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narSun Oct 21. 2024

목적성의 본질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필자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곤 한다. 이 질문에 차이가 있는가? 있다.




천체물리학자의 꿈을 접고 전문직을 가진 후에는 부를 축적하고, 그러고 나면 빌게이츠처럼 재단을 설립하여 마음껏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 후원하고 인재를 양성하면서 살아야겠다 싶었다. 십자가의 은혜를 알게 된 후 스스로에게 질문하였다. 부한 자가 아니더라도 기부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그 마음이 진심에 가깝지 않을까. 그래서 시작한 컴패션 아이들 후원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또 질문하였다.

진정 남을 돕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남을 돕는 자로 칭함 받고 싶은 것일까. 과연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가, 아니면 그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동정심을 갖는 것인가. 그래서 봉사에 직접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성경에는 특히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라는 말씀이 꽤 있었다. 그에 따른 봉사활동을 찾으려고 했다. 외국인근로자 의료, 입양아기 보육을 시작으로 시각장애인 문화생활 지원, 쪽방촌 물품공급, 해외의료봉사 등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캄보디아 쓰레기마을에서의 의료봉사를 마지막으로 직접 뛰는 봉사활동을 멈추었다. 장염으로 하루 꼬박 고열과 설사에 시달려 죽을 뻔한 이후로 고통의 자발적 동참은 여기까지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실상은 조금이나마 알겠다. 

이제는 몸의 한계가 있으니 장기적으로 돕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것이 사업과 함께 하는 또 하나의 인생과제가 되었다. 변치 않는 질문. 그들이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것인가, 나 자신이 선한 영향력을 가진 자선가로 칭함을 받고 싶은 것인가.


2017년 캄보디아 쓰레기마을


창립 초기, 지인이 회사 홈페이지를 보고 경험담에 기반한 조언을 해주었다. 

이런 거창한 비전은 조롱거리가 될 뿐이야. 작게 시작하는 것부터 보여주는 게 더 설득력 있지. 나도 해봤던 거라서 알아.

지인의 말도 그의 입장에선 일면 합리적인 조언이다. 그리고 그는 그 사업을 접은 사람이다. 


필자의 칸 회사비전은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세계적 기업이다.

조롱을 한들 개의치 않는다. 세계는 필자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며, 고객과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명사'가 '되는 것(be)'에만 집중했다면 비전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 그렇게 '행동(do)'할 것이다. 


명사는 개인별 개념별로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즉 다른 잣대가 적용될 수 있다. 애플이라는 명사를 들을 때 누군가는 빨간 사과, 파란 사과, 혹은 썩은 사과를 생각할 수도 있을 테고, 누군가는 애플 회사, 스티븐 잡스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관념에 따라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다. 반면 동사는 구체적이고 시각적이며 목표가 분명하다. 그래서 필자는 동사형 목표를 좋아한다. 그러면 어느덧 필자만의 고유명사를 입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후 필자는 오히려 기업철학을 덧입혔다.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

투명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고객의 신뢰를 얻는 품격 있는 파트너가 되는 것.

칸 회사의 대표로 칭함 받기보다는 한 땀 한 땀 기업철학을 실천하는 데 집중하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