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공감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지완아 어디고. 아빠가 다리를 다쳐서 그러는데..
계단에 있는 소주 빈병 지완이 네가 좀 치워 줬으면 좋겠다”
병원 근무 중 진동이 울렸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거구나. 우리 집은 숙박업을 운영해서 공병이 수시로 쌓인다. 아니 잠깐,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점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쳤다고..? 얼마나? 어쩌다가? 어디서?'
아버지는 현장 근로자로도 일하신다. 18년 전,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온 베이커리가 문을 닫은 후로 줄곧 건설 현장에서 몸 담으셨다. 무거운 철판과 울리는 굉음. 그곳에서 아버지의 무릎 슬개골은 박살이 났다.
걱정스러웠다. 혼란스러웠다. '점점 나이가 드시는데 이번 일 때문에 앞으로 지장이 크시면 어쩌지?', '치료는 잘 받아내실 수 있을까?'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와 누나도 그 소식을 듣고 굉장히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아야 했다. '아빠~ 이미 다쳤으니 어쩌겠어. 치료하면서 당분간 푹 쉬어. 괜찮아.'
다음 날 오전, 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시장통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꽤 긴 시간을 기다려 주치의를 만났고 각종 검사를 받으며 병원 곳곳을 탐방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직원들과 대면했다. 원무과 직원, 외래 간호사, 주치의, 방사선사, 병동 간호사 등. 이때 깨달은 건, 환자와 보호자 모두 작은 친절에 큰 감동을 받고 사소한 냉담에 신경이 곤두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간호학을 4년 동안 배웠고, 병원 실습을 1000시간이나 했다. 지금은 정신과 간호사로도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만큼이나 환자와 보호자를 이해할 수 있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과거 경험이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 중이던 한 할머니가 이불에 발이 걸려 눈에 시퍼런 멍자국이 생긴 적이 있다. 그 날 전화로 이 소식을 접한 보호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람이 살다 보면 다칠 수도 있는 거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직접 관계인이 되어보니 '그럴 수도 있지'에서 끝나지가 않았다. 겪어보지 못했으니 느끼지 못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까?
이번 일은 나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게 했다. 공감이 부족했던 이유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는 말도 과거에 그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효력이 적을 거다. 생생하고 오묘한 감정은 '직접 경험' 또는 '그에 준하는 경험'을 겪어본 사람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