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다.

가우디, 그의 경이로운 예술성으로부터 교육적 영감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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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book, always open and which we should make an effort to read, is that of Nature."

- Antoni Gaudi _


이 문장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안에 있는 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해 가우디가 건축한 학교 안에 있는 글이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최고의 교재는 자연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이 문장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으면서 이 말을 한 가우디와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 내부를 둘러보면서, 가우디가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였다. 어디를 가도 건축가 가우디의 예술적 영감이 깃든 작품이 있었기에, 바르셀로나에 있는 2박 3일 동안 나는 가우디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깊은 영성이 예술적 창의성과 만난 결실물인 건축물들을 걸으면서 나는 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맞아! 교육은 예술이야! 교육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야! 교육은 주입이 아니라 발산이야!" 그리고 그의 겸손한 인생의 마무리에 머리를 숙이며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Sagrada Familia)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2년에 착공해서 지금도 건설 중에 있는 성당이다. 안토니 가우디가 1926년에 안타까운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그의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여 2026년인 내년에 완공 예정이라고 한다. 모든 작품은 그 작품을 만든 이의 가치관이 담겨 있듯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걸으면서 가우디의 영성을 느낄 수 있었다. 성당 입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의미하는 조각품들이 있고, 성당 중심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입체적으로 달려 계셔서 그의 죽음을 깊게 묵상할 수 있고, 성당 뒤쪽에는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의 마지막 일주일의 여정을 담은 조각들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가우디를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건축할 때 매일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사고가 난 그날에도 아침 일찍 기도를 한 후 길을 걷다가 전차에 치였는데, 행색이 너무나 남루하여서 사람들이 빨리 구조를 하지 않았고 가우디도 치료를 거부하여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가우디는 어떠한 기도를 하면서 이 성당을 건축하고 있었을까? 단순히 멋지고 큰 성당을 짓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깊은 영성을 담은 성당을 짓기를 원했던 그의 마음을 느끼면서 예수 그리스도 조각상 앞에서 기도를 했다.

성당 입구, 성당 중앙, 성당 뒤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빛과 곡선의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성당 내부는 하나의 커다란 원형 홀(hall)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부에는 나무 형태의 기둥과 다양한 색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숲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동쪽에는 파란색과 초록색 계열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서쪽에는 노란색과 주황색 계열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느낄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성당과는 아주 다른 성당 내부를 걸으면서 보편성을 뛰어 넘는 가우디의 기발한 창의성에 흠뻑 빠지는 시간이었다.

곡선으로 되어 있는 창문과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아름다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아름다움보다 더욱더 나의 심장을 뛰게 했던 장소는 성당 옆에 있는 아주 작은 학교였다. 그 학교는 성당 바로 옆에 있었는데, 성당을 짓는 노동자들의 자녀를 위해 가우디가 지은 학교였다. 19세기말에 노동자들과 어린아이들을 향한 가우디의 마음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그의 매력에 심취하는 시간이었다. 작은 학교는 모든 벽이 곡선으로 되어 있었다. 가우디는 곡선의 건축가였다. 나는 이곳에서 '곡선의 교육'을 상상하고 디자인하였다. '자율과 창의성을 장려하고, 표현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교육'을 상상하면서 작은 학교 안에서 한참 동안 머물렀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부속건물 같은 이 작은 학교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작은 학교에서 아이를 사랑하는 가우디의 인생관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인생관은 나의 교육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옆에 있는 노동자 자녀를 위한 학교에서 '곡선의 교육'을 상상하다




까사 바트요 (Casa Batllo)


까사 바트요는 바트요라는 사람의 집이라는 뜻이다. 바트요라는 사람이 가우디에게 집 건축을 의뢰해서 지은 집이었다. 까사 바트요는 곡선의 절정이었다. 모든 천장과 벽, 문과 문고리, 창문과 계단 등이 모두 곡선으로 되어 있어서, 집의 어디에서도 직선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카페로 사용하고 있는 옥상에 있는 굴뚝도 다양한 타일을 붙여서 곡선으로 되어 있었다. 보편성을 뛰어넘는 그의 용기와 창의력에 나도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보편성에 갇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에 대한 염려와 실패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편성에 갇히게 된다. 까사 바트요의 곡선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면서, 보편성을 뛰어넘었을 때 얼마나 색다른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년으로 되어 있는 교실들, 교과목으로 꽉 차 있는 시간표를 벗어나는 것을 우리는 두려워한다. 무학년 융합 교실에서 즐길 수 있는 자율과 창의적 교육이 상상에서 실행으로 구현될 날이 오리라 소망해 본다.

곡선의 절정인 까사 바트요


까사 바트요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이다. 가우디는 즐겨 사용하는 건축 재료가 나무이다. 까사 바트요도 어디를 가도 나무로 만든 가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우디는 집 안에서 지중해 바다를 느끼기를 원했다. 중앙 정원이 있어서 집 내부가 통으로 뚫려 있는데, 그곳을 '빛의 파티오'라고 하였다. 푸른색 타일로 만들어져 있는데, 아래로 갈수록 짙은 푸른색 계열의 타일을 사용하였고 위쪽은 연한 푸른색 계열의 타일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한 것은 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짙은 심연을 느끼기에, 아래쪽 타일은 짙은 푸른색 계열로 만들었던 것이다. 중앙 계단의 유리는 바다 물결을 느낄 수 있는 입체감이 있는 반투명 유리를 사용하여서, 그 유리를 통해서 빛의 파티오를 보면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유리를 통해서 빛의 파티오 부분을 보면서 내가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면서, 이 모든 것을 구상한 가우디를 생각하면서 싱긋 웃음이 났다. 설계한 집이 건축되었을 때 가우디도 이 유리창으로 보면서 '바다처럼 보여서 성공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웃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구쟁이 마음을 가진 가우디를 만나는 것 같았다.

빛의 파티오


까사 바트요 옥상은 카페로 사용되고 있었다. 나도 맛있는 음료수 하나를 주문하고, 마치 이 집의 주인인 것처럼 한참 동안 까사바트요에 머무르고 있었다. 까사 바트요도 잠시 들른 것이고 2박을 하고 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나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손님이 아닌 주인의 마음으로 바르셀로나 하늘을 보고 있었고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때로는 침묵이, 때로는 잠시 멈춤이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때가 있다.

까사 바트요 옥상에서의 망중한




바르셀로나 비치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여행을 마무리하다


시간은 흘러 흘러 언젠가는 계획했던 그날이 온다. 큰 용기가 필요했던 50대 후반 아줌마의 한 달 동안의 나 홀로 여행이 마무리되는 시간도 드디어 왔다. 파리로 들어가서 3일 동안의 파리에서 살아보기, 3주 동안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그리고 마지막 3일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와 데이트하기가 마무리되는 시간이었다. 바르셀로나 비치는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한 공간으로 최적의 장소였다. 지중해는 한국의 동해와 서해와 남해와는 어떻게 다를까? 무척이나 궁금해했던 낯선 이에게 지중해는 그 이름에 걸맞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해 질 무렵의 지중해는 하늘과 바다가 짙푸른 하나의 색으로 통일되었다. 어디가 수평선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짙은 파란색으로 하늘과 바다가 하나가 되었다. 아름다운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나도 나의 한 달 동안의 여행이 나의 몸과 마음과 세포 곳곳에 스며들도록 하는 시간을 가졌다. 용기로 시작한 여행으로 인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기쁨과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

전혀 계획에 없었던 아름다운 이들과의 만남, 그들의 인생은 저 큰 우주보다 더 광활하고 아름다운 스토리를 담고 있었다. 300km를 걷는 동안 스쳐 지나갔던 스페인의 작은 마을들과 잠시 머물렀던 카페들, 걷는 내내 펼쳐졌던 올리브 나무와 포도나무들, 너무나 사랑스러운 스페인의 아이들, 모두 모두 용기있는 발걸음을 내디뎠기에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만남이었다.

지중해 바다를 보면서 생각한다. 상상하기와 용기 내어 실행하기! 곡선과 예술성! 앞으로 나의 삶의 언제 어디에선가 표출되어 나올 아름다운 가치이다. 열심히 일상을 살아내다가 그 일상을 잠시 떠나고 싶은 어느 날, 다시 지금 이 곳에서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나를 상상해 본다.

바르셀로나 비치
해 질 녘 바르셀로나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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