과 타당성을 동시에 잃게 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AI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AI를 어떻게 평가 안으로 끌어들여 함께 다루고, 그 과정에서 학생의 진짜 역량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AI를 동반자로 삼는 교육적 전환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대학평가, 한계가 드러나다

이번 AI 부정행위가 특히 많이 발생한 곳은 대규모 온라인 교양과목이었다. 수백 명의 학생이 영상 강의를 수강하고,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르는 방식은 대학 교육의 본질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조차 여전히 교수 강의를 충실히 받아 적고, 기출문제 유형을 반복 연습하는 데 평가가 집중되어 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이혜정 저)는 서울대 최우등생들의 증언을 통해 이런 평가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교수의 말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 필기에 매달리고, 시험지에는 자신의 의견 대신 교수의 표현을 최대한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A+ 전략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질문하고 스스로 사고하는 힘보다, 얼마나 잘 받아 적고 외우는지가 평가의 핵심이 된다는 현실이다.

이런 방식의 평가 구조에서 AI는 인간보다 훨씬 유리하다. 객관식 문제 풀이, 요약, 정보 정리는 AI의 대표적인 장점이다. 정답형, 반복형 지식은 이미 생성형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정직하게 시험을 보면 오히려 손해”라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현행 평가 체계가 실제 역량을 판별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정직성과 성실성을 불리한 선택으로 만들고 있다는 구조적 증언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AI를 금지하는 규정만으로는 어떤 해결도 이끌어낼 수 없다.


세계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해외의 일부 대학들은 이미 다른 방향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의 대학들은 생성형 AI의 활용을 전제로 한 평가 설계 지침을 마련하고, 과제·논문에 AI 활용 여부와 과정을 함께 명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호주의 몇몇 대학은 과제 제출 시 AI 활용 로그를 첨부하도록 하고, 이를 부정행위의 증거가 아닌 학습 과정의 일부로 바라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대학들은 논변형 수업과 문제 해결 중심 과목을 AI와 함께 설계하면서 ‘AI 동반 학습(AI-assisted learning)’을 교육의 새로운 표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메시지는 분명하다. AI를 무조건 금지하는 대학은 시대의 변화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고, AI를 활용하여 사고력을 확장하도록 이끄는 대학만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의 등장을 ‘부정행위의 도구’로만 보는 시각을 넘어서, 학습과 사고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파트너로 인식할 때 비로소 평가의 철학도 달라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대학은 아직 이 변화에 충분히 반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틈에서 학생과 교수 모두가 혼란과 피로를 겪고 있다.


새롭게 물어야 할 질문,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내놓은 답안을 검토하고, 그 답에 스스로의 생각과 경험을 얹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능력이다. 같은 자료를 보더라도 다른 관점을 만들어내는 힘, 놓친 맥락을 발견하는 감각, 오류와 편향을 찾아내고 수정하는 통찰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평가는 다음을 묻는 것이어야 한다.

학생이 AI가 말한 것을 그대로 옮겼는가가 아니라,

AI가 말하지 못한 것을 무엇까지 볼 수 있는가.

AI가 만들어낸 초안을 그대로 제출했는지 따지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그 초안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정하고, 구체적인 맥락과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 질문이야말로 사고의 깊이를 평가하는 진짜 방식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목별 성적표뿐 아니라, 학생의 사고 과정과 수정 흔적, 토론과 글쓰기의 궤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평가 문화가 필요하다.


중고등학교도 같은 전환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수행평가에서도 AI 사용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 되고 있다. 현행대로라면 유사한 문제가 더 자주, 더 다양한 형태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답형 시험을 아무리 강화해도 AI는 더 빠르고 정교하게 그 정답을 만들어낼 것이다. 단속과 처벌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평가의 철학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지식 재현 중심에서 벗어나 탐구와 창의성의 과정을 평가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AI 활용을 전면 금지하는 대신, 어떤 방식으로 AI를 활용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질문과 생각을 만들어 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학생의 참여와 성장을 중심에 둔 서술형·관찰형 평가, 프로젝트·포트폴리오 평가로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물론 공정성에 대한 우려는 중요하다. 그러나 공정성을 이유로 가장 측정하기 쉬운 것만 평가하려는 유혹에 머문다면, 교육은 점점 더 ‘시험 준비 시스템’으로 축소될 것이다. 공정성은 평가의 범위를 좁히는 명분이 아니라, 평가의 질을 높이고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AI 시대, 교육의 본령을 되묻다

AI는 단순 지식의 조립을 넘어, 인간이 해왔던 많은 판단과 결정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반복적·매뉴얼화된 업무, 정보 정리, 문서 생성 등 화이트칼라의 상당 부분이 빠르게 AI에게 넘어가고 있다.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되기 어렵다.

이제 인간이 집중해야 할 것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감정, 공감, 가치 판단, 사회적 책임, 도덕적 통찰, 협력과 소통, 타인의 관점 수용 같은 인간성의 능력이 교육의 중심에 서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균형 잡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 공공선을 고민하고 사회 전체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이 앞으로의 시대를 버티게 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식을 함께 의심하고, 연결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교수는 일방적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도록 돕는 조력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학생이 지식의 소비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도록 이끄는 것, 그것이 AI 시대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교육의 본령이다.


AI 컨닝은 경고음이다, 교육 전체의 설계를 바꿔야 한다

이번 AI 부정행위 사태를 단순한 윤리 문제나 처벌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거대한 구조 변화의 신호를 외면하는 일이다. 이것은 몇몇 학생의 양심이 무너진 사건이 아니라, 한국 교육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음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를 무조건 금지하거나 도덕적 책임을 학생에게만 전가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정과 평가, 교수학습의 철학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하는 일이다. 대학과 학교가 어떤 인간을 키우고자 하는지, 어떤 능력을 ‘미래 역량’이라 부를 수 있는지, 그 목표부터 다시 합의해야 한다.

이제는 묻자.학생들이 AI로 ‘답을 만들었는가’를 따질 게 아니라, AI와 함께 ‘더 나은 질문을 만들었는가’를 평가해야 하지 않는가.

지금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더 큰 붕괴는 곧 현실이 될 것이다. AI 시대, 교육은 다시 본질을 묻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학생의 부정행위를 단속하는 규정이 아니라, 어떤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평가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우리 모두의 진지한 성찰과 결단이다.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


(유튜브) 별의별 교육연구소

https://www.youtube.com/@star-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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