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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면규 칼럼니스트
Oct 29. 2024
윤석열 대통령과 점차 괘를 달리하면서 자신의 길을 구축해 가려하고 있는 것 같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보면서 문득 '딜레마'라는 용어가 떠오른다.
딜레마(Dilemma)는 그리스어 '두 번'과 '제안'의 합성어로 된 '두 개의 제안'이라는 뜻으로, 사전에서는 "두 가지 옵션 중 각각 받아들이기 어려우거나 불리한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로 표기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무섭게 "검찰총장으로 발탁될 것 같다"는 세간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법무부 장관으로 전격 기용된 한동훈을 보면서 당시 고개를 갸웃한 사람이 꽤 많았다.
요즘 정황을 보면 어쩌면 윤 대통령이 전격 발탁한 배경에는 오랜 기간 형수님으로 모시고 가깝게 지내 온 -옥상옥 평가를 받고 있는- 김건희 여사의 영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명태균 씨 사건을 비롯해서 한남동 사단 소문 등이 이를 방증하는 것 같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각종 구설의 중심에 김건희 여사가 있는 걸 보면 명태균 씨 카톡 내용이 "단지 헛소문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득 문재인 정권 때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조국과 친구지만 정의를 외면할 수 없다"면서 조국을 난타하면서 등장했던 진중권 당시 동양대 교수를 보면서 '의리'라는 게 대체 뭘까? 사람들은 갸웃했다.
자신이 동양대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을 것 같은 그리고 같은 대학 출신으로 절친이라는 소문까지 있던 사람의 날 선 비수에 급소를 찔린 조국 장관의 심정이 아련하게 와닿는다.
어렸을 때부터 "은혜 갚은 두꺼비" 같은 전래 동화에 많이 익숙한 우리 국민이기에 이런 배신 행위가 조금 혼란스럽게 와닿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필자가 신림동 난곡에서 하숙할 때의 일화를 잠시 소환해 본다. 당시 서울대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데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시골에서 농사짓던 어머니가 바쁜 농사일을 뒤로하고 급하게 상경하셨다.
그런데 아들은 한 통의 편지를 써 놓고 새벽같이 집을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격한 시위 현장에서 안타깝게 죽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 후 사람들은 그를 '열사'라 부른다.
당시 아들이 어머니의 눈물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서면서 남겼다고 하는 편지 내용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저는 어머님을 정말 사랑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보다 이 민족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의 불의를 못 본 체할 수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은 천하 불효인 이 자식의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지금의 자기가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을 것 같은 조국 장관을 등져야 했던 진중권, 그리고 김 여사한테 등 돌려야만 하는 한동훈! 그들의 처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금의 내가 있도록 많은 토양분을 제공해 준 은인을 배신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배신'이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인간의 역사는 "배신의 정치"와 괘를 같이 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름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한다"는 명분으로 배신 행위를 정당화한다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 않을까 싶다.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 뒤 편에서 가슴앓이 해야만 하는 배신당한 사람 처지를 한번 생각해 본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한테 끝까지 신의를 지킨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을 의리 있는 사나이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독자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정의 앞에 무너져 내리는 신의!
어쩌면 이것은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풀기 어려운 난제 아닐까 싶다. "내가 왜 저 인간을 법무부 장관에 기용했을까" 한남동 골방에서 소주잔 들이키며 땅을 치면서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김건희 여사께 위로 말씀 건네고 싶다.
수제자인 '베드로'가 "새벽이 오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성경 말씀을 참고한다면, 속상해하기보다 지금의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옳은지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야당 대표는 사법리스크 늪에, 대통령은 김건희 리스크 덫에 걸려 꼼짝 못 하는 암울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지금처럼 슬픈 적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여기에 회초리 드실 어른마저 안 계신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
"모든 걸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하면서 단지 윤석열 참모 정도로 평가받고 있던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 부부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나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보기로 한다.